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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Oct 04. 2023

명절 연휴를 보내는 마음

우린 사실 반복해서, 모두 같은 시기 같은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다


명절은 연휴다





이 한마디 명제(?)가 저 자신에게 정확하게 인식된 것은 아마도 십오 년 전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명절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높은 물가임에도 빼먹을 수 없는 어수선한 장보기와 날카로운 신경질이 더욱 곤두서는 이맘때가 그래서 저는 유독 싫습니다. 다른 때에도 장을 보고 먹을 것을 만들고 식구들을 찾아 만나지만 왜 유독 명절이라는 이름이 붙는 기간이면 마음이 산란하고 피로감이 몰려드는지... 명절이 되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들로 속은 엉망이 되고 며칠 전 본 부모의 얼굴이지만 다른 날과 다르고 형제들까지 모두 모이니 의무적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산소를 가기 위해 정체되는 구간을 각오하고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 채 보내는 도로 위의 시간들, 부모들의 스케줄에 아무런 의미도 모른 채 동석하는 아이들의 짜증, 우린 모두 이렇게 반복되는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평소, 있을 때 잘하자



나의 뿌리인 조상과 유일하게 연결되는 행사의 날, 명절은 크게 일 년에 딱 두 번, 설날과 추석입니다. 우린 일 년 이십사절기 때마다 온갖 행사와 함께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해 먹었던 민족입니다. 그게 사는 재미고 낙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생존 방식 중 하나였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명절이란, 기름진 별식이 잔뜩 등장하는 날이었고 나라가 가난해 모두 못 먹고 못살던 때라 한꺼번에 영양 공급이 가능하던 날이었던 명절은 행복한 날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더더욱 조상을 기리는 일과 연관된 것이라면 포식도, 자잘한 다툼 정도는 묻고 갈 수도 있는 날이었을 겁니다. 평소 보기 어렵던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서로 위안이 되는 만남들이 힘이 됐을 겁니다.



디지털이 보편화된 세상, 발달한 교통으로 일일생활권이 된 지금의 명절은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순간순간, 서로에게 평소 '있을 때 잘하자'는 생각을 갖고 삽니다. 죽은 사람의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에 본 적도 없는 조상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다양성으로 이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평소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며 같이 식사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본체만체하다가 어느 날 문득 죽은 사람이 그리워질까요? 특별한 날도 의미 있고 중요하지만 평소의 소소한 관심을 주고받는 관계가 더 소중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명절에 커다랗고 비싼 선물을 안겨주는 자식도 좋지만 그 못지않게 부모가 밤잠을 깨지 않고 잘 자는지 물어봐 주고, 먹지 말아야 할 재료를 빼고 조리하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애써주는 자식의 마음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 매일이 소중합니다.






이제 명절은 철저하게 연휴였으면 좋겠다


너무 바쁘게 시간을 쪼개 살면서 공식적으로 올곧게 며칠을 쉴 수 있는 날, 이 귀한 쉬는 날들이 전 이제야 좋아할 수 있는 날이 되었습니다. 미음과 몸이 쉬어갈 수 있는 연간 두 번 주어지는 휴가가 되었습니다. 조금은 게으르게 밀린 잠을 자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정말 한가로이 텅 빈 서울에서 산책을 즐겨도 좋은 기간이 되었습니다. 그도 아니면 무한정 보고 싶은 영화를 봐도 좋고 여행을 다녀와도 좋은, 무엇을 하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이 기간이 좋아졌습니다.



이젠 명절을 다시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현재를 함께 사는 우리가 행복하고 좋은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린 모두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이젠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켜야 할 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지금을 사는 우리의 태도를 제한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린 모두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지나고 나면 또 하나의 과거와 역사의 일부가 되겠지만, 우리의 매일이 지난 시간에 묶여 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가족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는 시기니 오랜만에 가족 간의 끈끈한 연대를 느끼기에 좋은 시기라 한다면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으나 조금만 넓게 보면 그 외에도 가족을 포함한 인간적 연대를 느낄 만한 기회는 다양하게 있습니다.






나이를 먹은 세대인 제 입장에서 보자면, 저는 명절을 구실로 자식들이 특정한 날에 굳이 먼 거리를 달려와 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멀리 있더라도 평소 자주 서로의 안부에 관심을 갖고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범한 날 함께 웃을 일이 있으면 카톡이 되었던 전화가 되었던 여러 방법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어렵겠지만, 특별한 날 - 특히 명절 연휴에는 자식들도 저도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간으로 활용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도 중요하지만 가족 개개인의 시간들도 모두 소중하니까요. 이런 인식의 전환은 어른들이 먼저 행동으로 실천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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