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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전화를 걸며 다시 시작했다.

안 되는 이유 대신, 시작하는 방법을 택했다

by 그러려니

아침에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는 아이에게

“엄마 회사 다녀올게, 학교 잘 다녀와”
라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이렇게 물었다.
“잘 잤어? 아침 뭐 해줄까?”


회사를 그만둔 뒤 찾아온 공허함은 내 이름이 아니라 ‘엄마’, ‘아내’라는 역할로 채워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알아가고 싶어졌다.



나는 정말 원하는 걸 선택한 적이 있었을까?
전공을 고를 때도, 직무를 옮길 때도
'특별히 싫지 않으니까' 선택했고 늘 관계의 매끄러움을 우선했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냈다. 성과를 내면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 믿었다.

'위에서는 다 보고, 다 알고 있다' 는 말을 스스로 되뇌며 버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를 인정해주는 상사는 늘 있었다.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같았다.
“위에서 승인이 안 됐다.”
“부득이하게 이번엔 안 됐다.”


누구나 다 된다는 대리 진급에서 떨어졌을 때도,

사내 직원포상 심사에서 마지막에 떨어졌다고 했을 때도,

힘을 실어준다며 파트장으로 만들고 파트를 꾸려준다고 했을 때도,


'난 안됐다...'


처음에는 나는 괜찮다 했다. 나이가 어리니 내년에 되면 된다고 했다.

괜찮지 않았다. 집에서 펑펑 울었다.


두번째 안되었을 때는 나보다 더 안타까워 하며 이야기 해주던 팀장에게

한 술 더 떠서 여기까지 신경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울지는 않았다. 마음이 착잡했을 뿐이다.


세 번째가 되자,

아무런 느낌이 안들었다. 나는 안되는 사람이니까.


처음에는 학력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 나는 내 능력보다 좋은 곳에 들어왔으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먼저 승급하는 것이 맞지. 대리 달기에는 아직 어리니까..'

그 다음은 우리팀 실적이 안 좋아서 탈락되었다 생각했다.

그 다음은 ...

그다음은..

그냥

내 능력이고 역량이었다.


그렇게 회사는 나의 장단점을 알려주었고
한계 또한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아이를 학교 보내고 이력서를 썼다.

40대 초반, 내 이력은 영업 지원, 운영, 마케팅, HR…
그 어디에도 완전히 맞지 않았다. 경력에 따라 대리급으로 가기엔 나이가 많고, 나이에 맞추자니 경력의 깊이가 짧았다.

예상대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던 20대로 돌아간 기분.(그때는 그래도 젊기라도 했지.)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70살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내가 진짜 잘하고, 하고 싶은 건 뭘까?”


그리고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첫걸음
내가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시작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그 사람과 첫 통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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