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주, 월요일
아이들의 하루는 분주합니다.
그리고 그 분주함에는 종종 작고 큰 다툼과 이견이 있습니다.
보통은 아이들끼리 속상한 마음이 오고 가며 풀어지기도 하지만 반복되거나 그들끼리 해결되기 어려운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있을 때는 으레 "선생님~"을 찾는 것이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날도 한 아이의 억울함이 가득 담긴 하소연이 들려옵니다.
"선생님, 주원이가 저만 도서방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어요. 여기 출입금지라는 글도 써 놓고요"
아이의 말대로, 도서방 입구에 출입금지라 종이를 붙여 놓고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여기는 모든 친구들이 다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이는 고개만 절레절레 가로로 저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떨구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주원이가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래?"
잠시의 침묵이 더 이어지더니
"친한 친구들끼리만 같이 놀고 싶었어요."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반 친구들이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든지,
너의 행동으로 그 친구가 속상했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이미 주원이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침묵의 고개저음과, 고개 떨굼,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망설이는 모든 모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억울함을 하소연했던 지연이를 불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청 합니다.
"주원아, 주원이가 지연이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거 같은데... "
선생님이 중간역할을 해줌이 한편으론 반가운지, 이야기가 끝마쳐지기도 전에
"내가 미안해"라며 주원이의 사과가 이어집니다.
이럴 때, 지연이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괜찮아!'라는 답을 우리는 보통 기대하고 있고, 또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았을까요?
지연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응.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그 말속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마음 한 조각이 남아 있음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법을 참 많이 가르쳐왔습니다.
상대가 사과하면 받아주는 것이 예의라고,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어른스러운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때로는 '괜찮지 않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연이에게 질문이 담긴 말을 건넸습니다.
"지연아, 주원이가 도서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때, 지연이 기분이 어땠어?"
"음.. 속상했어요. "
"그래 지연아, 선생님이 지연이라도 정말 속상했을 거 같아"
"그럼, 주원이에게 어떻게 말하고 싶어?"
"주원아, 네가 도서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너무 속상했어. 다음부터는 안 그러면 좋겠어"
지연이의 속상한 마음을 듣자, 주원이의 표정에도 말에도 깊은 미안함이 더해집니다.
"내가 미안해. 진짜로.."
지연이의 말은 상대의 사과를 무시하거나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괜찮아'대신 '내 마음'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 연습을 함께 해줘야 합니다.
존중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내 마음을 말할 수 있고, 그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경험.
그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배웁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단단한 뿌리가 됩니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점차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갑니다.
하지만 그 표현은 아직 서툴고, 때로는 감정을 숨기거나 단순한 말로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괜찮아'라는 말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이들은 갈등 상황에서 상대의 사과를 받으면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배워왔고, 그렇게 말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종종 진짜 감정이 담기지 않습니다.
속상함, 서운함, 억울함 같은 감정은 말로 표현되지 못한 채 마음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의 씨앗을 틔웁니다.
감정을 말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 감정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경험은 아이에게 '나는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심어줍니다. 이는 자존감의 핵심기반으로 특히 갈등상황은 자존감과 사회성 발달의 중요한 기회입니다.
선생님이 중립적인 중재자로서 아이의 감정을 끌어내고, 서로의 입장을 듣게 하는 과정은 공감과 책임, 회복의 경험을 만들어 줍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감정 통역사'입니다.
의례적인 사회적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꺼내주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입니다. "기분이 어땠을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속상했겠어"와 같은 말은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 틀을 제공합니다. 이런 감정 언어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데 꼭 필요한 도구가 됩니다.
아이의 '괜찮아'라는 말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을 조금 더 기다려주고, 들어주면 어떨까요?
그 작은 기다림이,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ㅣ 아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때, 그 행동의 '이유'를
묻고 들어주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있나요?
ㅣ 아이가 사과를 받을 때, '괜찮아'라는 말 외에
아이의 감정을 잘 이해해 주고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