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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22. 2021

'두려움'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자세


애벌레가 번데기 벗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진 충이 되듯, 우리도 유년기에 이전의 나와 다른 내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처음 자전거를 탈 때, 뒤를 붙들어주던 엄마나 아빠의 손길에서 놓여나 홀로 자유롭게 나아가순간. 집에서는 항상 투닥거리던 동생이지만, 밖에서위풍당당 동생의 보호자가 되던 순간. 안경 쓰던 아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 그만하라던 말에도 계속 놀려대던 남자아이의 뺨을 후려치던 순간. 좋아하는 이성 친구 말하기 진실 게임을 할 때, 진짜 좋아하던 아이는 일부러 제일 후순위로 말하던 순간. 엄마의 눈물과 웃음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던 순간. 나를 둘러싼 견고한 견해와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지당한 원리라는 어른들의 세계를 뚫고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딜 용기를 내 순간...

그런 순간, 나는 내 안에 '기분 좋게 낯선' 나를 들여놓다. 낯설지만 싫지 않은 느낌은 이전의 나라면 가당치 않았을 용기를 내도록 려하곤 했.


오늘 아빠와 독감 예방 접종을 했다. 처음에는 안 떨었는데 점점 숨이 막혀가면서 떨려왔다. 내 차례가 오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맞을 차례가 됐다. 사나이의 명예를 걸고 꼭 울지 않겠다. 무서웠지만 꾹 참고 울지 않았다. 정말 무서웠다.  


석모(가명)는 '독감 예방접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순간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주사는 어른이 되어서도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예리한 주삿바늘이 피부를 뚫고 몸 안으로 침투해 오는 일은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해도 9살은 주사를 맞기에 애매한 나이다. 유치원생도, 초등학교 1학년도 아닌데 주사 앞에서 아기들처럼 엉엉 울기엔 아무래도 눈치가 보다.

특히 나고 자란 9년 여의 생애 동안 씩씩함을 강요받은 남자아이의 자존은 독감 주사 앞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아빠 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석모의 아빠도 석모 나이에 예방 접종을 맞을 때 꾹 참고 울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아마 그때 석모 아빠도 석모 아빠의 아빠와 함께였기 때문라고 짐작해 본다. 석모의 아빠도 석모 아빠의 아빠도 아들들에게 말했을 테니까. 사나이는 함부로 울지 않는 거라고.

석모는 두려움을 꾹 참아낸 순간, 더 큰 사나이의 세계로 한 발 내디뎠으리라. 석모와 아빠들이 말하는 '사나이의 명예'가 더 큰 세상 속에서도 계속 고고한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오늘 놀이 공원에 갔다. 처음에 바이킹을 타고 싶었는데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가고 도는 놀이 기구를 탔다. 정말 무서웠다. 나는 태어날 때 무서운 걸 잘 못 견디게 태어났고 동생은 잘 견디게 태어나서 나는 무섭고 동생은 안 무섭다.  


놀이 공원에 간 경험에 대해 쓴 찬이(가명)는 두려움에 대처하는 남자아이의 또 다른 자세를 보여준다.

9살 남자아이는 아빠 앞에서만 자존을 위협받는 게 아니다. 동생 앞에서는 더할지도 모른다. 동생보다 더 겁이 많다는 걸 쉽게 인정할 형들이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일깨워 준 이는 찬이의 부모였을까, 찬이 스스로 터득한 9살 인생의 지혜일까.


뭔가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형의 자존이 놀이 기구 앞에서 흔들릴 때, 스스로를 납득시킬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린 모두 다르게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 같은 거 말이다. 그러니 놀이 기구 앞에서 동생보다 무서다고 부끄러워할 것 없다. 무서을 견디는 유전인자를 더 갖고 태어나거나 적게 태어난 것뿐이니까.


두려움은 똑바로 응시합시다. 더 커지지 않도록. by pixabay


두려움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두려움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전개와 결과는 언제나 두렵다. 벗이 될지, 적이 될지 모르는 관계는 두렵다. 현재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신호매번 려움을 키운다.


두려움의 크기는 이성적인 판단과 반비례한다. 두려움이 클수록 이성적인 판단은 흐려진다. 두려움을 피하려 하면 그것은 나를 얕잡아 보고 따라잡으려 한다. 나를 무너뜨리고 압도하려 한다.


그러니 두려운 대상은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얼마나 큰 놈인지, 얼마나 센 놈인지. 돌아서서 외면하는 동안 내 머릿속 상상 속에 더 커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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