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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엘리베이터, 여섯 층 건물의 새 시작

퇴사 이후, 나를 ‘원하는 사람’이라 불러 준 곳에서

by 그러려니

6층짜리 건물 앞에 섰다.
1층에는 슈퍼가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다섯 명만 타도 꽉 찼다.

5층에 도착해 문을 살며시 열었다.

(생각보다) 번듯한 사무실. 이사님 방은 따로 있었다.

이사님, 팀장님께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회사가 하는 일들, 내가 와서 해주길 바라는 일들.

사람을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는 말.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때 내가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이사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들릴 때마다 마음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내가 해보고 싶던 일이다.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처음 해보는 역할에서 성과가 안 나오면 어쩌지—그 걱정이 작게 남아 있었다.

전 회사에서 해온 일들을 간단히 설명했다.
여러 직무를 옮겨 다니며 쌓아 온 경험이 여기선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무실이 꾸려진 지 3개월 남짓되었다고 하셨다.
이사님은 내가 어디에 놓여도 어떻게든 도움이 될 사람이라고 믿어 주었다.

근무 형태는 맞춰 주겠다고 했다.
주 2회 출근, 주 3회 재택.
급여는 최저임금, 그리고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누군가는 창업도 한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배우며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무엇보다 ‘나를 원하는 곳’에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일은 곧 시작됐다.

한 시간 반 걸리는 출근길.
"출근 너무 오래 걸리죠?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을 때는

“그래도 앉아서 갈 수 있어 다행이에요”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것만 보고 싶었다.
재택이 있어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높은 구두와 무거운 브랜드 백은 내려놓았다.
여름엔 앞이 트인 낮은 샌들, 그리고 백팩.

아침마다 나답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자리에 앉는다.
탕비실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뜨거운 물에 카누를 녹인다.
“오늘 점심 뭐 먹을까요?” 자연스럽게 묻는다.
어려운 것도 불편한 것도 없었다.
커피 마시러 가도 되는지 눈치 볼 필요가 없었고,
누가 내 인사를 받아줄까 팀장 눈치를 보며 하루의 분위기를 예측하는 시간도 사라졌다.


물론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카톡으로 오가고
메일 주소 뒷자리가 회사 계정이 아니라는 건 조금 어색했다.


왜 일을 이렇게 지시하지?라는 의문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이런 업무 스타일에 내가 적응하는 것이 맞는 걸까?

조금은 큰 기업에서 쓰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 맞는 걸까?


어쩌면,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고 가만히 있을까?'

'회사가 잘 되어야 내가 잘 되지. 이 일에 뛰어들어볼까?' 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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