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토너, 노잼 소설 아닙니다.

그 시절의 네X트판같은 고자극 소설(특히 N에게)

by 정그루
스토너.jpg 출처: 교보문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투쟁을 하는 사람에게 꿈이니 희망이니 사랑이니 하는 아름다운 것들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애매하게 풍족하여 애매하게 배가 부른 나는 평안한 세상에서 쓸데없는 것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은 것으로 감상에 잠기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어떻게 보면 우직하고 굳건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체념한 모습이 가여워 보이기도 한다.


"노동으로 인해 몸이 구부정해진 아버지는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척박한 땅을 지그시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끔 몇 년 전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면 마치 낯선 사람 같아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땅과 똑같은 갈색을 띠고, 땅처럼 수동적이던 사람."


윌리엄 스토너는 아버지의 뜻대로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가정에서의 의무에서 벗어난다.

"정말로 제가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가 물었다. 반쯤은 아니라는 대답을 바라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안정이나 여유, 사랑이 들어오진 못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노동과 무관심이었고, 다른 대학 사람들과 달리 단벌신사 차림으로, 늘 노동을 하면서, 먼 길을 걸어 다니며 힘겹게 공부를 해 나간다. 그는 항상 외로워서 소설 속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그러던 그가 문학을 사랑하게 되고, 슬론 교수와의 대화 덕에 자신의 마음을 입으로 말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기 꿈을 찾으면 바랄 게 없다 생각하겠지만 스토너는 자신이 꿈을 가졌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꿈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고민한다.


"그는 자신과 부모가 잃어버린 것을 슬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스토너는 자신이 무엇을 할 생각인지 아버지에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자신이 중요한 목표라고 판단한 것이 옳다는 감정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려고 애썼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듯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아버지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대학에서 만나게 된 핀치와 매스터스를 통해 누군가와 교류하게 되고, 그중 유난히 시니컬하지만 솔직한 매스터스와 은밀히 잘 통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가 한 독설은 오래도록 그의 마음속에 남는다.


"자네가 누군가? 소박한 땅의 아들? 자네가 행세하는 것처럼? 아니, 아니지. 자네도 환자일세. 자네는 몽상가이고 광인이야. 세상은 더 미쳤지만. 산초가 없는 우리만의 돈키호테. 푸른 하늘 밑에서 뛰놀고 있지. 어쨌든 우리 둘의 친구인 저 녀석보다는 똑똑하니까. 하지만 자네에게는 오점이 있네. 오래된 약점. 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목화밭의 바구미, 공줄기 속의 벌레, 옥수수 속의 좀벌레. 자네는 그런 것들을 마주 보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해. 너무 약하면서 동시에 너무 강하니까. 이 세상에 자네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없네."


사랑받아 본 적이 없고, 존중받아 본 적이 없던 사람, 선택지가 많지도 않고 선택지를 물릴 수도 없는 사람. 어느 상황과 조건에서도 사랑해 줄 존재가 없어 본 사람. 그게 스토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너의 결혼식에서 스토너의 아버지가 한 말이 깊게 기억에 남았다.


"... 윌리엄에게 잘해주어라. 녀석에게도 누군가 잘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머릿속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중 '~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 나의 남편은 고난 없이 풍족하게 나를 지켜줘야 해(이디스), 사람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항상 긴장하고, 사람을 믿어선 안 돼, 사람들은 규칙을 잘 지켜야 해, 자식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해, 이혼을 하면 수치스러우니 이혼해서는 안 돼, 등등.


그러나 스토너는 오히려, '~해야 한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존중받아야 해, 나의 삶 속에서 타인, 나라 등보다 나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해, 나는 사랑받아야 해. 고독 속에서 가지기는 어려운 생각이고, 그 시절에 농촌 출신 우직한 남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어렵긴 하지만. 매스터스의 말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에 가더라도, 제발 부탁이니 하느님이나 조국이나 친애하는 미주리 대학을 위해 가지는 말게. 자네 자신을 위해서 가는 거야."


매스터스가 죽지 않았다면, 그래서 오래도록 스토너와 교류할 수 있었다면, 스토너는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은 덜 참으며 살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고, 누군가의 '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펼쳐진 스토너의 삶. 자신의 삶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고, 그러므로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 결여된 스토너의 삶. 결국 스토너는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해 우정, 사랑, 결혼 등을 추구하며 자신의 삶에 색채를 칠해보고자 했으나, 하나둘씩 실패하면서, 역시 나는 안 되지, 체념하고, 다시 땅과 똑같은 갈색으로, 수동적인 사람으로서 삶을 마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매우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열풍인 이유는 이 쓸쓸한 남자의 모습이 안쓰럽고 속상하기도 하면서도, 알 수도 없고 내가 평생 장착할 수 없는 '밤티' '테토' 적 강인함이 강한 끌림을 주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주변 사람들의 후기만 가지고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내 주변에서 MBTI 'N'(직관형) 들은 스토너의 이야기를 굉장히 자극적으로 보고 흥미진진하게 읽는 경향이 있었고, 'S'(감각형) 들은 누군가의 (고난 섞인) 일대기를 주욱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독서 경험도 큰 차이가 났다. 나의 경우는 조금 읽다 자려고 하다 눈이 커져서 새벽까지 단숨에 책을 읽고 잤고, 어떤 친구들은 잘 읽히지 않지만 계속해서 읽어 나가곤 했다. 몰입의 정도나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지만, 책을 읽은 주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스토너의 삶을 '실패'라고 표현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신다면, 일단 한 번 읽어보시고 생각해 보시라고 말해보고 싶다. 특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척박하게 살던 무채색의 삶에서 '00'을 발견하며 변화하는 초반의 모습에서는 특히 감동스러웠다. 이 책은 책꽂이에 두고 오래도록 보관하고 누군가에게도 빌려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이런 SF 소설이라면 한 트럭도 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