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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03. 2023

50에 시작하는 5년 주기 생애 계획이 시작되었습니다


친구들을 꼬드겼다. 5년 후에 같이 책을 자고. 친구들이 허허 웃었다. 무슨 수로 책을 내냐고. 그러니 5년 후 책을 낼 수 있을 만큼 값진 5년을 살아보자고 했다. 무엇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책이 될만한 삶을 살아보자고.


무모한 제안일 수 있었다. 이 친구들이 여고 시절 함께 문예부 활동을 했던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제안엔 별로 힘이 실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고를 졸업한 지 30년이 넘어 현재는 각자 다른 분야에서 20년 넘게 다른 일을 해온 친구들이지만 우리에겐 30여 년 전 공통분모가 있었다. 한때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을 쓴다고 어쭙잖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던 문학소녀들이었다는 것.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학교를 졸업한 이후 글쓰기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없지만 그래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의 한 구절이나 마음을 울린 시 한 편을 공유하면서도 '얘, 뭐야~?' 하는 마음의 비난을 각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한때 우리의 공통분모 덕분일 게다.


50세를 맞이한 나와 친구들에게는 무엇인가 새로운 삶의 활력이 필요해 보였다. 50이란 뭔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인 것도 같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그 정도로 늙은 나이도 아니니까.

40대에 마흔 앓이를 하며 50을 생의 전환기로 삼아 뭔가를 도모하던 나는 무엇인가를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해보는 것만으로도 시작했던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연결되기도 한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한라산에 오르자던 친구의 말 한마디에 그때를 대비하여 연습 삼아 오르기 시작한 북한산을 2년 넘게 오르고 있으며,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는 것은 아닐지라도 주 1회 취미로 시작했던 유화 그림도 이제 4점째 완성하고 1점을 작업 중이다.


일단 시작하고 멈추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결실을 맺더라고요. by 정혜영


결정적으로, 브런치에서 3년째 꾸준히 글을 써 오다 제10회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에 제출한 브런치북이 대상작 중 한 편으로 선정되어 책으로 출간되는 기적을 낳았다. 그러니 멈추지만 않는다면 뭔가로 연결된다는 것을 직접 증명한 셈이다.


생때같이 귀한 내 자식같은 책, <어린이의 문장> by 정혜영


그래서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제안할 수 있었던 것 같다. 5년 뒤에 책의 공동 저자가 되어 보자는 말에 일단 다들 웃었지만 누가 5년 후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3년 전엔 내 이름으로 낸 책이 3권이나 나오리라는  나조차도 몰랐는데.

3년만 꾸준히 했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는데 5년 후를 생각하며 뭐라도 시작한다면 못할 일이 뭐가 있나, 싶다. 우리 나이엔 일단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가장 큰 숙제고 시작했다면 성실함을 무기로 꾸준히 나아가면 된다. 젊은 시절엔 어떤 목표가 나를 끌어가는 힘이었다면 이젠 '꾸준함'이 더 큰 무기라는 걸 믿게 되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란 말은 공염불이 아니다.


5년 후 책을 낸다는 건 어쩜 핑계일지 모른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강력'내적 동기'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칠 테지만, 20년 이상 한 가지 일을 지속해 온 내 친구들은 이미 자신 안에 '그릿'(Grit, 성공과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지 또는 용기)지니고 있다. 눈에 띄게 성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들 내면에 있는 열정, 노력, 끈기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지켜온 일이라고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20년 이상 버텨내고 있는 그녀들에겐 분명 '그릿'이 존재한다. 그런 삶의 태도를 지녔음에도 아직 그렇다 할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녀들의 시간과 노동이 가족과 형제자매, 부모, 친지들, 이웃들을 돌보는데 분산되어 왔때문일 것이다. 여자들의 시간이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쓰일 때를 경험해 보지 못했으므로 우린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호기로운 내 제안에 허허 웃고 말 수도 있었지만 내 친구들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네 친구 중 한 명은 발레를 시작했다. 자동차 업체에서 일해 온 업무 특성상 자신의 여성성을 너무 오랫동안 가꾸지 못했다고 시작한 일이다. 친구가 발레를 시작한 첫날, 토 슈즈와 타이즈, 발레복을 입은 친구의 모습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50세 발레리나라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다른 한 친구는 부동산 관련 일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앞으로 지속가능한 공부를 생각하며 대학원 진학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우리 넷 중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 친구 하나가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공부와 강연만 해 온 친구로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와서 가장 건강 문제가 걱정되던 친구였다. 요즘엔 둘레길도 걷고 산에도 오른다고 한다. 우린 오랫동안 입을 모아 그 친구에게 운동을 했지만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아서 우리의 걱정을 키웠던 친구였다.


20년 이상 한 길을 걸어온 집념과 투지는 다른 한편으로 옹고집의 모습일 수도 있어서 한, 두 번의 지나가는 말로는 좀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런 친구가 나머지 세 친구들이 한결같이 '아무 운동이라도 일단 시작'하라고 입을 모으니 조금씩 몸을 움직이는 것 같아 너무나 안심이 된다. 친구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우리 세 친구들이 일제히, 엄청나게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해내기 위해 기본이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건강'이니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하지 않던가. 자존감이란 스스로 내린 결정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려는 분투의 과정을 거쳤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니 타인이 내린 결정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도록 나를 깨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던 이어령 선생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이 가진 똑같은 모양의 행복을 좇지 말고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단단히 쌓아가길 바란다.  
- <어린이의 문장>, p. 218


5년 후 우린 지난 5년을 복기하며 여전히 허허 웃고 있을까, 아님 깔깔 웃고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시작하고 꾸준히 해내는 힘의 위력은.

분명한 건, 책을 내지 않더라도 우린 분명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을 거란 점이다. 성과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우린 서로를 격려하며 5년 동안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며, 5년 후엔 또 다른 모습을 그리며 다음 5년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시작한  5년 주기 생애 계획에 신나 하며 건투를 비는 이유이다.



50에 시작하는 5년 주기 생애 계획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림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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