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성인이 되고 자신의 판단으로 살아가는 과정은 수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혼자 사는 인생, 어차피 혼자라는 생각이지만 그 혼자가 온전히 살아가는 세상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세상의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성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영향이 되기도 하는 삶, 그런 것의 총합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가끔 '혼자'라는 것에 갇혀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거나 손을 내밀지 못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극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극한의 상황이 발생해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없을 때,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보통 거주 지역을 보면, 그만그만하게 아이들 또래가 밀집된 곳들이 있습니다. 부모들과 아이들의 또래가 비슷한 지역, 아이들을 키우던 곳은 그랬습니다. 서울 외곽으로 이사한 곳은 이제 막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한 젊은 초보 엄마·아빠들이 살던 곳입니다. 1~6살 사이 아이들이 특히 밀집되어 있었고,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놀이터를 나가고 친구를 데려오고 하면서 자연스레 이웃이 생겼습니다.
한때, 아이들 교육을 목적으로 부모들이 주택을 구입하면서 육아 마을(?)을 이루며 산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류와는 달랐지만, 이사한 곳에선 또래 집단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루 한집씩 아이들이 모여 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사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놀며... 이 틈에 엄마들은 편하게 자신의 일을 하거나 밖에 볼일을 볼 수 있는 짬이 생겼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엄마들의 삶에 '휴식'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이 모이는 시간)을 빼고는, 돌아가며 매일 점심 식사의 번거로움을 한 곳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엄마들은 휴식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이건 사실 아이들을 같이 놀게 하면서 부수적으로 엄마들이 얻은 꿀 같은 덤이었습니다.) 더 좋은 건 엄마들의 관심 분야와 재주가 서로 달라서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언어와 미술, 음악, 운동 등 굳이 끼워 맞추려는 지식이 아니어도 기본적인 것들은 함께 배우고 나눌 수가 있어서 아이들 발육에는 꽤 좋았습니다.
풍선으로 요술처럼 인형을 만들어주고, 찰흙으로 서로 장난처럼 모형을 만들고, 배운 적 없지만 서로 모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얼떨결에 한글도 배우며 책을 읽고 힘겨루기도 해 봅니다. 가끔은 싸우기도 하지만 여럿이 함께 하다 보니 금방 해소가 됩니다.
한두 명의 아이들만 있다 보면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할 때 개인의 의견만 중요합니다. 관계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함께 놀면 엄마들은 자신들이 몰랐던 아이들의 성격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노는 방식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볼 수 있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 아이들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집 안에서와 집 밖에서의 모습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어른들도 그런 것처럼)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호는 아이들을 항상 모아서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무엇을 하든 같이 하려고 하고 나이가 서로 다른데도 어린 동생들도 반응을 보이면 가급적 많은 아이들과 같이 놉니다. 자라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몰고 다니던 것이 그런 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도 1호와 2호는 둘 다 한두 명이 아니라 항상 많은 무리의 아이들을 데려오곤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2호가 아이들과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갖고 놀고 싶은 장난감을 옆의 아이가 뺏어가도 노여워하지 않습니다. 갓 돌을 지난 아기인데도 울지 않습니다. 장난감을 뺏은 아이의 엄마가 미안해 하지만, 그저 대신 다른 것을 가지고 놉니다. 그리곤, 나중에 그 장난감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가 되면 결국 그것으로 자신이 놀고 싶은 만큼 놀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2호는, 이후로도 성장하는 동안 누군가와 싸운 적이 없습니다. 갈등이 생겨도 말로 설득하는 편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했던가요? 어쩌면 대가족 제도였을 때가 아이들이 자라기엔 더 좋은 환경이었을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른 손길을 걸쳐 생각도 자라는 측면이 강하니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모든 것을 부부가 함께 하면서도 자세히 세세한 것은 엄마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자잘하고 소소한 것들에 늘 감정은 요동치고, 그 과정에서 항상 갈등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길어지면 제풀에 지치곤 합니다.
사실, 육아는 특별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모들 고유의 품성대로 가진 만큼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보듬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애쓰지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힌 것처럼 억지로 자식을 꾸며낼 순 없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부모의 품성 그대로 성큼 자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