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알면, 부정청탁금지법도 필요없다
공직생활을 하다 보면 불편하고 곤란한 일을 종종 겪게 된다. 대표적으로 악성민원 때문에 마음고생, 몸 고생을 하지만 악성민원에 버금가는 또 하나가 바로 청탁이다. 청탁과 부탁. 매 같은 말인데 ‘청탁’ 하면 뭔가 무겁고,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 소위 김영란법이라고 하는 법도 ‘부정청탁금지법’이라고 하지 ‘부정부탁금지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부정청탁! 이 부정청탁을 요령껏 지혜롭게 거절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공무원이 청탁을 받을 때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청탁을 한 사람과 그간 쌓아온 신뢰를 잃거나 관계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청탁자가 가족이나 친구, 주민은 물론이고 자신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거나 소위 유력인사라면 더욱 그렇다.
두 번째는 자신도 청탁자에게 부탁할 게 있을 텐데... 지금 이거 안 들어주면, 나중에 일이 생겼을 때 나도 부탁을 못 할 거라는 현실적 고민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종의 품앗이라고 보면 된다.
또 하나, 대부분은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마음이 여린 직원은 미안한 마음을 넘어 죄책감까지 느낄 수 있다. ‘청탁을 거절한 것이 너무 심했던 것 아닌가?’ 자신이 안 들어줘서 그 사람이 큰 곤란을 겪을까 싶은 마음. 어렵게 부탁했는데 자신이 너무 야박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거절을 못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탁이라고 모두 위법하고 부정한 것은 아니다. 청탁 중에는 적법하게 도와줄 수 있는 부탁이나 민원도 있다. 개중에는 청탁하는 사람이 법에 저촉되는 줄 모르고 하는 청탁도 있다. 반면 청탁하는 사람이 뻔히 부정 청탁인 것을 알면서 들이대는 못된 인간도 있다.
먼저 당신이 도와줄 수 있는 청탁을 받았다면, 쿨~ 하게 다 들어줘라. 재량권과 적법한 범위 내에서 도울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청탁이 들어오면 귀찮아하지 말아야 한다. 필요하면 발품도 팔고, 경험과 지혜를 짜내서 상대방의 애로를 해결해 주는 거다. 그러면 인간관계 면에서, 근무하고 있는 기관의 이미지 모두에 좋은 일이다. 공무원이 민원을 해결해 주는 것은 당연한 본분이다.
그런데 분명 부정청탁인데 이걸 부정청탁인 줄 모르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인은 위법과 적법의 개념이나 경계를 의외로 잘 모른다. 이때 무조건 청탁을 안 들어주면 무척 서운하게 생각할 수 있다. 처신을 잘해야 한다. 자칫 온정에 빠져 앞뒤 생각 안 하고 들어줬다가는... 당신은 물론이고 청탁한 사람까지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청탁받은 내용이 위법한 사안이라면, 상대방은 ‘부정청탁금지법’의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이럴 때는 상대방에게 위법 내용을 쉽게~ 잘~ 설명해 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청탁을 한 사람이 가족, 친구, 막역한 사이라면, 공무원이 곤란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속으로 좀 빈정 상했더라도 공무원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매몰차게 요구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탁하는 인간이 부정한 청탁인 것을 뻔히 알고 들이미는 경우이다. 이런 인간은 일단 경계해야 한다. 상식을 벗어난 인간이고, 문제가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정청탁인 것을 알고 접근해 오는 인간에게는 공무원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한 더 생각하고, No~라고 말해야 한다. 애매하게 말을 하면 그 인간에게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할 수 있고, 완전히 떨어져 나갈 때까지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된다. 여기까지는 너무 뻔하면서 쉽지 않은 방법이다.
조금 보태자면, 거절할 때는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짧고 구체적’으로 명분을 대서 말해야 한다. 누구라도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한 가지만 대면 된다. 너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 인간은 당신이 거절을 위해 핑계를 대는 것으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많이 하면 앞뒤가 안 맞는 실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무원도 인간이다. 아무리 부정청탁이라도 칼로 무 자르듯 처음부터 No~라고 얘기하기가 곤란할 수 있다. 이럴 때는 기본적인 성의를 보여야 한다. Yes-No-No 방법이다. 청탁을 받으면 먼저 ‘네~ 한번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는 식으로 일단 Yes 신호를 준다. 다시 하루 이틀 후에 ‘알아 봤는데... 좀 힘들겠다. 하지만 좀 더 알아 보겠다.’ 라는 No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 한 이틀 후에 ‘더 알아 봤는데... 그쪽에서 무척 곤란해 해서 힘들겠다.’는 식으로 다시 No 신호를 보내는 거다. 그러면 상대방도 당신이 애써준 게 느껴져서 감정 상하지 않고 물러설 수 있다.
그리고 면전에서든 통화상이든 거절을 할 때는 립서비스 차원에서 ‘안타깝지만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는 표정이나 어투 정도는 써도 괜찮다. 하지만 당신의 속마음까지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부정청탁은 당연히 거절해야 하고, 거절하는 당신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부정청탁을 거절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처리할 수 없는 청탁을 끌어 앉고 끙끙 매는 것은 가치없이 남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업무처리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무리한 청탁을 받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머릿속에 맴돌게 되면 당연히 당신 업무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굳이 부정청탁금지법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공무원은 일반인 보다 고도의 청렴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청탁을 거절한다고 나쁜 공무원, 불친절한 공무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안 도와주면, 그 사람이 큰일 날 것이라는 염려도 할 필요 없다. 그 인간은 당신 말고도 또다른 직원에게 똑같이 찔러볼 것이기 때문이다. 청탁을 거절했다고 자신의 인간성까지 의심할 필요도 없다. 부정청탁을 거절한 당신은... 지극히 정상이다.
부정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당신이 공직에 임용될 때 처음 마음먹었던 그것이다.
바로 처음 마음가짐이다.
이것만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면, 부정청탁, 너끈히 이겨낼 수 있다.
당신은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경수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