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소름 돋게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배운 적도, 알려준 적도 없지만 아이의 행동이나 말이 어느새 어릴 때의 엄마나 아빠의 모습을 고스란히 실현해 낼 때가 있습니다. 어?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뭔가 닮은 것 같은데?... 일견, 어떻게 엄마나 아빠의 어릴 때 행동이나 말이 그렇게 판박이처럼 드러날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게 그 DNA의 무서움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처럼 아이들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더 나쁜 어른이 되지 않도록(?) 어른들도 함께 성장하나 봅니다. 하지만 하필 좋지 않은, 올바르지 않은 것들이 더 두드러지게 보여 부모들은 훈육을 감행합니다.
같은 내 자식이라도 먹는 것, 성격, 생김새, 놀이 취향도 참 많이 다릅니다. 게다가 놀이 환경이 달라지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2호는 1호와 달리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사귀면서 체험할 것들이 많았고 좋아했습니다.(하지만, 아이와 유치원의 관계가 낯설어서 엄마인 저는 사실 이 과정이 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당장에 무슨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닌데 묻는 말에 자꾸 거짓말을 하는 게 보입니다. 고민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어땠었나? 정확하진 않지만 어렴풋하게 저 역시 한때 어릴 때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어른들이 속는 게 재미있어서, 진짜처럼 믿어주는 친구들이 신기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돈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자를 사 먹고 싶어서...
유치원을 가지 않은 1호는 고지식한 부모들의 훈육 방식 그대로 성장했지만 또래 집단이 있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2호는 사뭇 낯선 성장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글을 알게 될 무렵부터 두 아이는 모두 <용돈기입장>을 적어야 했습니다. 당시 용돈이라 봐야 몇 백 원이 전부였지만 군것질 몇 가지를 살 수 있는 금액이라 무엇에 쓰였는지 적어서 확인해 줘야 다음 용돈을 지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놀고 와서 저녁에 무조건 적어둬야 다음 주 용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뽑기 50원, 막대사탕 30원, 아이스크림, 쫀득이, 구슬, 반지 등등... 이렇게 꼬물꼬물 모여서 300원, 500원의 용돈을 다시 받기 위해 애쓰던 때였습니다.
아... 어떻게 이렇게도 비슷한 과정을, 내가 저지른 잘못을 아이도 어느새 하고 있을까? 그냥 지나가는 성장 과정 중 자연스러운 모습일 뿐인가? 여러 번 헷갈리며 스스로 위안도 해보지만 그래도 거짓말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을 방치할 수는 없어서 물렁해지려는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꼭 고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전을 한 움큼 쥐고 얼마인지 알려줬습니다. 그리고는 냅다 거실 바닥에 뿌리며 하나라도 없어지면 큰 벌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도록 동전은 뿌려졌다 모였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며칠간 몇 번의 반복을 거치고도 동전은 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습니다. 어렴풋하게나마 동전이 뭔가 먹을 것과 바꿀 수 있다는 걸 막 알게 된 나이라서 나름 동전이 소중했던 것 같습니다. 포기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꽤 긴 시간, 1주일간 마음고생을 거치고 버릇은 고쳐졌습니다. 그리곤 돈에 대한 욕심은, 쿠폰으로 심부름을 하거나 엄마, 아빠를 도와주거나 해서 좋은 일을 하고 대신 돈을 받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저 동전 던지기는 사실 엄마가 저에게 썼던 방법입니다. 그게 얼마나 긴장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효과적인 것도 자신 있었지만, 그 과정은 좀 신기했습니다. 당시 저의 거짓말은 엄마의 동전 던지기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그 끝이 길어서 결국 아버지의 결단으로 최후의 끝은 정말 처참했고 버릇은 고쳐졌습니다. 부모님은, 특히 거짓말엔 단호했고 그걸 깨닫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종일 놀고 들어왔지만, 밥을 굶어야 했고 배고프고 꼬질꼬질한 채 집밖으로 쫓겨났습니다. 불이 꺼진 깜깜한 밤에도 밤이 새도록... 정말 부르지 않아 집 대문 밖에서 밤을 꼬박(부모님 역시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을 겁니다.) 새워야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골목은 낯설고 무척 무서웠었습니다. 새벽 출근을 위해 대문이 열리는 순간 아버지를 보며 처음 한 말,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을게요.'였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거짓말까지 하다가... 진작 잘못했다고 할걸... 크게 후회했습니다.
친구들은 여전히 거짓말과 진짜를 구분하지 않아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조금 더 거짓말이 이어졌지만, 시들해져서 결국엔 그것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때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 버릇을 고치고 나면, 그리고 사소한 것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면 아이들은 조금 더 밝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 바탕엔 항상 부모가 자신의 편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듯도 합니다.
한 때는 야속하고 서운했지만, 사회 규범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상 고쳐야 할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가끔은 그래서 부모들이 단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식들이 귀하지 않은 부모는 없습니다. 애지중지하는 것만이 부모 노릇은 아닙니다. 때론 단호하고 야박하게 남보다 더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때론 세상에 다시없을 무한 신뢰를 보내는 지지자로서 든든하게 함께 있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줄 타기에서 늘 아슬아슬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것이 어쩌면 부모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것이나 양면이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작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결국 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일 겁니다. 그저, 나는 저 나이 때쯤 어땠더라?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수월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