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사나를 추구합니다
사전을 따로 ’읽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난 가끔 사전을 읽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두고 천천히 무작위로 찬찬히 넘겨가며 읽습니다. 책처럼 진도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느 시기가 되면 무작위로 페이지를 찾아 읽곤 합니다.
알던 말들도, 모르던 말들도 다시 의미를 곱씹어보며 하나씩 읽지만 생각보다 빨리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 의미 속의 단어를 또 생각하다 보면 더 깊이 물고 늘어지게 됩니다. 의미가 혹은 단어 하나가 연상하는 기억들을 속으로 정리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지만, 스토리도 없고 개연성도 없지만 가끔씩 사전을 찾아 읽습니다. 말 그대로 사전을 읽.는.다. 는 행위를 합니다. 궁금한 것을 찾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 책으로써‘, 읽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면 많은 것이 흐려질 때가 옵니다. 기억도,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보이는 것도 모두 흐려지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정신줄을 바짝 잡고 살려고 하는 것도 이 흐려지는 현상을 조금 늦춰보려는 것일 뿐이란 걸 알지만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자꾸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모르거나 쓰지 않는 단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매일 쓰는 말만 쓰고 비슷비슷한 생각들만 공유되다 보니 독특한 언어나 새로운 의미를 실제 현실 세상에 가져다 쓰긴 어렵기도 합니다. 유유상종을 우선시하는 곳이 세상살이가 되었습니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뚱맞은 책을 손에 들어도 머릿속에 다시 들어오는 일상과 생각들은 단어 하나가 갖는 여러 의미의 일부가 삶이라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란 걸 의외의 지점에서 깨닫게 됩니다. 역으로 그런 방식으로 사전의 언어들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말들이 됩니다.
머리 싸매고 죽고 살 것처럼 아등바등할 것도 아니란 것을 객관화해 보는 나름의 방식도 괜찮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참 길고 복잡한 것 같지만 수많은 책 속의 단어 하나가 갖는 의미만큼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또 달리 살아볼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이건 어지간한 종교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멍하니 사전을 읽다가 멈추는 시간이... 꽤 긴 그 시간이 이무 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슬쩍 미음을 채워줍니다.
비관론자가 아니더라도 너무 진지하게 삶을 숨조이고 사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버릇없는 판단과 성급한 판단이 가져오는 실수들만 가득한 삶이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겁고 무겁게 내려가다 보면... 어디쯤에서나 알게 될까요?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릴 때 신기한 단어를 찾는 재미로 보았던 사전을 이젠 어느 한 곳에 머물며 단어와 의미를 환기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없지만 쓰여진 글자 그 이상의 많은 상상과 의미를 배웁니다.
몸이 심하게 아플 때 온몸에서 기운과 호흡이 서서히 빠져나가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눈앞이 까맣게 변하면서 모든 물체가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 블랙홀 같은 상태에서 뭘 더 하거나 뭘 덜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병원의 주사 한방으로도 그냥 정신을 잃고 나가떨어지는 육신을 가진 우리들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