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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15. 2020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가 바라보는 여자의 삶이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점점 난 내 기억을 믿기가 어려워진다. 왜 스토리가 안 떠올랐나 궁금했더니 그냥 안 읽은 것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나여도 괜찮아, 하면서 다독여가야겠지.


박경리의 작품 중 <가을에 온 여인>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내 마음은 <토지>에 가 있지만 대하드라마를 섣불리 손대기는 아직 용기가 없어 박경리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나 보다. 그 소설에서도 인물의 묘사와 인물 간의 관계 설정,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생동감이 살아있어서 한 사람이 쓴 소설이라기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작품을 써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약국의 딸들>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장편 소설이라고는 하나, 어떻게 한 작품 안에서 그렇게 많은 인물 군상들을 이리 다채롭게 끌고 갈 수 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지방의 유족한 집안인 봉제 영감 집안은 선대로 약방을 운영하여 '김약국네'라고 불렸다. 집 안의 맏이인 봉제 영감이 죽은 후, 그의 아내 송 씨가 봉제 영감의 동생의 아내이자, 자살로 죽은 동서의 아들인 성수를 키우게 됨으로써 이야기가 순탄치 못하게 흘러갈 것은 예견되는 일이었다.


성수는 김약국을 이어받고 혼인도 하지만, 이미 송 씨가 간교한 사위의 꾐에 빠져 상당한 재산이 이미 그쪽으로 넘어가버린 뒤였다. 성수가 대대로 해오던 일과는 생소한 어장 사업에 손을 대면서 이미 기울기 시작한 가산은 점점 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아직은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을 시기여서일까.

성수의 큰 딸 용숙, 둘째 딸 용빈, 셋째 용란, 넷째 용옥, 다섯째 용혜까지, 딸 다섯의 삶은 하나같이 순탄치 않다.


큰 딸은 과부가 된 뒤 다른 유부남과 정을 통한 뒤로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고 믿는 존재가 되고, 대학 교육까지 받아 아들 역할을 할 만했던 영민하고 믿음직한 둘째 용빈은 약혼자에게 버림받게 된다. 셋째 용란은 빼어난 미모로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잘 살 것이라고 자부하던 한실 댁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집안 머슴과 정을 통하다 발각된 후, 파다한 소문에 밀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편중독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넷째 용옥은 인물은 별로여도 손이 야무지고 참하여 평범하게는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용란에게 마음이 있던 김약국 어장의 책임자 서기두가 마음에도 없는 그녀와의 혼인을 결심하면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용혜는 막내딸이고 어려서인지 특별한 서사를 다루지는 않지만 몰락한 집안에서 허물어져가는 혈육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게 된다.






박경리는 왜 다섯 딸들의 삶을 하나같이 비극적으로 끝나게 그려 놓았을까?

심지어는 교육을 많이 받은 둘째 딸 용빈마저 남자의 배신으로 '노처녀'로 살아가게 하다니(지금과 비교하면 이해할 수 없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라니). 몰락한 집안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빼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개인이 '여자'라면 그 몰락에 함께 빠뜨리고야 마는 설정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용빈이 아들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지 않았을까.


다섯 딸들의 어머니인 한실댁의 삶은 또 어떤가? 결혼 후 내내 냉랭한 남편의 그늘에 가려 살다가 그저 철없는 셋째 딸 용란의 잘못을 품어내고자 했던 어미의 마음이지 않았나. 그런 한실댁까지 처참한 결말을 맞게 하는 설정 역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나, 싶을 정도다.



박경리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의 삶을 비극적인 결말로 끌고 가 파국에 이르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도 드물다 싶다.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한 것으로 오인받기 싫었던 봉룡의 아내 숙정의 자살에서 기인한 듯하다. 본인의 잘못이 없는데도 남편이 의심한다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죽음을 택하고, 그의 자손들은 몰락의 길을 걷도록 하다니 박경리가 바라보는 당시 여자의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 시대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험난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선택권이라고는 없는 당시 여인들의 삶이 내내 안타깝다.


그때보다는 그나마 조금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 안도해야 하는 것인지, 남/여 구분 없이 인간의 삶을 함께 일구어나가는 동등한 사회는 아직 멀었다고 울분을 토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망설여진다.

'차별'을 떠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보듬어 함께 가는 삶을 지향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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