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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Aug 30. 2021

써야만 하는 이유

- 말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

나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다. 생각이 많았고 할 말도 많았다. 고향 제주에서는 어른들에게 "요망 지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요망지다'는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에게 하는 제주 사투리다. 어려서는 혼자서 노는 조용한 아이였으나 남들 앞에서는 큰 목소리로 말을 많이 했다. 6남매의 다섯째로 눈에 띄지 않는 나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는지 모른다.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20대 청춘은 광장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시작되었다.  "철폐하라!!" "쟁취하자!!" 구호를 따라 외치고, 때론 내가 선창 하기도 했다. 밤을 새워 술 마시며 열띤 토론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하고 주장하고, 대학 동아리 연극반에서 배우를 꿈꾸던 아주 짧은 시간도 있었다. 대사 없는 배역으로 단 한 번의 연극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끝나 버렸지만, 사람들은 나의 목소리가 배우를 할만하다 했었다. 목청껏 노래 부르고, 높은 산에 올라 "야호!" 함성을 지르는 것도 좋아했다. 일을 하면서는 힘찬 목소리, 논리적인 말로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 후 30여 년째 학교 밖 교사, 프로그램 강사, 상담 심리 치료사로 목을 쓰는 노동을 하고 있다.


2년 전부터 말을 할 때면 종종 목이 마르고 내 목소리가 아닌 듯한 쉰 목소리가 있었다. 종일 상담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목이 잠기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원래대로 돌아오길래 그러려니 무심코 넘기며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에 꿈을 꾸었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듯 불편했다. 빼내어 보니 가느다란 철사였다. 목에 반창고를 붙이고 상처 치료를 하였다. 의사는 전염병에 감염되었다며 그대로 두면 큰일 날 거라고 경고했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창문 밖 여명을 바라보았다. 꿈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후두 내시경, 음성검사를 하고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다. 음성 남용으로 생긴 거란다. 약물처방과 함께 음성 관리 교육을 받았다. 헛기침, 큰 소리로 말하기, 환호성, 비명 지르기, 시끄러운 곳에서 장시간 말하는 것, 속삭이는 소리, 노래 부르기, 낮고 단조로운 음도로 말하는 것 등등의 음성 위생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권고받았다. 전체적인 목소리 사용량을 줄이고 목을 쉬도록 해야 한단다. 가장 좋은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 침묵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했다. 말을 않고 살 수 있을까. 일을 하려면 말을 해야만 하는데.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일, 나의 직업인데. 어떻게 말을 않고 지낼 수 있을까.

다행히 코로나로 인한 휴강으로 일을 쉴수 있었다. 집에서 침묵 수행하며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읽고, 쓰고, 걷고 세 가지를 주요 일과로 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감사했다. 맘껏 노래하고, 말하고, 수다를 떨며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수업을 재개하고 상담을 시작하면서 증상은 다시 나타났다. 한번 생긴 결절은 사라지지 않는단다. 수술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수술을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고 관리를 잘하는 것이 최선이란다. 다시 침묵으로 들어갔다. 일을 짧고 굵게 하다가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늘고 길게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가 우리들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듯이, 성대결절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말을 아끼고 최소한의 말, 꼭 필요한 말만을 하고자 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부모상담은 줄이고 가능한 통화 대신 카톡 문자를 주고받았다. 건강을 핑계 삼아 전화상담봉사도 그만두었다. 말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때론 답답할 때도 있지만 말보다 글이 더 편안했다. 나의 목소리가 줄어든 만큼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은 소리, 낮은 목소리도 귀 기울여 듣고자 귀를 열었다.

이제 나는 목소리 높여 외치기보다는 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앞장서서 이끄는 것보다 조용히 옆에서 조력하는 것이 편안해졌다. 내가 써야만 하는 이유. 시작은 말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말이 아닌 글이 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파도처럼 지나가버리는 생각을 붙들어 지금 이 순간을 글로 남긴다. 내가 쓴 글을 가만 바라본다. 글로 생각의 흔적을 남긴다.

<위반하는 글쓰기>에서는 '쓴 것'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생각의 흔적이라 했다. 글쓰기는 삶의 연장이며 많이 쓰기보다 많이 사랑하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말이 아닌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 생각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얼마 전, 놀이실에서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만났다. 선택적 함묵증이다. 웃고 깔깔거리고 '으으으우우' 의미 없는 음성어로 소리를 낼 뿐, 말이 없다. 고개를 끄떡이거나 가로저으며 Yes/No 의사표현은 있으나 의미 있는 언어 표현은 없다. 공을 주고받고, 다트 던지기 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자유 그림으로 좋아하는 것을 그려보도록 했더니 종이에 낙서하듯이 '엄마'라는 단어를 썼다가 화들짝 놀라며 연필을 휘갈겨 글자를 지운다. 엄마랑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부모 이혼하고,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이는 말을 잃었다. 엄마랑 같이 있고 싶지만 그 말을 못 하는 아이. 말을 안 하는 것으로 자기 안으로 철퇴해버린 아이. 무엇이 아이의 말을 앗아간 것일까. 아이가 남긴 엄마라는 한 글자에서, 말이 없는 절박한 외침을 듣는다. 나는 이 침묵의 소리를 글로 쓸 수 있을까. 아이에게 잃어버린 말을 찾아 줄 수 있을까. 아이와의 동행,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에서 나는 소망한다. 말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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