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여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받는 돈이 저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것 같아요.
직장에서 사람에게 스트레스 받을 일은 많이 없어서 사람을 가장 후순위에 두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하는 일에 대해 소개부탁드려요.
저는 'VFX 아티스트'라는 일을 하며 영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VFX 아티스트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촬영영상에 CG(컴퓨터 그래픽)를 얹을 때, 영상을 보다 매끄럽게 하는 작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들어 영화를 촬영하고, 그 촬영본에 공룡을 넣고 싶다고 해볼게요. 공룡 CG를 만들었겠죠? 이제 촬영한 장면에 그 공룡을 넣어야하는데, 여기서 그 공룡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위해 다듬는 작업이 필요해요. 저는 여기서 CG의 빛, 질감 등을 조정을 하는 작업을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조명과 관련된 영화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 일에 만족하시나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1) 원래 하고 싶었던 일
원래 영상을 좋아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조명도 좋아하는데, 제가 하는 일은 그것들과 모두 관련이 있어요. 또 제가 하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직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도 있습니다.
2) 자유로운 재택근무
재택근무가 자유로워요.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집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만 잘 해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3시쯤에 놀러오기로 했다"라고 하면 그때 집에 가도 되고요. 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친구가 집으로 놀러와도 상관없고요.
저는 사실 일과 휴식이 잘 분리되는 사람은 아니어서, 오피스로 나갈 때가 많아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집에서만 일하기도 해요. 그런 개인적인 루틴을 존중해주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장점입니다.
3) 인간관계 스트레스 없음
회사 내에 나쁜 마음을 먹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 잘 없는 것 같아요.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다들 집에서 게임하고, 밖에 잘 안나가고..ㅎㅎ 조곤조곤한 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볼 때는 다들 선하십니다.
회사 내에서 내향적으로 있다고 "사회생활 안하네?"라고 하는게 아니라,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해주는 것 같아요.
4) 이름을 남기는 일
최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에 참여하셨잖아요? 크레딧에 올라갔던 수많은 이름들 중 하나라니.. 물론 이름 찾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ㅎㅎ
아무래도 작업이 마무리가 되면 거기에 이름이 남으니까, 좋죠.
이 일을 오래 하신분들은 이제 별 감흥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ㅎㅎ
"처음에 느끼는 그 감정을 잘 유지하세요"라며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동료분도 있어요
캐나다의 일 문화
'캐나다 직장문화'의 좋은 점에 대해 더 말하고 싶어요.
다른 회사는 잘 모릅니다.. 저희 회사, 저희 산업은 이래요.
장점
1) 유동적인 일하는 시간
미팅만 똑바로 들어오면, 일하는 시간대에 대한 간섭이 없습니다.
이런 것도 가능해요. 자다가 일어나서 바로 미팅에 참여해도 상관 없어요. 퍼포먼스만 잘 한다면 상관없어요. 제가 9시 30분에 출근한다고 "너 왜 이 시간에 출근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여기에도 한국인 팀장님이 계시는데요,
제가 일을 다 끝내고 할일이 없어서 그냥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으니까, 팀장님이 오셔서 의아한 얼굴로 "빨리 집에가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팀장님도 빨리 집에 가시고.. 그렇다고 팀장님이 일을 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일 잘하세요. 단지 쓸데없이 사무실에 있지 않는거죠.
2) 자유로운 휴가신청
만약에 아프다고 하면, 그날 새벽에 휴가를 신청하고 출근을 안해도 됩니다. "지금 회사가 바쁜데 휴가를 쓸 때야?"라고 말하는 사람 없어요. 실제로 저희 지금 되게 바쁠 때인데, 저희 팀장님도 2주 휴가가셨어요.
그렇게 휴가를 쓰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나요?
다른 사람들의 일이 더 많아질 수도 있죠. 그런데 뭐.. 휴가도 가야죠. 모두가 그렇게 휴가를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것에 불만을 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일을 대충하는게 아니에요. 일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3) 수평적 문화
상하관계가 없이 수평적이에요.
한국이라면 윗사람이 아래사람에게 깍듯하지 않으면 "너 왜 이런식으로 행동해?"라며 행동에 대해 지적을 당할 것 같아요. 여기서도 예의란 것이 없지는 않지만, 윗사람 아래사람 할 것 없이 다 평등한 것이 느껴집니다.
단점
불완전한 고용
단점은 잘 잘라요. 제 주변에도 벌써 2명이 잘렸어요. 계약기간 끝나면서 자르기도 하지만, 그냥 일을 못하면 혹은 일이 없으면 자르기도 해요. 요즘엔 할리우드 작가들이 파업하는 바람에 일이 더 없어요. 일 없고, 사람이 필요없으면 자르죠.
