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남을 것들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양념을 ‘약념’이라 불렀다고 한다.
간장 한 방울, 깨 한 꼬집에도 '약을 짓는 생각'으로 사람을 살린다는 조상의 지혜와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우리 식탁으로 옮겨 본다. 메뉴와 레시피를 넘어, 함께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아이에게는 약이 된다.
오이팩으로 시작된 한 번의 용기, “오늘은 혀끝만”을 스스로 고르던 작은 결심, 오른쪽 위에 올려진 낯선 반찬을 두고 맛사다리표를 보며 눈을 반짝이던 호기심. 그 모든 순간이 쌓여 아이의 ‘고집’은 주도성으로, 눈치 보던 망설임은 추진력으로 바뀌어 간다. 억지로 넘긴 한입보다, 내가 정해 본 혀끝만큼의 시도가 아이를 더 멀리 데려가준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함이라는 식탁에서 함께 살아내는 방식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높아진 날엔 변명 없이 사과하고 “방금 엄마 목소리가 컸지. 미안해.”, 주도권을 돌려주었다.
"냄새 vs 혀끝, 네가 골라!" 같은 자리·같은 순서의 리듬을 지키되, 멈춤과 뱉기라는 출구를 열어 두었다.
그 반복 속에서 아이는 “사랑은 그대로”라는 문장을 몸으로 배웠고, “결과는 어른이 책임지고, 시작은 네가 결정한다”는 약속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편식은 사라질 수도,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함께 살아내는 방식만은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뭘 그렇게까지 해, 대충 살아.”
아마 각자의 리듬이 달라서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식탁만큼은 ‘대충’이 잘 안 된다.
먹는 일은 몸의 일이고, 함께 먹는 일은 마음의 일이다.
반찬의 가짓수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만든 음식이 아니면 어떻고, 배달음식이면 어떠한가. 중요한 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오늘 저녁도 아이의 식판 오른쪽 위에 새로운 음식을 올려 둘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의자 하나씩 당겨 앉아, 또 한 끼를 함께 살아낼 것이다.
'먹는 일은 몸의 일, 함께 먹는 일은 마음의 일'을 그림책으로
세계 여러 나라 아이들이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 이탈리아, 미국... 우크라이나까지
‘엄마의 사랑은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그림책.
미국의 햄버거, 베트남의 쌀국수, 설날의 떡국까지 메뉴는 달라도 같은 맛, ‘사랑의 맛’이 남는다.
(글 김현태, 그림 오숙진, 미래아이·2024)
이 책은 내 글이 전하고자 했던 내용과 맞닿아 있다. ‘골고루 먹어야지’라는 결과보다 관계·자율·기억이 남는 식탁. 세상 모든 아이들이 엄마와 밥을 먹는 장면을 통해 호기심을 확장한다. 각자 환경과 사는 모습이 달라도 엄마의 밥을 먹고, 사랑을 먹는다. <엄마의 밥>은 그 메시지를 아이 눈높이에서 다시 확인시켜 준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여가는 우리의 식탁.
하루하루 우리가 모은 것들이 결국 나 스스로를 이루는 마법이 될 것이다.
TIP! 확장 활동
세계지도보며 책 속에 나온 나라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