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주, 수요일
아침 등원길 친구들의 모습은 계절의 오고 감을 발견하기 좋은 단서가 됩니다.
짧았던 반팔들이 어느새 긴소매로 변하더니
갑작스레 싸늘해진 가을공기는 겨울을 재촉하는 듯 두터운 겉옷들을 등장시켰습니다.
아이들의 옷차림은 단순한 패션을 넘어,
집에서의 아침 풍경을 상상하게도 합니다.
까치둥지 머리를 하고 나타나 인사를 나눌 땐,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나 분주한 등원준비였을 모습을 그리기도 합니다.
계절에 변화에 민감한 어른들의 시각과 달리,
자신의 스타일 선호도가 강한 아이는 종종 계절을 거스르기도 합니다.
한 겨울에도 반바지와 얇은 공주 드레스를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이미, 이런 아이의 강한 선호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들어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자 할 때, 억지로 아이의 선호도를 꺾기보다는 직접 아이가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길 권장하고 있습니다. 추워서 감기 걸릴까, 더워서 어쩔까 하는 걱정은 뒤로하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으로 일단락하곤 합니다. 그것이 아이의 자율성과 감각을 키우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오늘의 이야기는 좀 다른 내용입니다.
윤지는 함께하는 첫날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양갈래 머리에 원피스를 입고 양쪽 색이 다른 반양말을 신은채 나타났지요.
아이와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레 시선은 머리에서 발끝으로 향하면서 양말뿐 아니라, 신발 또한 같은 디자인이나 색깔이 다른 색임을 알게 되었지요.
처음엔 '일부러 이렇게 코디를 해 주셨나?'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시선이 마주친 윤지의 어머님은 "윤지가 직접 코디한 거예요."라며 윤지의 시선을 살짝 피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함께 방긋 웃으며 다시 바라본 윤지의 모습은 어색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세련되고 감각 있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윤지야, 윤지가 직접 고른 양말과 신발 너무 멋지다!" 이야기를 건네니, 자신의 스타일을 알아봐 준 것이 고마운지 활짝 웃음으로 응답합니다.
다음 날도, 윤지는 다른 색의 양말과 신발을 신고 등장했습니다.
오늘은 친구들도 윤지의 패션이 남다르다 생각했는지 자신들의 양말 색에 대해서 한참이나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다음날 어떤 광경이 펼쳐질는지를요.
다음날 아침, 같은 반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모두 다른 색의 양말을 신고 등장했습니다.
모두들 분주하게 서로의 양말들을 탐색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하하 호호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며칠사이, 반을 휩쓴 윤지스타일에 친구들의 즐거움이 더하는 오늘입니다.
내일은, 또 그다음 날에는 누구의 스타일을 함께 누릴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매일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그 표현은 말일 수도 있고, 놀이일 수도 있으며, 애착 장난감이나 때로는 옷차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윤지는 자신의 감각을 믿고, 양말과 신발의 색을 다르게 골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습니다.
그 선택은 어른의 눈엔 낯설고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라는 분명한 자기표현이 담겨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표현이 존중받는 순간,
아이의 마음속에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의 표현이 존중받고 있어'라는 믿음이 싹트게 됩니다.
선생님의 '멋지다'라는 말 한마디는
자신의 선택이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이를 바라보는 친구들 역시 자신들의 기호를 표현하는
또 다른 시도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이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자랍니다.
아이의 감각과 취향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이 아이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존중은 또 다른 아이에게도 전염됩니다.
윤지의 스타일이 친구들에게도 '나만의 양말'을 연출하게 한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자율성과 다양성입니다.
아이들도 '나도 나만이 선택을 해볼래'라고 느낀 순간이며,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경험한 시간입니다.
ㅣ 아이의 감각과 취향을 '틀림'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다름'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ㅣ 오늘 내가 건넨 말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말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