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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와 Please 사이

11월 1주, 화요일

by thera 테라

아이들과 함께하면 웃을 날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분명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안내와 설명에도 아이의 감정이나 행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관점에만 몰두하다 다른 친구를 방해하거나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심각해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경우엔 인내심을 시험하는가 싶은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롤러코스터를 타듯 선생님의 감정이 요동치기도 합니다.


이 날은 한 친구의 행동이 계속적으로 친구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미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크기로도 차이가 나는 블록 건축물을 완성했지만, 같은 색깔의 블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다른 친구들이 만든 블록 건축물에서 하나 둘 빼다가 자신의 건축물에 더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지학아, 친구들이 만들고 있는 것을 물어보지도 않고 가져가면 친구들이 속상할 거 같아."

"친구들에게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봐야 될 거 같아."

"지학아, 친구들도 지금은 블록이 필요한가 봐."


몇 번의 설명과 안내에 알았다는 듯 "네" 짧은 대답과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곧 살그머니 또 다른 친구의 건축물에서 블록을 빼어내어 자신에 건축물에 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뺏기는 것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친구 한 명이 힘으로 막아섰고, 이를 제지하면서 친구와 실랑이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 '하지 마!!'라는 말과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지학아, 선생님이 몇 번이나 이야기했니? 친구들이 싫어하잖아. 하지 마!"

답답함과 화가 섞은 감정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벌써부터 올라와 입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을 깊은 심호흡으로 달래고 이야기를 건넵니다.


"지학아, 선생님에게로 오세요"

평소의 친근한 표현과는 다른, 부드럽지만 무게 있게 이야기합니다.

지학이의 현재 놀이에도 잠시 '멈춤'이 필요한 순간이기에 지학이에게로 다가감이 아닌, 내게로 와주기를 청합니다. 멈칫하던 아이는 자신의 블록을 아쉽게 바라보며 내게로 다가옵니다.


"지학아, 네가 멋진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선생님은 알겠어.

그런데 친구들도 자기가 만든 건축물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것을 다른 사람이 말도 하지 않고 모양을 바꾸거나 말도 없이 가져간다면 기분이 어떨까?"

지학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속상할 거 같아요"라고 친구들이 느낄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지학아.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또다시 생각에 잠긴 지학이는 이번에는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음... 친구들이 다 만들고 나서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볼 거예요.아니면 다른 색 블록으로 만들어 볼게요"


아이의 생각이 담긴 말에, 선생님으로서 나도 또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마음을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것을요.


Don't와 Please 사이에는,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존중의 언어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요.




유아는 인지발달상 자기 중심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세상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타인의 감정이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가 곧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기 어려워합니다.

따라서 친구의 블록을 말없이 가져가는 아이의 행동은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배어가는 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의 역할은 단순히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 욕구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조율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지 마'라는 금지의 언어는 즉각적인 통제는 가능하지만,

아이의 내면에 자기 행동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기 어렵습니다.

반면 '선생님에게로 오세요'라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요청은 아이에게 자신의 행동을 멈추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합니다.

선생님의 일방적인 좋은 일, 나쁜 일을 지시해 주는 것보다, 문제 상황을 바라보는 아이의 생각과 느낌. 더 나아가서는 대안도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존중의 언어와 반응은 아이에게 '나는 이해받고 있어' '나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라는 자존감의 경험을 심어줍니다.

존중받는 경험은 아이가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로 이어지고,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힘으로 자라납니다.


선생님의 감정조절과 언어선택은 아이의 내면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미칩니다.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는 순간에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조율해 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안전하게 탐색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ㅣ 오늘 아이들의 행동을 멈추게 한 일이 있었나요?

어떠한 상황이었나요?


ㅣ '하지 마' 대신 어떤 언어를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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