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게 뭐 이상해요?

by gruwriting


- 과정은 과정일 뿐,


생로병사처럼 모든 일에는 반드시 ‘과정’이 존재합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이 돌아가는지... 그 모든 것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듭니다. 그 중 교육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교육 자체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엄마가 처음부터 무신경하게 패스해 버린 곳, 유치원입니다.






1호는 학교 입학 전에 학원이나 유치원을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미술학원조차 다니길 거부하던 아이니, 아이에게 별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고 불필요한 걱정을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이 성격상 통제가 엄격한 곳, 정해진 틀에 맞춰야 하는 것이 답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미술학원을 하루 만에 그만뒀으니......






왜요? 뭐예요? 왜 그런 거예요?


우리가 아는 5 W1 H는 현실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다채로운 삶의 모양을 만들어가기 필요한 것들이지만 대부분의 생각에서 생략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WHY는 더 그렇습니다. 삶이 더더욱 단조로워집니다. 무한정 물어볼 수 있고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안에서 무수한 실패와 깨달음을 얻습니다.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라도 모든 걸 알지 못하고 잘못 알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결할 방법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같이 찾아보고 알아가는 과정이 있으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궁금해하고 질문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과 열린 기회는 사고의 확장을 가져옵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을... 1호는 부모가 왜 자신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는지 의아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또래 중 자신만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귀하고 좋은 경험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1호가 학교에 입학하던 해, 2호의 시샘(자신도 어딘가 같이 가고 싶은 마음, 대체로 둘째들은 특별한 동기 없이도 무작정 첫째를 따라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덕에 어쩔 수 없이 유치원을 보내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알아가는 과정은 사실 사회에 나와 살아가는 틀에서는 꽤 괴로운 아이덴티티를 형성합니다. 늘 민족 하지 못하고 늘 뭔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민합니다. 대부분이 답을 찾기 어려운 경우지만 가끔 얻는 성취는 큰 자신감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만드는데 큰 동기가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잘 먹는 식성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식성이 훨씬 먹고 난 후의 만족감을 주지 않던가요? 단체 회식의 메뉴 외 굳이 귀찮게 손수 해 먹는 집밥 메뉴를 떠올리면 차이가 명확하지 않은가요?






각자 가야 할 길이 다르니까


그렇습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기준, 철학을 갖고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최소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에게 무엇이 맞지 않는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누구나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 그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도 없습니다. 무비판, 무취향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그럴 수기 없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긴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삶이 꾸려지길 바랍니다. 부모나 아이나 결국 시간 순서만 다를 뿐, 모두 그 과정을 함께 밟으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부모들은 너무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까지. 그것이 부모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빈약합니다. 사실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무한히 기대하고 보상을 꿈꾸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삶과 자식들의 삶을 너무 깊이 함부로 묶어 버리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부모나 자식은 모두 각자의 삶으로 살아야 탈이 없고 그래야만 서로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서로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 지점이 내가 엄마와 너무 다른 것을 확인합니다. 아이들은 압니다. 엄마가 얼마나 자신들의 삶을 존중하는지, 그리고 언제나 함께 나누려고 하는지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자식들이 얼마나 부모와 함께 자신들의 것을 공유하고 부모를 이해하려고 애쓰는지 압니다. 그 바탕에는 서로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각각의 삶에 대한 존중이 있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책 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한참 나의 기질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때 명쾌함을 얻은 책이었습니다. 겨우 중학생이 되었을 때라 책의 깊이를 다 알지는 못했지만 아, 이거지! 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던 문장이 있습니다. 당시의 그 생각(혹은 마음의 감각?)은 여전히 삶에 남아 있어 가끔씩 곱씹어 봅니다. 어릴 때 고집스러웠던 모든 생각과 행동들 덕에 오히려 이제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시야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책의 일부 문장을 인용해 봅니다.


길을 물어본다는 것은 언제나 나의 미감에 거슬렸다. 오히려 나는 길 자체를 물어보았고 시험해 보았다. 시도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였다. 그리고 참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이것이 나의 미감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가야 할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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