"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드디어 운동 권태기가 찾아왔다. 운동 시작한 지 35일이 지나고 있었고, 첫 후기글을 쓴 지 약 2주가 지났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끝없이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허리를 꽃꽂이 세운 당당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안정된 호흡과는 반대로 한 계단마다 오르는 다리가 무겁게만 느껴진다.
지지난 주에 아이가 이틀간 40도를 오르내리는 열감기를 겪었다. 이후에는 구역질할 정도로 심한 기침이 이어져 아이와 며칠을 집에서 추억 쌓기를 했다. 덩달아 아침 계단 운동을 쉬게 되었는데 남편의 배려로 저녁때 잠깐의 자유가 주어졌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고 잠도 부족한 상황이라 어두운 아파트 안이 아닌 바깥의 시원한 바람에 대한 유혹도 있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라 곧 하루를 마무리하러 들어가야 했다. 그래도 이 틈을 타 땀에 흠뻑 젖는 몸 운동이라니, 정말 대단한 계단 오르기이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오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엘리베이터 안은 그나마 다행인데 고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숨죽여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 일부러 쿵쾅 큰 발자국 소리를 내볼까, 친한 척 먼저 인사를 건네 볼까, 고민을 하다 슬금 발걸음을 멈춘다. 멈추었다면 더욱 들키면 안 된다. 도둑이라던지, 수상한 사람으로 느껴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지 않은가. 운동에 의한 것인지, 긴장감에 의한 것인지 두근거림과 함께 이마 땀방울이 솟구친다. 한 번은 지하 2층에 내려가는 도중에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같이 탔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관심 없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 열려 있는 엘리베이터로 보이는 나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옆 비상구가 아닌 주차장으로 나가는 척 방향을 틀었다.
새벽 비슷한 시간에 움직이다 보니 같은 사람들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싶어 송글 맺힌 땀을 미리 훔치며 호흡을 골라본다. 3세트쯤 하면 종종 9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나와 같이 운동복 차림인 9층 아줌마가 타는 시간이다. 아직 한 세트밖에 안 했는데 마주친다면, 내가 늦은 것이다. 운동 횟수를 줄이던지, 속도를 내야 할 때다. 이제 얼굴 낯이 익어 밖에서도 알아볼 정도가 되니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도 해본다. 동네 근처에 40분 정도 산책 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하는데 언젠가 함께 동행할 수도 있을까 기대해 본다. 정작 옆집에 누구 사는지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데 이사 온 지 일 년이 넘어서야 아파트에서 인사하는 사람이 생겼다.
한번 틀어진 운동 시간은 게으름을 가져다주었다. 조금 늦어진 기상에는 조금만 더 자자 싶고, 저녁이 되면 내일 아침에 할 건데라는 핑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몸무게는 59 킬로그램으로 처음보다는 미비한 감소가 있었지만 푸짐한 점심식사 덕분인지 기대했던 변화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 계단 운동 효과에 대한 공부를 하다 '생로병사의 비밀'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1분에 70 계단 오르는 속도로 꾸준히 계단을 올라주면 다이어트보다 더 중요한 건강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근력, 심폐, 혈압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암 질병에까지 좋아 사망률까지 줄여주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살찐 사람이나 약한 관절에는 안 좋다는 것도 잘 못 알려져 있고, 유무산소가 다되는 단점이 없는 운동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은퇴하는 나이가 되면 남편과 함께 쉴 새 없이 여행을 하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졸졸 일행을 따라다니는 소극적 여행자가 아니라 골목 구석을 누비는 현지인 같은 여행자가 되려면 이 엉망이 된 체력을 천천히 끌어올려야 한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흔들림 없는 몸무게에도, 아이가 아프더라도, 불현듯 권태가 찾아오더라도 오늘만은 올라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