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쉬어가고 싶지 않나요?
살면서 변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특히 성격은 살아오는 과정대로 딱 그만큼 변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극복했거나 주저앉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그 모든 것이 신기하게 한 사람의 얼굴에 다 들어갑니다. 그대로 드러납니다.
저는 사실 성격이 굉장히 급합니다. 뭐든 해야 할 일이면 빠르게 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이면 빠르게 하지 않는 걸로 결정하고 잊어버립니다. 새로운 것에 겁이 없어서 낯선 문제나 환경에서 오히려 잘 지내는 편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 느끼는 고민의 강도에 따라 혹은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는 시점에 따라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을 며칠 보내고 바로 결정, 실행을 해 버립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결정이 올바른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큰 후회가 없는 걸 보면 나름 그때 당시의 이유가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 유난히 깊은 잠을 자기 어려운 탓에 거꾸로 밝은 날 몸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내려 않습니다. 그나마 요즘은 운동을 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몸이 건강해야 생각도 건강해진다는 말을 생활 속에서 지주 경험합니다. 따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엄마들이 얼마나 빠르게 세상과 단절되고 무력해지는지 경험하며 무척 힘이 들었었기에 매번 그런 순간이 오면 그냥 편하게 마음먹고 쉬려고 합니다. 뭘 당장 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면 하나씩 시작하면 되니까요.
힘에 부칠 때가 되면 보통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살아온 세월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존재의 무가치함으로 괴로웠을 때, 돈이 부족해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전혀 할 수 없었을 때,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그저 누워있어야만 했을 때, 잦은 무기력과 무능으로 삶의 탈출구를 전혀 찾지 못했을 때... 삶이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일상을 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매번 다시 시작을 해야 했지만 자의던 타의던 이제 겨우 그 구멍에서 조금씩 탈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날인가부터 가끔씩 귀찮은 날이 생기곤 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주 잠시 무기력이 찾아오지만 아주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서 굳이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쉴 뿐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일상을 살게 되면 전보다 더 치열하게 시간을 보낼 줄 알았지만 그 반대로 빨리 지치고 귀찮은 날이 더 많아집니다. 보통은 마음이 힘들 때보다 몸이 힘들 때 더 빠르게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체력 이슈? 일수도 있지만, 워낙 생각이 많은 편이라 그럴 때마다 몸을 움직이곤 해서 위기? 를 벗어나곤 했습니다. 생각할 기력이 없을 때까지 힘을 다해 운동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생각에 지쳐서 몸이 무너지는 느낌이 날 때 그냥 밖으로 나가는 이유입니다.(사실 이것도 최근 몇 년간에서야 가능해졌습니다.)
시간만큼 변하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사람도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합니다. 보통은 변하는 세상만큼 그 시간만큼 사람도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한결같은 사람이 된다는 건, 그 모습을 유지한다는 건 기본적인 자기 확신과 물리적인 체력의 완고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둘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야 합니다. 한결같은 사람은 겉보기와 달리 실시간으로 자신에 대해 더 혹독히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저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한결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단단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특히 찬 바람이 부는 계절로 접어들 때마다 삐걱거리는 몸이 아직 적응하긴 쉽지 않습니다. 찬 계절의 맑은 머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면서도 따라주지 않는 몸을 단련하지 못한 깊은 후회를 여전히 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애썼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지만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을 유지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아직 움직임의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지만, 날씨가 쌀쌀해지니 버겁기는 합니다. 쉽게 굳어지는 몸이 마음까지 굳어지게 하지 않기를 애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