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잠깐 남아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편이라 이런저런 책을 보면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던 중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책 제목이 나를 이끌었다.
‘내가 하는 일 가슴 설레는 일’
이 사람은 어떤 일을 하길래 가슴이 설렌다고 하는 걸까?
표지를 보니 디즈니랜드의 야간 청소부라고 한다.
디즈니랜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도 비슷한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떠올랐다. 그때 청소부가 바닥에 분무기로 슈랙에 나오는 동키를 슥 슥 그려줬던 것이 생각난다. 물로 그린 그림이라 금방 마르고 어떻게 보면 쓸모도 없는 일일 수 있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 남는다. 실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책장을 펼쳤고 첫 페이지는 편지로 시작했다.
중고책의 묘미다.
IBK 행장님이 전달한 이 책이 은행에서 어떤 파동을 일으켰을지 궁금함에 책을 집고 읽었다.
1.
“믿음을 공유하면 못 넘을 일은 없다”
인간의 존재에서 기인하는 태생적 불안.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지만 어느 것 하나 100%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우주 속에 홀로 존재하는 것 같은 감각. 그렇게에 우리는 무언가 믿을 수 있는 것을 그렇게도 갈구하는 것 같다. 그것이 시대에 따라서 다른 것을 좇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살아간다.
상호주관적 실재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었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이지는 않는 것을 언어로 명명하고 그것이 실재한다고 믿고 살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대한민국이라는 실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무엇인지 안다, 혹은 안다고 착각한다, 혹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모두가 믿는다면 그 일은 이미 일어난 것과 다름없다.
2.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면서 카메라를 건네면 모두 두 손으로 받고 다시 두 손으로 돌려준다. 손에 도구를 들고 있을 때조차도 옆에 내려놓은 뒤 두 손으로 받는다.
“두 손으로 받으실 것까지는 없는데…”
“아, 네. 만약 떨어뜨렸을 때 기념품이라면 다시 사드릴 수 있지만, 추억을 다시 만들어드릴 순 없으니까요.”
고객 감동.
말은 쉽다. 그리고 참 안 와닿는다.
무엇이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일까?
단순히 가치를 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래의 영역이었다. 거래는 내가 주는 가치와 네가 주는 가치는 동일하다 수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더 주면 거래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거래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될 수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한다고? 와 내가 이렇게 까지 해줘야 해?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떠먹여 줘야 하는 거야?’
아이러니하게 그 정도까지 해야 고객들은 조금은 마음이 든다고, 우리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이제 합이 맞아간다고 생각하더라. 그 우연한 최초의 경험이 나에게 소중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까지 해야 한다고?’라는 내면의 소리는 줄어들고 ‘이거보다 더 친절해야 해. 어떻게 해야 상대가 더 편할 수 있을까?’라는 소리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나의 자아의 소리는 줄어드는 것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편안했다.
3.
“게스트가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소를 하면 됩니다. 청소는 더러워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 더럽힐 수 없을 정도로 깨끗이 하면 버리는 걸 주저하게 되는 법입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시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편협함을 인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불편하다, 말도 안 된다고 내면의 방어기제가 올라오는 순간을 인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서 불편한 사람이 좋다.
4.
“아이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동심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사람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자아의 형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아이 같음이 가장 자연인에 가까운 형태가 아닐까 싶다. 생존을 하기에는 불합리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오늘 하루가 끝인 것처럼 전념해서 살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아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디즈니 영화를 볼 때면 누구나 아이가 된다. 요술램프도, 마법 양탄자도 얼음궁전도 세상에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현실 도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아이일 때, 우리는 매일이 모험의 세계였다. 다만 생존에 급급해, 혹은 다른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착각에 이를 잊고 살았을 뿐이 아닐까.
짧더라도 그 한순간은 필요하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좇는 모험을 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다. 물론 모든 생활을 붕 뜬 상태로 바닥 없이 는 생존할 수 없다. 우리는 결국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가끔씩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고 경험하고 싶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잠깐 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인생이다.
One Moment 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지을 수 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