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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ug 23. 2021

부지런한 글쓰기 검사

궁금해해야 겨우 용기 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언젠가 일이 너무 많아 학교에서 아이들의 글쓰기 공책 검사를 못한 적이 있었다. 공책을 집에 가지고 가서 검사해야지, 하고 옆에 챙겨두었다가 깜빡 잊고 퇴근하고 말았다. 퇴근 시간보다 항상 늦게 퇴근하면서도 교실 문을 나올 때마다 무엇인가 놓친 중요한 것이 있지는 않나,  마음 한 켠이 개운치 않은데 그날은 아이들의 글쓰기 공책이 그다.


학교에서 출발한 지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생각이 나는 바람에 갈등이 생겼다. 평소보다 조금만 일의 패턴이 달라져도 이렇게 정신을 놓고 다니니 이래서 정년까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럴 땐 내가 속절없이 미워진다.


결국 다음날 아이들 글에 코멘트를 달 시간이 없어서 싸인만 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랬더니 항상 글쓰기 노트에 진심인 아이 하나가 오늘은 왜 빨간 줄 표시도 없고 선생님 말도 없냐고 물어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대표로 물었던 것이지, 아마 같은 생각하면서도 말 못  아이들이 여럿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공책을 가지고 가지 못해서 코멘트를 달 시간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다음번에 다 검사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다음번 검사 땐 그 아이 글쓰기 공책에 두 개의 코멘트를 달았다. 전날 달지 못했던 과 새 글에.


나중에 그 아이 어머니께서 전화 상담을 요청해 오셔서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는 글쓰기 공책에 글을 완성하기 위해 어쩔 때는 밤 12시까지 붙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제가 학교 수업 중에 이루어진 것들로 주어지기 때문에 실제 수업을 모르시는 어머님이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힘들 것 같고, 그 시간까지 기다리기엔 솔직히 본인도 힘드셔서 대충 쓰라고 말해도 '대충'이 안 되는 아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내가 아이 글에 달아주는 코멘트를 매일매일 확인하고 엄마에게 읽어준다고 했다. 자신의 글을 독자로서 재밌게 읽는 사람이 담임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그 아이에게는 글에 정성과 진심을 쏟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그쯤 되면 2학년밖에 안 된 아이지만 그 아이이미 '작가 정신'이 충만한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솔직한 마음을 담은 좋은 문장에 그은 밑줄이나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 없이 돌아온 글쓰기 공책은 작가 정신에 대한 생채기것이다.


그렇게 나 위주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뒤로 미뤄지는 오류가 생겼다. 그때도 아이의 반응을 보며 글쓰기 공책 검사를 항상 우선순위로 두자, 고 결심했는데, 오늘 이슬아 작가가 그 결심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이슬아 작가는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일기 검사를 하던 어릴 적 담임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겨우 용기를 내서 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일기장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중요한 이야기들은 엄마와의 대화에서, 혹은 버디버디에서, 혹은 내 마음속에서 어느새 휘발되어버리곤 했다.
-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아이들의 일기 검사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하여 교사들은 학생들의 글쓰기 연습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난감다. 그러다 속 편히, 과감히 일기 쓰기를 생략하기도 한다. 신경 써서 해 주고도 욕먹는 일을 교사들이 신나서 하기는 무리다. 궁여지책으로 '주제 글쓰기'로 방향을 틀어 글쓰기를 지속하는 나 같은 교사들도 있다. 아무거나 써도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순수한 글쓰기를 이때 안 해보면 언제 맘껏 해 볼 것인가.


그래서 아직은 1학년이나 다름없는 신학기 3월부터 우리 반 아이들은 글을 쓴다. 3월 한 달 동안 매일 한 줄 쓰기를 한다. 뽐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이 쓰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1년 내내 쓸 테니 너무 초반에 기운을 다 쓰지 말라고 당부한다.

3월 한 달은 나의 코멘트가 아이들의 코멘트보다 길 때가 많다. 한 줄 쓰기이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러다 점점 아이들의 글이 길어지며 나의 코멘트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아이들의 글쓰기와 성장은 함께 이루어진다.  


교사가 궁금해할수록 아이들은 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이들의 중요한 이야기가 휘발되지 않도록 더 정성 들여 읽고 궁금해해야겠. 아이들이 쓴 이야기뿐 아니라 쓰지 않은 마음까지 살피려면 부단히 좋은 글눈을 가져야겠구나. 그리하여 재능이 없더라도 꾸준함으로 더 나아지는 글쓰기의 막강한 힘을 길러줘야겠구나.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은 내게 더 부지런해지라고, 더 섬세해지라고, 더 살펴보라고 다독인다. 변화는 질문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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