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 아무것도 아닌 것 2.
2화. 자가격리
아무것, 아무것도 아닌 것(Something & Nothing)
2화. 자가격리
1.
아침 일찍 코로나 검사장에 도착했을 때 대기 줄은 진료소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걸, 하고 보미는 후회했다.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10시에 수업이 있다고 했는데, 자기가 늦잠을 자느라 늦었으니 괜히 나 때문에 수업을 못 가게 되면 어떡하지, 보미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초조했다. 대기줄 앞쪽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낯익은 얼굴의 남자애가 보였다. 다들 휴대폰을 코앞에 들이대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 책을 손에 들고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박성준. 맞다. 그 애다.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언제나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성실한 학생. 역시 공부 잘하는 애라 다르네, 이 상황에서도 책을 보며 서 있구나, 대단하다, 감탄하면서도 보미는 그게 부럽지는 않았다. 자신도 책에 빠져 지내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검사를 마치고 차로 돌아갔을 때 엄마는 담임과 통화했다고 했다. 검사 대상자이긴 하지만 밀접접촉자는 아니 아니니 자가 격리는 안 해도 된다고 했단다. 휴, 다행이다.
"그럼, 엄마는 출근해도 되는 거지?"
"응."
엄마는 고개를 끄떡였지만 목소리가 가볍지 않다. 걱정이 있는 듯한 표정이다. 보미는 엄마 얼굴 표정만으로도, 목소리의 음색만으로도 금세 엄마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보미가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미숙은 통화를 하고 카톡 문자를 주고받으며 마음이 분주했다. 얼마 전 아이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있어서 가족 전체가 2주간 자가 격리했었던 로사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 겪는 문제 상황에서는 경험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로사는 단순 검사 대상자인지, 밀접접촉자인지는 학교 담임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다고 했다. 정부지침으로 학부모 출근은 개인 기관별 복무 지침을 따르라고 하는데, 자가격리 대상자 가족은 활동 제약이 없지만 자신은 마음이 불편하여 2주간 가게 영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미숙은 프리랜서 치료사다. 목요일은 A 상담센터, 금요일은 C 복지관, 토요일은 B 상담센터에서 수업이 있다. 세 군데 모두 전화를 하여 상황을 알리고 기관의 복무지침을 물었다. A 상담센터에서는 밀접 접촉이 아니면 출근해도 괜찮다고 하고, 한 달에 한번 특별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C 복지관에서는 담당자가 다음 달로 연기하자는 카톡 답변이 왔다. B 상담센터에서는 본인이 알아서 대처하라며 아무런 지침도 말하지 않았다. 미숙은 알아서 하라는 말이 마치 자신에게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듯 마음이 착잡했다.
2.
보미가 자가격리 대상자 통보 문자를 받은 것은 어둑어둑해져 가는 해질 무렵이었다. 반에서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정치와 법 이동수업에 있었던 민지와 지원이와 나 셋이다.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마음은 오락가락했다. 학교에 안 가는 것은 좋은데, 2주 동안 꼼짝 않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갑갑하고 터질 듯이 조여왔다.
미숙이 보미의 자가격리 통보를 확인한 것은 저녁 9시가 넘어서였다. 상담 세션을 다 마치고 나서 문자 확인을 했을 때 학교에서는 장문의 문자 안내가 두 번이나 와 있었다. 검사를 받은 학생들은 검사 결과 상관없이 자가 격리하라고, 보건소에서 다시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며 담담 공무원이 배치되어 자세한 안내와 연락이 갈 거라는 내용의 낯선 번호로부터 문자도 있었다. 오후에 보건소에서 역학조사 다녀간 후 단순 검사 대상자에서 밀접접촉자로 결과가 바뀌었다는 담임에게서 온 문자까지 다 확인하고 나서 미숙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아침에 코로나 검사는 받았으니 내일 아침까지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보미에게서 아무 연락도 없었던 것이 불안했다. 부재중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아무것도 없다. 보미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집에 혼자서 잘 있을까?