일을 하던 사람한테 갑자기 회사가 "한달 뒤에 너 나가야돼"라고 통보하고 자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정도는 양반이에요. 좀 심했던 경우는 2-3일전에 말하고 자르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계속 유지하고 증명하는 것이 너무 중요해요.
이렇게 되면 일하는 시간이 자유로워도 정신 바짝차리고 일해야겠네요.
네. 그래서 제가 항상 정신차리고 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일의 강도가 그렇게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한국이 일의 강도가 더 높아요. 한국에서 일하는 정도만 하면 모두가 다 안 잘리고 회사에 있을 수 있어요 ㅎㅎ
가만히 생각해보면 "열심히, 성실히"의 의미가 다른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여기 모든 사람이 일은 다들 열심히 해요.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일단 영상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영상쪽 일을 하고, 잘 배우고, 스폐셜리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또 해외에서 배우고도 싶었고요.
주변에서 제가 해외에서 영상일을 배운다고 하니까,
"네가 해외에서 배우고 싶으면 한국에서 못배우는 것을 배우고 와라. 사실 가르치는 건 한국이 더 잘 가르친다"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는 전문기술이 무엇일까 찾아보다가,
지금 하고 있는 '비주얼 이펙트'라는 것을 찾았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니까 고민이었는데, 이건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어서 괜찮은 것 같아요.
지금은 영화일을 하지만, 원래는 뮤직비디오 일에도 관심이 있었거든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기술로 훗날 뮤직비디오와 관련된 일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를 꼭 고집한 이유가 있을까요?
어릴때부터 '지구는 넓은데 한국에서만 사는 건 아쉽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번쯤은 다른나라의 언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지금은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계속 살다보면 언어도 유창해질거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원래는 공대에 다니면서, 영상제작에 관심있던 학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영상동아리 활동을 했고, 친구들과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도 했습니다. 7-8편정도의 뮤직비디오에 참여를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때는 학생신분이기도 했고, 회사에 들어가서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서 "뮤직비디오 만드는 일을 했다"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할 수도 있겠네요.
영상을 만드는 것이 재밌었고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전공 살려서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도.. 돈 많이 벌고 좋았을 수도 있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캐나다에 유학을 왔고, 1년간 영상학교를 다녔어요. 그 학교를 졸업하고 3개월동안 구직활동을 해서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영상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뮤직비디오에 특히 관심이 있는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는 보다 자유롭지 않고, 광고는 너무 작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와 광고 딱 그 중간이 뮤직비디오인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가 좀 더 자유롭고, 예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선택조건
직무 -> 개인의 성장가능성 -> 같이 일하는 사람 -> 급여
1) 급여와 직무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중요하죠. 그런데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니 돈도 그만큼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일하기 전까지는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저는
돈이 사회적 랭킹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받는 돈이 내가 사회에서 필요한 정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내가 더 많은 돈을 받으면 사회에서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제가 한국인이어서 더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여기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인이 그런 것을 좀 더 따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2) 성장가능성
저희는 성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열심히 일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잘립니다. 이러다보니 남은 사람들이 성격좋고 일을 잘 할 수 밖에 없죠..
저도 여기서 오래오래 생존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을 막 찾아서 하고, 다른 업무까지 어떻게 하는지 배우려고 해요. 배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런 강박이 생긴 것 같아요. 아직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어요. 한 3년차쯤 되면 안정이 되려나요..? ㅎㅎ
3) 일하는 사람
제가 일하면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를 딱히 겪어보지 않아서 '일하는 사람'을 제일 마지막 순위로 둔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 일을 할 때는 어떤 한가지 목표를 향해서 모든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서는 일 10개를 3개-3개-4개로 분할해서 각자가 일하는 방식이에요. 혼자 3개의 일을 끝까지 책임을 져서 완성을 하면 되는 구조. 그래서 혼자 일해요. 저는 아직 일한지 오래되지는 않아서 종종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혼자 일하는 방식이죠.
좋아하는 일을 꼭 직업으로 삼아야 할까요?
좋아하는 일(직업)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합리적인 타협을 본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을 하고, 그 중에서 '이건 좀 해볼만한데?' 싶은 것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현실적인 하나만 선택하는 타협을 본 것이죠.
저는 영화감독도 하고 싶었고, 우주인도 하고 싶었고, 가수도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것들은 제가 처한 상황에서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흥미있게 오래 할 수도 없을 것 같았고.. 지금 하는 일은 어느정도 '내가 오래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언젠가 하다가 질릴수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넌 이거 좋아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나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 중에서 제가 선택한 것이니까요. 그 세뇌가 아직까지는 잘 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