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널 위한 거야' 무적의 말이다. 게임으로 치면 사기템. 영화로 치면 흥행보증수표로 쓰이는 뻔한 클리셰. 음악으로 치면 머니코드 같은 느낌이다. 저 말만 붙이면 반박할 말이 없어지는 무적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건데 어떻게 날 위한 거야?"
겨우 이 정도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럼 아버지는 말했다.
"내가 인생을 훨씬 더 많이 살아봤으니 내 말 들어"
또 할 말이 없어진다. 그가 살아본 건 오로지 그의 인생 한 가지일 뿐인데... 나는 시간으로는 아버지를 이길 방도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공한 위치도 아닌데, 어떻게 아버지 자신이 정답이라는 것이었을까. 아버지는 전문가들도 본인생각과 다른 말을 하면 전부 돌팔이 취급했으니, 그에게 어리디어린 나의 생각이 정답일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널 위한 거라고 하면 거절하기가 참 어려웠다. 저 무적의 문장은 내가 거절을 못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나는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였다. 큰 사고가 나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입원해야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냥 자주 아팠다. 종종 상장을 받아오긴 했지만 그중에 가장 흔하다는 개근상이라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열이 끓고 기침을 심하게 하고 토를 해도 아버지는 내가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학교를 갔었다던가. 그래서 개근상을 놓친 적이 없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아버지는 아픈 아이가 무조건 등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 "너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아픈 나를 누군가는 돌봐야 하니까 집에 있지 말고 학교에 가길 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아이를 낳아보니 맞벌이 부모입장에서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참 난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에게 "네가 아무리 아프더라도 심지어 쓰러지더라도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한다"는 말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내가 소위 명문대에 가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나를 '공부하는 기계'라 칭했고, 무슨 대화를 하던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던 결론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딱히 특기가 없다면 공부를 잘해서 좋다는 것은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말 날 위해서 그랬을까? 그랬다면 평소에 더 관심을 갖고 진짜 공부에 대한 서포트를 해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 가끔 얼굴 마주칠 때마다 말만 '공부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 말고 말이다. 공부에 대한 서포트 없이 갑자기 원서접수기간이 되자 넣을 수 있는 데는 다 넣자며 대학수시 원서비에만 백만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는 것 말고 말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갑자기 원서접수에만 관심을 갖는 부모가 아니었다. 평소에 내 어려움은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 해내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 부모였다.
평소 남의 시선, 허례허식따지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는 그저 이름 있는 명문대에 간 자식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본인이 미처 못 간 진짜 명문대 말이다.
대학생 때였다. 아버지는 내게 등본과 인감증명서를 떼오고 인감도장도 가져오라고 했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착한 딸이었던 나는 곧바로 다음날 동사무소에 가서 등본을 뗐다. 인감증명서를 떼 달라고 했더니 인감도장을 등록해야 하고 뭔가 복잡했다. 일단 인감도장이라는 것이 사실 뭔지 몰랐으므로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은 타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걸로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증명서 떼왔냐"는 아버지에게 나는 "그게 왜 필요해?"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 널 위해서 필요한 거야. 다 쓸데가 있어"라고 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디에 필요한 건데?" 갑자기 아버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더니 "주기 싫으면 말아"하고는 내방문을 닫고 가버렸다.
아버지는 어디에 쓰려고 했을까. 뭐 때문에 바쁜지도 모르겠는 알 수 없는 그 사업들의 밑 빠진 독에 쓰려고 했을까.
취업을 하게 되면서 집과 너무 멀어서 자취를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원룸은 위험하다면서 무조건 오피스텔로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사회초년생 월급으로 굳이 비싼 월세와 비싼 관리비를 내가며 오피스텔에 살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원룸에 현관도어록도 있고, cctv도 전부 달려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가 오피스텔에 살기를 원했다. 그래 위험한 세상이니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오피스텔 계약은 내 명의가 아닌 본인명의였다. 이때 이상함을 감지하고 내 명의로 내가 알아서 따로 집을 구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계속 돈이 아깝다고 하자 본인이 월세도 다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거짓말이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내게 월세를 본인에게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내 자취방에 cctv를 따로 달겠다는 것이었다. 오피스텔에는 입구에도, 엘리베이터에도, 심지어 내가 사는 층 복도에도 전부 cctv가 달려있었다. 집에 달아야 할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기겁하고 싫다고 하자 아버지가 날 설득한답시고 한 말은 기가 찼다.
"내가 볼 거 아니야. 위험해서 다 널 위해서 다는 거야. 너희 엄마가 볼 수 있게 해 놓을 거야. 집안을 보는 게 아니라 현관 쪽을 보게 설치할 거야."
이 말도 안 되는 설득은 내가 입주하는 그날까지 계속되었다. 그건 누가 봐도 날 위한 게 아니었다. 나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에서 언제 나가고 몇 시에 들어가는지, 누군가가 드나드는지 보겠다는 것 아닌가. 그 뻔한 거짓말을 믿으라는 게 성인인 나를 얼마나 바보로 알면 그렇게 말했을까.
아버지는 그랬다. 본인이 불리하면 말을 돌리거나, 나를 본인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니까 도무지 논리로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내가 평생을 벽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었는지, 어째서 답답함에 몸서리쳤는지 모든 글들을 써 내려가면서 온전히 정리된 기분이다. 왜 남편이 나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 잘 자랐는지 신기하다."라고 말했었는지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남편이 내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애매한 게 제일 위험한 거야" 1부터 10까지 있다면 1과 10을 고르는 사람. 4~6 정도를 고르는 나로서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애매한 상태에서는 이도저도 안 되는 것이다. 마치 부모님과 나처럼. 차라리 내가 어렸을 때 더 강력하게 반항했더라면 지금의 상태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지키려고 반항하면서도, 또 부모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도저도 못했던 것이다.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 상처는 더 곪아가고 있었는데 알면서도 방치한 것이다. 곪다 못해 썩어버린 상처를 결국 도려내야 할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결국 도려낸 것이다. 전부 다 썩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