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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y 17. 2022

매일 카톡 프사를 바꾸고 알게 된 것


이야기는 친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아니 '카톡 프로필 사진(이하 '프사')'에서 시작되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잘 바꾸지 않던 친구 K가 백만 년 만에 프사를 바꿨다. 오랜만에 바뀐 친구의 프사에 다른 친구가 관심을 보이자, K는 "패셔너블하게 맨날 프사 좀 바꿔볼라고"라고 했다. 재기 발랄한 활동가형(ENFP)인 내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일주일간 (매일 프사 바꾸기) 배틀 한번 해봐?"

호기롭게 던진 내 제안에 K는 혹했고, K와 비슷한 정도로 프사를 잘 바꾸지 않던 H는 니들끼리 하라며 한 발 물러섰다. 매일 프사 사진 바꾸려면 머리에 쥐 나겠다는 그 친구에게, 우리가 이 나이에 매일 바꾸는 걸 뭘로 해 보겠냐며 꾀었다. 하루 식사 메뉴 중 하나만 올려도 매일 바꿀 수 있을 거라며 미션의 수행 난이도에 대해 걱정하는 친구를 안심시켰다. 다른 일로 톡을 못 본 후배 Y는 가타부타 의견을 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50 언저리 친구 4인방의 '매일 카톡 프사 바꾸기 미션'은 시작되었다.



매일 프사 바꾸기시작된 우리들의 이야기



매일 프사 바꾸기를 가장 저어하던 친구 H의 프사에는 주로 아이들의 사진이나 맛있어 보이는 요리 사진이 올라 있곤 했다. 가족 여행을 다녀오면 가족사진이 오를 때도 있었다. 오랜만에 프사를 바꾸고 이 미션의 물꼬를 제공한 K는 자칭 타칭 '식집사'다. '식알못(식물을 알지 못하는)'인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 비공식 식물 박사인 K의 프사가 주로 꽃식물인 건 당연지사. 우리들보다 한 살 어린 후배 Y의 프사는 1년의 젊음만큼 사진 내용이 다채로웠다. 아이 사진이었다가 꽃, 여행, 가족... 우리 모두의 프사를 한데 뭉뚱그려놓은 듯했다. 내 프사에는 주로 그림을 그리는 나, 등산을 하는 나, 딸과 함께 찍은 나가 있었다. 프사엔 각자의 고유한 삶이 담겨 있었다.


미션이 시작된 지 3일 째까지 H는 앓는 소리를 냈다. 매일 식사 메뉴를 달리 하는 것도 골치 아픈데 프사용 사진 고르느라 죽겠다며. 그러던 H가 3일이 넘어가자 적응이 되었는지 우리 중 가장 먼저 프사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평소에 주기적으로 프사를 바꿔오던 난 3일이 지나니 서서히 새 사진을 고르는 게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꽃을 좋아하면 매일 다른 꽃을 찍어 올리고 요리가 취미라면 매일 다른 요리를 찍어 올리련만, 뭔가를 하는 내 사진을 주로 프사에 올리던 내게 매일 프사를 바꾸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미션 수행 5일째. 핸드폰 앨범에서 최근 찍은 사진들 중 마땅한 프사용 사진을 못 찾자, 아무 사진이나 갖다 붙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른 사진 하나를 올렸다. 그날 내가 올린 사진은 저녁에 동네 걷기 하다가 상가에서 발견한 한 탕수육 가게 사진이었다. 탕수육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비상용으로 킵해둔 것으로, 가게 이름이 '행복 탕수육'이었다. 프사에 가게 사진을 올리고 프사 문구를 바꿨다.


- 행복이 별건가? 갖다 붙이면 행복이지.


사진으로는 좀 부족했다 싶어 부려본 꼼수였는데 금세 들통나고 말았다. Y가 바뀐 내 프사를 보더니 대번에,

"언니 프사 같지 않아."

라고 했다. 사진을 올리며 평소의 나라면 절대 올리지 않을 사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아는 사람도 그걸 눈치채는구나. 프사가 정체성을 갖는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다음날이 어린이날이라 얼른 '100주년 어린이날 축하' 사진으로 바꾸며 급조한 사진을 내렸다. 다시 나를 찾은 느낌이란 이런 걸까.


행복이 별건가? 갖다 붙이면 행복이지. by 정혜영


매일 프사를 변경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길어졌다. 우리는 서로가 올린 사진에 관심과 비평을 동시에 보였고 친구들이 올릴 다음 사진을 궁금해했다. 어느 날 저녁엔 톡방에 있던 친구 두 명의 프사 배경이 동시에 텅 빈 것을 보고는 프사 변경 시간대가 같다는 사실에 30여 년 전 우리들의 여고생 때처럼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친구가 프사에 올린 꽃의 이름과 꽃말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 된 게 방탄(BTS)으로 옮겨갔다가 오십견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들의 톡 수다는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다 결국 건강 문제로 귀결되곤 했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서로의 몸 돌보기를 독려하며 하루의 톡 수다를 마무리 짓곤 했다.


'매일 프사 바꾸기 미션' 종료 하루 전날 저녁,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얘들아~ 기쁜 소식이 있어. 내일이 미션 종료일이야."

친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벌써 일주일 됐어?"

"아쉽네. 벌써 일주일이라니..."

미션이 끝나가는 것이 못내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프사 바꾸기 미션은 그 뒤로 지금까지 쭈~욱 계속되고 있다. 따로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하루, 이틀 좀 늦어져도 재촉하지 않고 다른 친구가 올린 여러 장의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자신의 프사로 대신 퍼가기도 하며 각자의 경계성이 조금 모호해지고 있다는 게 약간의 차이랄까.


매일 프사 바꾸기는 50 언저리 친구들과 맞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무엇엔가 도전이라는 것을 해 본 지 꽤 되어서, 나 스스로 매일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어서, 그래도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독려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실로 오랜만에 살짝~ 설렜었나.


K가 어떤 교수의 말이라며 전했다. 좋은 걸 보고 사진을 열심히 찍는 사람은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거라고. 좋은 걸 열심히 찍어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사람은 얼마나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일까.  

"찍고, 나누고, 사랑하라."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삶이 조금은 무료하다 여겨진다면, 오늘도 열심히 찍고, 나누고, 사랑하는 하루에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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