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주, 금요일
만날 때마다 웃음꽃 활짝, 이쁜 내 작은 친구가 있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나, 쉬는 시간이면
종종 찾아와서 "뭐 해요?"라며 관심을 보이고 다시 또르르 교실로 돌아가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등원 때마다 눈물을 보이며 엄마랑 떨어지길 힘들어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문 앞에서 더 이상 발걸음을 움직이지 않는 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시선을 맞추며 인사를 나눕니다.
"00야, 마음이 안 좋아? 교실에 바로 들어가지 않아도 좋으니 선생님하고 이야기할까?"
말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아이의 손을 살며시 잡고 놀이가 한창인 친구들의 세계와는 조금 떨어진 조용한 장소에 자리하고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00가, 요즘 뭔가 속상한 일이 있구나. 선생님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선생님에게 이야기해 주면, 00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고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한참이나 고개를 떨구고 침묵의 시간이 지나, 조그마한 입이 움직입니다.
"사실은, 엄마랑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음, 그랬구나. 엄마랑 더 같이 있고 싶고 놀고 싶었구나. 그럼 친구들하고 노는 건 어떤 거 같아? 재미가 없는 걸까?"
"아니. 재밌어요. 그런데 엄마가 언니 하고만 다녀서... 난 셋이 함께 있고 싶은데.."
아이의 마음 안에 안고 있던 서운함과 속상함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엄마한테는 직접 하지 못했던 말을 선생님이 들어주었다는 안도감에 그렁하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립니다.
요 며칠,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요인도 마음 한편에 어떤 불편함이 있어서가 원인이겠다 생각했는데 아이의 작은 고백을 듣고 나니,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습니다.
"00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속상했겠다.
선생님이 엄마에게도 00의 마음을 잘 말씀드려 줄게."
우리 둘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이는 방긋 웃으며 총총총 교실로 향해갔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어준 것이, 알아준 것이 작은 친구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로였나 봅니다.
아이의 방긋 미소는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존중받았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진짜 '회복'의 시작이지 않았을까요?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선생님이 줄 수 있는 가장 따스한 배려이자, 아이가 세상을 믿게 되는 첫걸음입니다.
영유아기는 말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시기입니다. 아직 언어로 충분히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눈빛,이나 몸짓,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그 작은 신호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속 불편함이나 서운함이 흘러나온 정서적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들어주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라는 것을 배웁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 감정을 알아주었을 때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 경험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자존감과 정서적 안정감의 씨앗이 되어 이후의 사회성, 자기 조절력, 대인관계의 기반으로 자라납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말보다 행동을 먼저 읽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리는 민감한 감정탐색자여야 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안전하게 꺼내어도 된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존재. 그 믿음은 아이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됩니다.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일은 단순한 돌봄을 넘어서는 교육입니다. 그것은 아이가 세상을 신뢰하게 만드는
첫 번째 관계 형성이며, 선생님이 줄 수 있는 가장 따스하고 결정적인 배려입니다.
ㅣ 아이가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눈물 등의 행동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있나요?
ㅣ '들어주는 선생님'으로서 아이에게 안전한 감정 표현의
공간을 얼마나 자주 열어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