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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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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Nov 05. 2021

2021. 11. 2. 화요일

<엄마의 골목>작가의 말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돈다. 작가는 이만큼이라도 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다가도 못내 아쉽다고 했다. 나는 이마저도 할 수 없으니 슬픔을 지나 공허함의 파도가 밀려온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엄마도 약하다라는 작가의 말에 한참을 머물러 있다. 엄마도 약하다. 내 엄마도 그러했는데, 엄마 계실 적에 나는 엄마가 그렇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강인한 엄마가 싫다는 마음만 차곡차곡 책장에 책 쌓아올리듯이 쌓아올렸다. 엄마도 약하다. 내가 엄마되어보니 이제 알겠다. 강인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삶의 무게. 약한 엄마지만 때론 강인한 척, 몸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고단함 속에서도 그래도 괜찮은 척 해야 할 때가 있더라는 것을.

어제는 늦은 퇴근을 하고 돌아와 허기진 배를 달래려 추어탕에 밥 말아 먹으며 말한마디 할 기운조차 없었다. 작은 딸 보미가 학원에서 돌아와 식탁에 마주앉더니 "엄마, 피곤해? 많이 힘들어?" 묻고 다시 묻는다. 안색을 살피며 "엄마 힘들어보인다" 이제는 보미에게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있는 그대로 말해도 괜찮다. "좀 힘드네."

내일은 몇시 출근하는지를 묻더니 "그럼 점심 먹고 갈 수 있겠네. 내일은 내가 맛있는 점심 해줄게." 

보미의 말에 지친 어깨가 으쓱한다. 고맙다. 어느새 이렇게 자라 엄마 위해 음식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나는 내 엄마에게 따뜻한 밥상 한번 차려드린 적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그다지 떠오르는 풍경이 없다. 

작가는 말한다. '오래전부터 엄마에 관해 쓰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엄마의 삶이 궁금했다. 그때는 써야 할 이야기가 넘쳤으므로 엄마는 자꾸 밀렸다. 언제나 내 뒤에 서 계실 거니까. 이번이 아니라도, 곧 돌아와 쓰면 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한번 미루니 두서너 해가 휙휙 지나갔다.'

나도 그랬다. 오래전부터 엄마에 관해 쓰고싶었다.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고 조곤조곤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 대학 입학하고 4.3을 알게되고 "이제사 말햄수다" 구술기록을 보면서 엄마의 말도 들어보고 싶었다. 간간히 고향 제주에 내려갈 때마다 틈을 보고 엄마에게 다가가 한번 슬쩍 말을 건네본 적은 있지만, 작정하고 엄마와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엄마가 말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내가 귀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음도 있겠다. 이담에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하며 뒤로 미루고 또 미루기만 하다가. 엄마는 이제 없다. 들을 귀는 열렸는데, 말해줄 이는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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