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Oct 30. 2021

의미 없는 패스는 없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설지 않은, 친숙한...

처음 나를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대게 이런 것이다. 일단 거부감 느껴지는 얼굴은 아닌 듯하니 안도한다. 그러나 어디서나 본 것만 같은 익숙함은 평범함의 다른 말이다. 그 사람만이 가진 특별함을 찾기 어려운 에게서 궁금증이 생길 수 있을까? 다 알 것 같은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신비하진 않다. 더 알고 싶은 것이 없는 대상에게 우린 관심을 오래 두지 않는다.


내 글도 내 모습을 닮았을 테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만들어내는 얼굴의 표정처럼, 내 글도 내 얼굴 같을 거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새롭지 않은, 익숙한... 문장들. 그래도 오늘은 한 편 써야 하지 않을까,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흰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만 10분 이상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 채 글을 쓰겠다는 욕심이 앞서고 있구나 자한다. 무엇을 만들지 모르고 시작한 요리처럼 재료만 부산스럽게 늘어놓고 있는 꼴이다.


어쩌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문장들을 모아 하나의 글 얽었다 해도 빈약한 글은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래서 자꾸 내 빈곤한 글을 채워줄 좋은 문장들을 찾아 헤맨다. 쓴 사람 고유의 특성이 뿜어 나오는 글을 만나면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 안달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느라 배알이 꼬인다. 커진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는 내 글이 맘에 안 들어 또 쓰지 못한다. 쓰지 않을 핑계는 차고 넘친다.


그러다 아이들의 글을 보며 꿀밤을 한 대 맞는다. 생각이 피어난 자리에서 솔직하게 쓰는 아이들의 글은 미사여구나  고민하는 나에게 정신 차리라 한다. 솔직함이 묻어난 아이들의 글은 언제나 읽는 이의 마음을 훅 끌어당긴다.


직업 놀이를 했다. 나의 직업은 떡볶이 가게 직원이다.
장사가 안 된다.ㅠㅠ 70% 세일로 했다. 그래서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사람이 안 온다.
요즘 사람들은 양심이 없다. 기분이 안 좋다.


<직업 놀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지석(가명)이. 자신이 정한 직업으로 가게를 꾸며 친구들과 가게 놀이를 한 후 쓴 글이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보다 장사가 잘 안 된 모양이다. 지석이가 다른 가게를 열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지석이의 글이 지석이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면 짧은 아이의 생각이라고 그냥 흘려보내기 어려워진다.


지석이네는 반 친구들이 전부 아는 동네 떡볶이 가게다. 한때 수도권에 코로나 확진자가 갑작스럽게 늘어나 갑자기 며칠 줌 수업을 해야 했을 때, 엄마의 가게에서 핸드폰 줌을 통해 수업에 참여했던 지석이. 엄마의 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홉 살 생은 그렇게 코로나 시대 자영업의 현실을 직면했을 것이다.

엄마가 마련한 떡볶이가 다 팔렸으면 하는 마음에 세일을 해 보지만 쉽지 않다. 장사가 잘 안 되니 불편해진 마음은 이내 화풀이 대상을 찾는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도 오지 않는 손님들. 그들의 양심이 의심된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은 지석이의 가게 놀이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놀이에서만이라도 장사가 잘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은 제기, 배드민턴 공, 종이컵을 던져서 길이재기를 했다. 나는 2m 84cm를 날렸다. 좀 적게(짧게) 날려서 아쉬웠다. 헉!!! 6모둠은 완전 멀리 날렸다! 나는 6m 90cm라고 예상했다. 세상에, 6모둠의 모든 줄자를 합쳐도 아직 남았다. 그래서 선생님이 5m 줄자를 꺼내고 줄자 2개쯤을 더했더니 10m 30cm가 나왔다! 부럽다. 나도 그렇게 던지고 싶다.


<아쉬운 수학 시간>이라는 제목의 성윤(가명)이 글에서 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더 멀리 던진 다른 모둠의  넘사벽 기록에 무참해지는 마음. 마음의 평화를 헤집는 건 언제나 다른 이들과의 비교 때문이다. 지금 내가 집중하여 행한 일에 만족하는 일. 비교를 넘어서야 찾아오는 자족이다.

하지만 부러움의 감정, 선망의 대상처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스스로를 단련시키기도 한다. 성윤이는 시간만 더 주어졌다면 부단히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도전했을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자신을 넘어서는 부단한 연습. 그를 통해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한다면 기쁨이요, 설혹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았더라도 연습의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더 큰 믿음이 생길 것이니 이는 더 큰 기쁨이 될 터. 멈추지 않고 용기 내어 내딛을 다음 한 발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성윤이에게도, 나에게도.


어린아이가 글을 쓸 때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태도. 그렇게 자라나는 다양한 생각과 마음을 정갈한 언어로 써내고 싶다. 비록 특별하지 않더라도, 남다른 매력이 넘쳐나진 않더라도. 정세랑도 <이만큼 가까이>에서 말하지 않았나. 의미 없는 패스는 없다고. 줄창하다 보면 분명 뭔가로 연결되는 거라고.  


하나씩 쌓아 올리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뭔가로 연결되게 하는 게 아닐까요 by pixabay


이전 04화 어린이를 둘러싼 세상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