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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15. 2021

어린이를 둘러싼 세상 이야기


3월부터 조금씩 늘려가며 글쓰기를 연습해 왔지만 아이들의 글쓰기 진도는 같지 않다. 흥미와 재능이 각양각색인 아이들은 각자 다른 영역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두각을 나타내기도, 뒤처지기도 한다. 자신의 결과물과 친구들의 것을 비교하며 격려를 받기도,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항상 또래 친구들에게서 더 많이 배운다.


민호(가명)는 다른 친구들보다 글쓰기 진도가 조금 늦다. 글감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생각해 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영업을 하시는 민호 어머니너무 바쁘셔서 평소에 잘 챙겨주지 못한다고 상담 때마다 미안해하셨다. 민호와 내게 모두. 거의 매일 하교 후 남아 전날 과제를 해결하고 가지만, 민호는 그렇게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다. 함께 과제를 도와주시는 협력 선생님께서 민호의 학습을 잘 도와주시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민호는 집에 돌아가 어차피 홀로 되는 시간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오늘은 집에 있다가 심심해서 놀이터에 갔다. 근데 친구들이 없었다. 혼자 놀고 있는데 좀 이따가 친구들이 왔다. 근데 친구들이 조금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20분밖에 놀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좀 아쉬웠다. 그래도 재미있게 놀았다.


<놀이터>라는 제목의 민호의 글에 등장하는 놀이터는 민호의 글처럼 단출하다. 

친구들이 없는 놀이터.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 곧 놀이터였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참 아쉬 일이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는 엄격한 안전 기준을 거친 각종 재미난 놀이 기구와 형형색색의 빛깔 고운 색감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지만 정작 함께 놀 친구가 없다. 아이들은 함께 놀 친구만 있다면 색감 좋은 놀이 기구 따윈 아무 상관없다. 허허벌판에서도 놀이를 만들어 내까.

친구들과 함께한 20분은 그날 하루 민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충분한 놀이 시간과 함께 뛰어 놀 친구들의 결핍. 우린 우리 아이들을 잘 길러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매일 봄이 되면 겨울이 그립고 가을이 되면 여름이 그립다. 왜 그런 걸까?
봄 때 누워 있으면 겨울 때 따뜻하게 장판 틀고 스마트폰 보고 있는 게 생각나고 가을에 엎드려 있으면 여름에 에어컨 틀고 수박 먹는 게 생각난다. 그래서 과일을 먹을 때,
"엄마, 왜 요즘은 수박 없어?"
라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수박은 여름에 먹는 거지~."
나는 갑자기 수박이 먹고 싶어졌다. 역시 계절 상관없이 나오는 건 우리 학교 급식이다.  


<여름아, 돌아와!>라는 제목의 글을 쓴 가영(가명)이의 계절에 대한 생각은 2학년짜리 아이만의 것이 아니다. 매 계절마다 반대의 계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보편적인 인간 정서다. 따뜻한 장판 위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에어컨을 틀어 놓고 시원한 수박을 먹는 모습.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그래도 가을에 수박을 찾는 데서 가영이의 2학년다운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워진다. 그래, 2학년이면 2학년답게 생각해야지.

그러다 계절과 상관없는 먹거리는 학교 급식이라는 통찰 다시 가영이의 아이다움을 의심다. 내 사고 수준이 2학년 아이들과 같으려나? 가영아, 선생님도 네 생각이 똑같. 어느 계절이건 우리 학교 급식이 최고야!


저번 주에 나는 반팔 옷을 입고 아빠랑 자전거를 탔다.
우리가 00산쯤 갔을 때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으스스 떨었다. 그래서 헥헥거리면서 잠바를 가져왔더니 따뜻했다. 근데 이번엔 똑토토톡 비가 내렸다. 으악!!! 나는 집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집에서 아빠가 내 옷을 쭉~ 짜냈더니 물이 2리터쯤 나왔다. 가을 날씨는 나쁘다.  


<가을 날씨는 나빠>라는 제목의 탄이(가명)의 글이다. 봄 날씨는 변덕쟁이라고 배운 탄이지만 가을 날씨도 만만치 않음을 온몸으로 체험했나 보다.

한창 국어 교육과정에서 흉내 내는 말을 배우는 중이라 2개 이상 활용해 쓰도록 했더니 열심히 쓴 흔적이 보인다. '똑토토톡' 내리는 비 어느 정도였을까 싶었는데, 짜 낸 옷에서 2리터쯤이나 나올 정도였단다. 탄이의 2리터만 한 허풍에 푸핫! 웃음이 터진다. 근데 탄아, 너 2리터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쓴 거니? 이제 가을 날씨도 변덕스럽다는 것을 체감했으니 다음 외출 땐 우산 챙겨 다니자.


일주일 전! 우리 집에 닌텐도가 왔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행운의 날이었다. 피용피용 마리오 카트 게임을 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빠, 엄마, 나, 동생이 게임을 했다. 3, 2, 1, Go! 나는 열심히 게임을 했는데... 12등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아무렇게나 누르는 동생은 3등이라니...ㅠ 엄마는 공부할 때도 안 하는 잔소리를 게임 시간에 했다.
"김준호(가명)! 오늘 안에 10등 안으로 들어! 게임도 열심히! 알겠어?"
엄마는 여기서 닌텐도 올림픽 2021년을 하는 줄 아나보다. 주말에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행운의 날>이라는 제목의 준호(가명)의 글에 나온 준호 가족의 모습이 훈훈하다. 부모들의 입장이라면 내 아이가 우리 가족의 일상글로 쓸 때 알려지지 않았으면 싶은 내용을 쓸까 봐 걱정이 될 것이다. 나도 아이들 어릴 때 조금 심하게 야단쳤던 날, 아이가 일기에 엄마를 악마로 써낼까 봐 찔렸으니까.

아이들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가 밖에서 어찌 행동할지 걱정이 된다면 가정에서 부모가 행동으로 보여주자. 아이어서 잘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건 부모들만의 착각이다. 아이들은 '매우 근본적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잘 굴러가고 있는지.


준호 어머니의 저런 열정이 준호가 공부할 때 나오는 건 아니라니 다행이다. 게임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 엄마라면 아이들이 몰래, 숨어서 하지는 않겠지. 과연 이번 주말 지나면 준호가 닌텐도 올림픽에서 10등 안에 들지 궁금하다. 이번 주말에도 준호 엄마는 열심히 아들의 게임을 응원하시겠지. 준호 엄마와 준호,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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