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뫼비우스띠 위를 걷고 있는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기혐오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자기 연민이란 자신을 측은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되지만 그 상반된 끝의 만나는 지점엔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대략 두 가지 모습에서 서성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어.
더 나아가서, 내가 바보같이 멍청한 판단을 해서 우리가 큰 손해를 봤어. 도대체가 나는 왜...
가끔 보면,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랄한 비판의 어투로 강한 단어들만 골라서 상대방을 기 죽이는 말만 쏟아냅니다. 듣는 사람이 어지간한 멘털이 아닌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로 독설을 퍼붓습니다. 그런 행위와 과정이 반복됩니다. 처음엔 듣는 사람이 억울해하다가 반복이 되고 나면 익숙해져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그저 잔소리로 듣기도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것이 내면화되고 그 사람의 인격에 녹아들면, 그 사람은 사소하고 예민한 상황이 발생하면 세상 모든 것의 원인은 자신에게 화살이 향합니다. 지독한 가스라이팅의 결과입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과 잘못은 모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고 혹여라도 실수할까 두려워 항상 긴장하며 삽니다.
말하는 사람은 가만히 보면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자신이 하지 못한 공부를 대신 강조하고 잘해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면서 대리 만족을 얻으려 하는 현상말이죠.
다른 집 애들은 안 그러는데 넌 왜 매번 그 모양이니?
OO 씨는 금방 하던데 ㅁㅁ씨는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예요?
네 오빠는 크면서 그런 짓을 해 본 적이 없어.
이번엔 시험 문제가 어렵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많이 틀렸어?
아무렇지 않게 너무 쉽게 하는 말들이지만, 그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다른 집 아이들과 내 집의 아이들은 다른 인격체이고, 팀의 구성원 간 업무 능력의 차이는 각각 과정의 차이가 반영되니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형제들 중 각각의 특성은 역할이 결과로 나타날 뿐이니 역시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시험을 매번 만점 받는 아이만을 당연시하는 부모가 얼마나 아이를 알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심지어 이전의 나와 자신을 비교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인간의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모든 비교들은 불안을 만들어내고 그 부정적인 감정은 상처를 받아 자신감과 의욕은 사라집니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부모 아래 자라는 자녀들은 억압된 분노를 표출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고 쉽게 자기혐오에 빠집니다.
최근 심리상담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살기 좋아진 세상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예전보다 더 힘들어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훨씬 더 잘하는데 주변에서는 인정보다 비난이 더 잦아 우울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와 자신에 대한 왜곡된 우월감이 뒤범벅이 됩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되면 우울감은 깊어집니다. 왜곡된 자기 연민에 빠져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자신보다 못한 이들의 성공을 견디기 힘듭니다.
그 많은 기회 속에 괜찮은 내 몫은 없고 늘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민감해진 만큼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자기 연민에 갇힙니다. 깊은 자기 연민은 부정적으로 작용해, 심리적으로 우울한 생활은 고착되고 비뚤어진 시각을 갖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과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그에 따른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며 괴로워합니다. 쉽게 고칠 수 있던 작은 잘못을 끌어안고 스스로 자꾸만 안으로 빠져들며 자기 연민은 제살 갉아먹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영국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는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의 심리와 인간관계, 사회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너무도 사실적이지만 우리가 얼마나 자신도 잘 모르는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상대방이 건넨 어설픈 호의에서 시작된 잘못된 관계와 감정, 심리에 관하여 - 코미디언인 주인공 도니가 이미 실패한 자신의 공연도중 자기 삶의 모든 과정에서 자기혐오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 자기 고백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도니의 대단한 용기를 보게 되지만, 더 끔찍한 건 그가 스스로 그것을 알면서도 또 똑같은 굴레 속에서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크기는 가늠하지 못합니다. 작은 실수에도 쉽게 주저앉아 버리는 자기반성, 자기 경멸은 혐오를 향해 빠르게 달려갑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점의 티끌도 용납하지 못하는 혐오와 경멸의 모습은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과 서로 상반돼 보이지만 그 뿌리는 같습니다.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마지막에 이르는 감정 -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모든 것의 시작 지점이 아닐까요? 인간이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아, 이 자기애는 얼마큼 커야 한단 말인가! 이 자기애는 얼마큼 자기를 경멸한단 말인가! 저기 있는 저자도 자기를 경멸하는 것만큼이나 자기를 사랑했다. 내가 보건대 그는 크게 사랑하는 자이며 크게 경멸하는 자다.... 나는 크게 경멸하는 자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