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걸 가장 잘하는 엄마도 댐이 무너진다.

감정을 억누르는 아이 vs 표현하는 아이, 어떻게 다룰까?

by 까만콩

첫째 아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나는 인내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내도 근육과 같은 것이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자. 먹기 싫다는 건 아직 배가 부른 거겠지.’ 그렇게 수차례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지루한 인내의 시간은 언제 넘쳐버릴지 모를 댐처럼 쌓여갔다.


밥상 앞에서 아이는 소리 지르고, 온몸으로 떼를 썼다. 감정을 꾹 참다가 결국 나 역시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감정을 억누르는 내가 감정이 폭발하는 아이를 보며 오히려 당황했던 것 같다. ‘저렇게 감정을 다 쏟아내도 되는 건가?’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 역시 참고 또 참다가 결국 혼자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잦았다.


내 안의 댐이 무너질 때, 비로소 보였다. 이 모든 갈등은 '인내'라는 무거운 짐을 진 나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아이 또한 억지로 참아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그 순간, 편식은 더 이상 음식을 거부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외침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인내심을 키우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의 댐이 무너지는 순간조차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억눌린 감정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집어삼킬 듯 소리쳤고, 나는 침묵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었다.

때로는 참지 못하고 “밥 먹기 싫으면 그냥 치워!”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온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별것도 아닌 일'이, 엄마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큰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기다려주겠다는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지쳐버린 내 모습만이 남았다.


어느 날은 둘째 아이가 조용히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어린 날의 내가 스친다. 마음이 철렁했다. 매번 온몸으로 ‘싫어’를 표현하는 첫째 아이와 달리, 둘째 아이는 감정을 억누르는 법부터 익혔나 보다 싶었다. 차라리 밥상 위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첫째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밖으로 꺼내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닌가.


억누르는 아이와 표현하는 아이. 어느 쪽이 더 좋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그것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는 달라야 한다. 감정을 온몸으로 쏟아내는 아이에게는 첫 번째 감정을 먼저 알아주고, 두 번째로 아이가 힘든 이유를 스스로 정리해 보도록 도와준다. 세 번째로는 아이가 '내가 인정받고 있다.' 우리 집에 보탬이 되는 아이라고 북돋아 준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감정은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알려줘야 한다. 엄마가 흔들리는 지점을 아이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소리 지를 거면, 물이라도 한잔 마셔 목 아파." 둘째 아이는 눈치를 보며 첫째 아이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 "지금 네 마음이 많이 불편한 거 알겠어. 조금 진정하고 엄마한테 이야기해 줄 수 있어?"라고 묻는 연습이 필요하다.


반대로 감정을 꾹 참다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는 "왜 눈물이 났어? 어떤 게 불편한지 엄마한테 말해줄 수 있니?"라고 먼저 물어보며, 엄마가 바라본 상황을 보며 아이가 느꼈을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말해주니까 엄마가 더 잘 알 수 있네.”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려줘야 한다.


결국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건,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든 그 방식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감정의 댐이 무너지기 전에, 아니 무너지는 순간에도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는 걸 가장 잘하는 엄마도 무너질 수 있다.
중요한 건 무너진 자리를 다시 살피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식사란 결국 함께 살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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