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냥 생각

시절 유감

위험을 감수하려거든...

by gruwriting



사람의 마음은 이중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 방향이 자신을 향할 때와 다른 사람을 향할 때 일관된 생각을 갖지 못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때, 그럼에도 그 이중적인 것조차 당연하다고 스스로 안심하려는 과정을 자주 경험합니다. 불편함이나 위험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유튜브를 보면서 외국인들이 자주 하는 말을 봅니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라며 극찬하는 것들, 하지만 우리도 있었습니다. 국가적 행사를 시점으로 일제히 정리를 해온 과정이 있었고 유난스러울 정도의 자기 검열에 집착하는 국민적 특성도 한 몫했을 겁니다.






인색해지기로 마음먹다


지금처럼 노숙자가 한정된 곳에 있지도 않았고 지하철이 깨끗하지도 않았습니다.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손 벌리고 대중교통을 사용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소매치기에 몸 사릴 때가 있었습니다. 밤중의 도둑이나 강도를 막겠다고 벽 담장 위로 깨진 유리 조각을 박고 철조망을 치며 방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입학 후 얼마 안 되었을 때쯤일까요? 길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동냥을 하던 모습이 빈번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로지 동냥을 하기 위해 추운 겨울 청계천 육교 위에 즐비하게 앉은 사람들, 목숨이 살아 있는 한 움직이지 않고 거리에 나 앉은 모습은 불쌍하다는 감정보다 한없이 무책임해 보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오만이 가득했을 때라 그랬을지 모르지만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매만지면서도 한 푼의 돈도 넣어주지 않고 육교를 지나쳤습니다. 그때, 스스로 인색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동냥에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베푸는 것에 인색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살아있는 목숨 값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려거든,


다른 사람을 동정한다는 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에 대해 동정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매우 위험합니다. 차라리 외면합니다. 베풀면 마음이 풍족해진다고들 합니다. 인색한 탓에 알 수 없지만,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한 자위는 아닌가요? 스스로 베풀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위안은 아닐까요? 우린 과연, 무엇을 베풀 수 있는 걸까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나요? 모두 스쳐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사람도 시간도 시절도 모두... 동정을 받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은가요? 왜 당당한가요? 그 보다 큰 위험이 어디 있을까요?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순간, 극한의 수렁에 빠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 삶에 구역질이 날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위험조차 인지하지 못할 때, 건너편 큰 강 줄기를 따라 불덩어리가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 공포 속에서 살면서도 자신의 위험은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후과를 알지 못하기에 미련하게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세뇌합니다. 과일 껍질이 아까워 다 먹는 사람을 비위생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일 껍질이 몸에 좋다는 썰로 꾸역꾸역 거친 것까지 먹느라 생고생을 하는 것에 대단한 찬사를 보낼 이유도 없습니다. 총구가 머리를 겨누고 있을 땐, 무조건 모든 걸 걸어야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려거든, 그 후과도 반드시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과 마음이 따라가는 것,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지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어떤 경우라도 지금에서 더 좋아질 것도 또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 슬픔만 남을 뿐입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꺼릴 줄 안다면, 다른 사람들의 실패와 불행에서 기름진 우쭐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타인에 대한 동정심으로 스스로를 위안하지도 않습니다.



...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에서는 스쳐 지나가야만 한다.

... 도와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 돕겠다고 달려드는 덕보다 더 고귀할 수 있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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