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두 번째 운동 3

게으름에게 잠식당하다

by 달초롱

이때쯤이면 세 번째 계단 운동 후기가 쓰였을 참이다. 운동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고, 드디어 움찔만 하던 몸무게의 숫자도 하강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날렵해졌으며 눈빛에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아무 준비가 필요 없는 계단 운동, 들쑥날쑥한 호르몬과 기분을 이겨내고 "저도 합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써야지. 한 시간 반이 넘는 출근을 하는 남편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땀으로 맞이하고, 아이는 이미 준비된 아침을 웃으며 시작합니다. 40분 새벽 계단 운동으로 이렇게 저와 가족의 하루가 달라졌답니다.

'x' 표시를 한지 어느새 2주가 흘렀다. 운동 습관 들이기 3개월을 목표로 운동 일지에 그날 몸무게, 운동 기록을 했다. 운동을 못하거나 안 한 날은 "x"로 표시했다.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운동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연달아 'x, x, x, x...' , 결국 나중에는 운동 일지를 펴보지도 않았다. 계단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운동이 없다며, 이거 하나만은 인생 운동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맛볼수록 좋다고 글로 쓰고, 지인들에게 홍보한 나는 어디로 갔나.

낌새가 있긴 있었다. 감기 걸린 아이를 돌보다 운동 시간이 바뀌거나 건너뛰는 날이 생겼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운동은 재미가 없어졌다. 아이가 깰까 숨 죽이며 밖으로 나서고, 계단에서 누군가와 마주칠까 생기는 긴장감이 싫어졌다. 그러다 나까지 독한 감기에 걸렸다. 연속으로 두 번을, 일주일 정도 아프고, 나아갈 때쯤 또 한 번 걸려 하루를 날 잡고 끙끙거리며 앓았다. 운동을 멈출 핑계가 생겼다. 덩달아 모든 활동에 나태함이 묻어났다. 잠도 안 오는데 틈만 나면 누우려고 하고, 일이 없으면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번엔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할 일은 쌓여가는데 뒤로 미루기만 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이 방황하는 나에게 휴가를 줬다. 아이를 데리고 부자 여행을 할 테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라고 집을 비워주었다. 참 고맙고, 미안했다. 일 년에 손에 꼽는 소중한 하루니 다르게 보내야 할 것 같다. 늦잠을 좋아하니 오랜만에 아침 늘어지게 잠을 자볼까, 평상시 못 보던 공연을 볼까, 친구들을 만날까, 원데이 클래스를 들을까, 고민을 해본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었는데, 이런, 겨우 흥미로운 일을 하나 찾았다 싶으면 휴관이었다. 또는 비싸거나 하루로는 끝나지 않았다. 거르다 보니 더 이상 특별히 갈 때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사라졌다. 그렇게 선물 같았던 하루는 신기루 마냥 흘러가고 있었다.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 집에만 있는 날이면 생기는 두통 때문에 책 한 권 붙들고 겨우 집을 나섰다. 날이 선선하다. 구름에 한번 가려진 햇볕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편안한 긴 숨이 쉬어진다. 근처에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있다. 예전 계단 운동하며 알게 된 곳인데, 시작하자마자 치골통을 겪는 바람에 운동은 커녕 한 달 넘게 재활치료를 다녔었다. 제대로 둘러본 적은 없었는데, 여기서 푸릇함을 눈에 담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가는 길에 마침 연락하고 싶었던 친구가 생각났다. 몇 개월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다 최근에 절제술을 받았었다. 마음잡고 통화하려다 보니 생각만 하고 연락이 미뤄졌는데, 지금이 기회다. 10시간의 대수술을 끝내고 친정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직도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과 함께하느라 마음도 힘들다 했다. 나의 근황도 들려주었다. 벌써 7살이 된 아픈 첫째, 항상 텐션 좋은 둘째, 잘 아프고 피곤해하는 나, 그 와중에 잘 버텨주는 측은한 남편 이야기까지, 서로 눈물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두 시간을 친구와 함께 걸었다. 날이 저물었다. 책을 꺼내 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나는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이번엔 자책하지 않았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 안을 정리했다. 옷을 갈아입고, 엘리베이터에서 지하 2층을 눌렀다. 이어폰에서 운동하기 좋은 곡들이 흘러나왔다. 시간만 주면 무한으로 오를 수 있다던 심장과 다리는 벌써 사라져 있었다. 금방 숨이 차올랐다. 헉헉거리며 한 계단씩 올라가 본다.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열어주고 서둘러 타는 이웃과 마주쳤다. 한 세트가 금방 흘렀다. 즐거웠다. 오랜만에 운동 일지에 "x"가 사라졌다.

아직 계단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계단 운동만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집에서 몸 흔들기도 하고, 움직일 수 있다면 된 거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하는 운동이니까, 내가 즐길 수 있는 움직임들로 채워야지. 마음이 돌아오니, 몸이 돌아온다. 몸을 움직이니 마음이 다져진다. 오늘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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