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볼 때 온 감각을 집중해 보기 때문에 영화는 거의 혼자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혼자 볼 때 감동이 더한 영화 중 하나가 이 영화, <베스트 오퍼>인 것 같다.
<베스트 오퍼>는 2014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이다. 이 영화 자체로는 수상 실적이 없다는 점이 이해할 수 없다. 쥬세페 페르나토레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입혔으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리.
이 영화는 그냥 '모든 것'이 아름답다. 신비한 여배우도 아름답고, 베스트 오퍼(경매사)라는 자신의 직업에 온전히 몰입해 살아가는 버질(제프리 러쉬 분)의 삶도 아름답지만, 그의 비밀의 방에 수집해 둔 수많은 여인들의 초상 명화들은 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쉬 분)은 최고가로 미술품을 낙찰시키는 세기의 경매사(베스트 오퍼)이자 예술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완벽한 감정인이다. 가치 있는 예술품만 상대해서일까. 극 중 60대 전후로 보이는 버질은 평생 현실 속에서는 어떠한 여인과도 사랑의 감정을 교류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일과 예술품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버질에게 고저택에 은둔해 살아가고 있는 묘령의 여인으로부터 부모님이 남긴 저택의 유물을 처분하려고 하니 감정을 해 달라는 의뢰가 온다. 업계에서 최고인 그가 개인적인 감정의뢰 따위는 맡지 않는다고 단칼에 거절하지만 고저택에서 걸려온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와 애절한 말투는 그를 고저택으로 끄는 힘을 발휘한다.
'광장 공포증'이란 병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살아가는 클레어(실비아 획스)의 고저택 유물을 감정하는 과정에서 버질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실제 여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버질은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난 불우한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변덕스러운 여성을 상대로 애정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시간이 공간을 가능케 한다.
는 영화 속 버질의 대사처럼, 클레어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고저택에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클레어와 함께 한 시간은 그녀에 대한 버질의 호기심을 사랑의 감정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마음은 버질이 살아온 일상을 마구 뒤흔들며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영화를 보는 것과 감상평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이 영화를 좋아해서 딱히 맘에 드는 영화가 없을 때는 전에도 두어 번 중복 감상했던 적이 있어서 자판만 앞에 두면 후루룩 써 내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왠 걸,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지만, 그때도 영화를 보면서 이건 왜 이런 거지? 했던 부분은 다시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다시 영화를 보는 수밖에.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속 대사들까지 옮겨 쓰면서 매우 꼼꼼히 영화를 보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더라는 말씀. 아무튼 명화는 몇 번을 다시 봐도 명화다. 꼼꼼히 보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영화 속 장면들과 대사들, 명화들과 아름다운 음악은 시종일관 보는 이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맨다.
기계 수리공인 로버트(짐 스터게스)가 버질이 클레어의 고저택에서 가져온 태엽 등의 철제 부속품들로 18세기 최초의 로봇으로 추정되는 '보캉송 로봇'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클레어에 대한 버질의 감정 변화를 대신해 보여주기도 하지만 삶의 아이러니를 전해 주기도 한다.
모든 위조품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는 버질의 영화 속 말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건,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잊지 말아요.
라는 클레어의 말처럼,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위조란 말이지.
라는 버질의 오랜 친구이자 경매 공모자인 빌리(도날드 서덜랜드 분)의 말처럼.
일생을 바쳐 모아 온 여인들의 초상화와 처음으로 만들어간 현실의 사랑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현직에서 퇴임한 노년의 버질은 이제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까?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정말 다 잃기만 한 것일까? 클레어의 진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화가로서의 친구, 빌리의 가치를 좀 더 알아주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