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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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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Dec 12. 2021

아무것, 아무것도 아닌 것 1.

1화. 엄마, 나 내일 학교 안 가.

아무것, 아무것도 아닌 것(Something & Nothing)          

1화. 엄마, 나 내일 학교 안 가.  


미숙이 학교에서 긴급 안내 문자를 받은 것은 수요일 저녁 열한 시 삼십삼 분이었다. 보미와 거실에서 수다를 떨다가 방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 정이현의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서 두 번째 단편 ‘아무것도 아닌 것’의 첫 장을 넘기고 있을 때였다.

“엄마, 나 내일 학교 안 가. 원격수업이래.”

보미가 방문을 열고 뛰어 들어오면서 외쳤다. 미숙도 방금 문자를 읽었다. 학교에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 나와서 전교생 등교 정지하고 비대면 수업에 들어간다는 장문의 글이었다. 검사 대상자는 별도의 안내 문자를 발송하겠다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었다.

미숙이 혹시나 하는 염려로 별일 없겠지, 밀접 접촉은 아니겠지, 설마 검사 대상자는 아니겠지, 걱정하는 말을 하자 보미는 학교 안 가서 좋기만 하다며 생글생글 웃었다.

“1학년이겠지, 우리 반은 아닐 거야, 걱정 마. 내일은 늦잠 자도 되겠다. 히야, 신난다. 등교 않고 집에서 비대면 원격수업 오오오래 하면 좋겠다.”  

그래, 내일 아침 학교 안 가는 것은 좋겠다, 미숙도 따라 웃었다.


학교. 만 열여섯이 될 동안 보미에게 학교는 싫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의무와도 같은 것이다. 보미는 교육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학교를 다녔다. 대한민국 남자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듯이. 보미는 초등  때부터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숙은 문득 십 년 전 어느 날 아침 풍경을 떠올렸다.

등교 준비로 분주한데 보미는 학교 가기 싫다며 안 가겠다고 떼쓰고 고집을 부렸다. 오늘 하루만이라며 다음날에는 꼭 학교에 가겠다는 약속을 담보로 선생님께는 아프다고 말해 달라 사정했다. 어린 보미 혼자서 하루 종일 텅 빈 집에서 보내야 했다. 보미는 괜찮다고 했지만, 미숙은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아이 혼자 집에 두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인 데다 그날은 타지방으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가기로 되어 있어 돌아오는 시간도 늦을 거여서 걱정은 더했다. 아이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서 미숙은 아이 혼자 집에 두고 출근했다. 시골 전원주택에서 살던 때여서 주변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데도 없고 달리 방도가 없었다.

미숙은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 뒤 일찍 나왔다. 어떻게 엄마가 어린아이 혼자 집에 두고 올 수 있냐며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비난인지 감탄인지 당시 미숙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보미는 약속대로 학교에 갔지만, 이후에도 아이 학교 보내기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 있는 것이 숨 막히고 견딜 수가 없다고 자퇴하겠다고 했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교사를 무서워했으며, 복도를 오갈 때 인사하지 않으면 째려보는 선배들의 반응도 못 견뎌했다. 학교 분위기가 마치 감옥 같다며 아이는 울부짖었다. 학교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가르쳐주지 않고 쓸데없는 것만 배우는데 왜 꼭 학교에 가야 하는 거냐고 항변했고,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어서 자퇴할 수 없다는 언니의 말에 이 나라 교육제도는 왜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야만 하냐고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감기몸살을 핑계로 장기결석을 하다가 차라리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탈학교를 궁리하기도 하며 온갖 갈등 혼란을 겪었다. 우울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며 몸살을 앓고 나서 보미는 기숙학교로의 전학을 선택했다. 다행히도 환경의 변화가 사춘기 소녀 보미에게는 새로운 출구가 되어주었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만 마치고 나면 고등학교는 입학 포기할 거라던 보미는 대학에 대한 환상과 희망을 품었고 대학엔 가고 싶다며 일반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보미는 적당주의로 학교에 적응해가고 있다. 재미없는 수업시간은 엎드려 자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적당한 핑계로 결석, 지각, 조퇴하면서도 출석일수가 문제 되지 않을 만큼은 스스로 알아서 자기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보미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미숙은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소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아이는 지금 P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라는 문장은 예정보다 열흘 먼저 태어난 주인공 지원의 아이 출산 이야기에서 지금 만 열여섯이 된 아이에게로 시점이 변하면서 이후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엄마! 엄마!”

보미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저 소리는 나를 부르는 호명인가, 비명소리인가, 미숙은 깜짝 놀라 뛰쳐나갔다. 보미는 호랑이 만난 토끼 눈을 하고서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엄마, 어떡해? 나, 내일 검사받으래.”

검사 대상자에 보미가 포함된 것이었다. 아! 미숙은 생각했다. 어쩌지? 밀접접촉자라면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가게 되고, 혹시나 코로나에 확진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동수업 시간에 뒷자리에 앉았던 남자애가 열나고 머리 아프다고 2시간 내내 누워만 있었거든. 혹시 걔인가? 담임 카톡인데, 내일 아침 검사받고 결과 나오는 대로 카톡 보내래. 설마... 나 아니겠지?... 나 걔랑 말 한마디 안 했어. 가까이 있지도 않았고 접촉한 적 없으니까 밀접 접촉은 아닐 거야, 그치? 나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 거야.... 내일 아침 검사받으면 되지, 뭐.... 아아, 코로나 검사 아픈데.... 코로 그거 넣는 거 엄청 싫은데.... 어쩌지?... 에이, 어쩔 수 없지 뭐. 검사받아야지, 어쩌겠어. 음성일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 아무 일 없을 거야.... 근데, 나 자가 격리하면 2주간 학원도 못 가는 건가? 아 그건 안 되는데. 어떡하지?... 에이 몰라. 내일 아침이면 알게 되겠지.... 엄마 나 간다. 엄마도 얼른 자.”

엄마 옆에 앉아 조잘조잘 쉬지 않고 말하는 것은 보미가 마음이 심란하거나 불안할 때 스스로를 달래며 취하는 행동 중의 하나이다.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아이는 불안하고 무서운가 보다. 보미가 일어나 나가려다 말고 뒤돌아서며 또 물었다.

“아아 근데, 나 자가 격리 들어가게 되면 엄마는 어떡해? 엄마 내일 상담 가야 하잖아. 나 때문에 엄마 상담 못 가면 어떡해?”

보미는 엄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미숙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애써 태연한 척하느라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보미를 진정시키고 방으로 보내고 난 후, 미숙은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자가 격리, 밀접 접촉, 코로나 확진자 가족의 방역수칙 등을 꼼꼼히 읽어보며 당장 내일 아침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너무 걱정하지 말자 하면서 생각했다. ‘걱정하지 마’라는 말은 얼마나 이상한가. 걱정하지 말자 한다고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걱정하지 말자는 마음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미숙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보미가 코로나 확진이었다가, 착오가 있었다며 확진이 아니라는 연락을 받았다. 자가 격리 통지를 받았다가 금세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가,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 상담 약속 취소를 하느라 아무리 터치해도 반응하지 않는 휴대폰 화면 바라보며 안절부절 조급해하고 있다. 잠시 후 장면이 바뀌고 출근해도 괜찮다는 연락을 받고는 허둥대며 출근 준비를 하는 미숙은 유체 이탈하여 허둥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1인 2역 배우가 되어 역할 바꿈을 하며 엄마를 걱정하는 보미가 되었다가, 보미를 걱정하는 엄마가 되었다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뭐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생각하다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르면서 잠옷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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