미숙이 집에 도착했을 때 보미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방 안에서 튀어나왔다. 어두운 얼굴이었다.
“엄마, 나 자가 격리해야 한대. 어떡해? 엄마.”
“그러게. 어쩌지? 네 방에서 지내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너는 거의 방에서만 있으니까. 엄마는 엄마 방에서 지내고, 너는 네 방에서 지내고. 밖에는 못 나가니까 엄마가 심부름해줄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엄마가 사다 주면 되지.”
“나 있잖아,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먹고 싶은 게 많은 거 있지?”
“그래, 뭐가 먹고 싶은데?”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과자도 먹고 싶고, 초콜릿이랑.... 달달한 게 당기네.”
미숙은 마트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피로가 몰려왔다. 미숙에게 장보기는 번거롭고 귀찮은 가사노동 중의 하나이다. 미숙이 쇼핑을 귀찮아하는 반면, 보미는 쇼핑을 좋아한다. 주말 저녁 둘이서 함께 대형마트에 가면 보미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들을 고르고 미숙은 과일과 야채 등의 식재료만 고르면 된다. 대형마트나 최근 무인 시스템의 매장에서 제품을 선택하고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미숙은 낯설고 서툴다. 보미는 미각이 예민하고 입맛이 까다로워 먹을 것을 고르는 것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엄마에게 무언가 사다 달라하는 것이 번거롭기는 보미도 마찬가지이다. 아무거나 사다 달라 하기에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먹지 못할 테니 사와 봐야 소용없고, 엄마에게 일일이 제품 이름들을 불러주는 것도 귀찮다.
“버터 스틱이 정말로 먹고 싶은데...”
미숙은 듣도 보도 못한 과자 이름, 빠다스틱.
"그건 어디 가면 살 수 있지?"
보미는 과자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설명을 하려다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는 그만두었다. 엄마 얼굴이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보미는 늘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힘든 것이 자기 때문인 듯 마음이 쓰였다. 엄마가 돌아서 싱크대로 가는 모습을 보며 보미는 엄마가 다가와 안아주지 않고 거리두기를 하는 듯 느껴지며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 혼자 2주간 집에만 있어야 해? 그잖아도 요즈음 나 외로운데. 외로움 많이 타는데. 나 예전에는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는 게 좋고, 혼자 있어도 괜찮았는데. 요즈음은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하고 외로운 게 싫단 말이야.”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훌쩍이는 딸을 보며 미숙은 마음이 무겁다. 괜찮을 거야. 덕분에 쉬어간다고 생각하자, 2주간 학교 학원 안 가고 잠시 쉬어가는 거라고 생각하자, 등을 도닥이며 말해보지만 이 말들이 딸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미숙도 안다. 보미는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 괜히 우울하고 슬프고 암담하고 자기도 자기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잉잉거리다가 엄마에게 다가가 안기며 말했다.
“엄마가 나랑 놀아줘야 해.”
“근데 어쩌지? 엄마 내일 모래 스케줄이 꽉 차 있는데. 하필이면 지금 이렇게 바쁠 때에.”
순간 보미 얼굴이 일그러 지면서 냉랭함이 느껴졌다.
“엄마, 나 들어갈게.”
3.
보미는 방에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좋은 기분하고 좋지 않은 기분하고 감정이 서로 뒤섞여 융화가 되지 않고 각자 따로 노는 것 같았다. 혼자 울적한 기분이었다가 엄마가 와서 엄마에게 안겨 징징거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는데, 다시 기분이 급 하강하여 좋지 않다. 생각 한 조각에 기분이 좋았다가 금세 다시 안 좋아졌다가 감정이 수시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한 마음이 다른 마음과 합쳐지지 않는다. 감정이 분리되어 섞이지 않는 기분, 이 느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자가격리. 보미는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학교에 안 가도 된다, 집에만 있을 수 있다, 밖에 나가지 못한다가 아니라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로. 그런데,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된다는 금지 통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집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밤새 두 가지 생각이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시소 타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