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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어주었어.

12월 1주, 월요일

by thera 테라

월요일마다 함께하는 '주말 지낸 이야기'는 친구들 앞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마다 어디를 다녀온 이야기, 맛있는 것을 먹은 이야기, 재미난 놀이를 한 이야기 등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지요.

월요일 아침, 교실은 주말의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누가 먼저 이야기해볼까?" 선생님의 질문에

"저요, 저요!!" 모두들 손을 번쩍,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기다리기 힘든 아이는 양손을 번쩍 들어 선생님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합니다.


한 명, 한 명 친구들이 앞에 설 때마다 모두의 시선은 그 아이에게로 고정되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하는 눈빛으로 기다립니다.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섭니다.

평소 말이 조금 느리고, 아.. 어.. 등의 채움말을 자주 사용하고 더듬거리기도 하는 친구였습니다.

오늘도 역시 아이는 긴장한 듯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 나는, 어제 음, 어엄마랑 아빠랑 어. 마트에 가갔어"


아이의 더딘 이야기 속도가 답답스레 느껴졌는지

"그래서 거기서 뭐 했는데? 좀 빨리 말해봐"

친구의 재촉하는 말에 아이의 얼굴이 순간 굳어집니다.

말은 더 느려지고,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듯합니다.

순간 교실이 술렁거리며 흔들리는 듯합니다.


"야! 좀 기다려봐. 지금 말하려고 하고 있는데 네가 재촉하니깐 말을 못 하고 있잖아.

이야기 듣게 좀 기다려 보자"


한 아이의 말에 모두는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이어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술렁이던 공기가 잦아들고 조금 전까지 굳어있던 아이의 얼굴은 서서히 풀리더니 더듬거리지만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마트에서 본 이쁜 인형, 카트 안에 담긴 저녁반찬,

귤 한 봉지,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입해 트리를 꾸민 이야기까지도.

느린 말 사이사이로 흘러나온 기억들이 교실 안에 퍼지며 모두의 마음을 따스히 적십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바라보며 깨닫습니다.
교육은 때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다려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말이 매끄럽지 않아도, 아이의 이야기는 끝내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교육의 또 다른 이름, 기다림이 빛을 발합니다.


월요일 아침의 작은 이야기 시간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존중이고, 기다림은 배려이며,

기다림은 함께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은 교육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언어가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3-7세의 영유아기는 어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발달하지만, 말이 더디거나 더듬거림, 채움말을 사용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발달 단계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며, 교실 속에서 친구들이 끝까지 들어주는 경험은 단순한 기다림을 넘어 경청의 습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느린 표현을 존중받는 순간, 아이는 자신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이는 언어 발달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기다림은 또한 자기 조절력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며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순간, 아이들은 충동을 조절하는 힘을 기릅니다. 이는 단순히 발표 시간에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 이후 학습 상황이나 또래 관계 속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협력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기술로 이어집니다. 기다림을 통해 아이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잠시 미루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사회·정서 발달 면에서도 기다림은 공감과 배려를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말이 매끄럽지 않아도 존중받는 경험은 말하는 아이에게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고, 듣는 아이들에게는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이는 또래 관계에서 신뢰를 쌓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을 키우는 밑거름이 됩니다. 결국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기다림은 존중이고, 기다림은 배려이며, 기다림은 함께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은 교육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기다려주는 순간, 우리들은 작은 공동체로서 성장하고, 그 안에서 교육안에 성장과 발달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이루어집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ㅣ 아이가 친구의 느린 혹은 관심사가 다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따스한 지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ㅣ 작은 기다림의 순간은 아이에게 어떤 배움으로 남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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