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필름 15만 장을 찍는다는 것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을 다녀오고

by 권사슴

사진을 오랜 취미로 두고 싶은 사람으로서, 많이 찍는 만큼이나 많이 읽고 보려고 하는 편이다. (잘 안 읽히긴 하지만) 사진 미학 도서도 읽어보고, 이라선 사진 책방에서 사진책을 하나 사보기도 했다. 무언가에 대한 관심사를 오래 유지하는 게 나에게는 꽤 흔치 않은 일인데, 사진은 알아갈수록, 또 예전엔 이해 못한 것들이 읽힐 수록 재미가 늘어난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사진 경험은 사진전인데, 앞에 말한 책들에선 눈을 작게 찌푸리면서 봐야 하는 것들이 사진전에 가면 큰 프린트에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요즘 사진전은 SNS의 유행 덕에 인증샷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많아서 그리 지루하지 않다. 그런 구성을 꽤나 잘 하는 곳이 그라운드시소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그라운드 시소 성수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 다녀왔다. 경매장에서 무려 15만장의 필름이 발견되면서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비비안 마이어의 세계 전반을 240장의 사진으로 풀어내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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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같이 감성적인 소제목을 붙이는 트렌드와 달리 심플하게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만 걸린 이 전시는 이 작가의 사진전 규모 중 가장 크게 열리는 것이라고 한다.



4개인가 5개 정도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를 각각 나눠서 후기를 적으려고 했으나, 내부 사진이 없으니 큰 의미가 없어 생략. 전시를 돌다보면 센스있는 사진 배치들이 눈에 띄는 구간이 있다. 실제 사람보다도 더 크게 프린팅을 하여 벽 속에 진짜 사람이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던가, 젊은 사람의 상체 사진 밑에는 노인의 다리와 지팡이가 담긴 사진을 배치하는 식. 또 오렌지 빛이 많은 컬러 사진 파트는 벽이 짙은 파란 색으로 되어있어 색이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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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비비안 마이어는 셀피로도 유명한데, 타이머를 맞추고 카메라 앞으로 가서 찍는 자화상이 아니라 거울 셀카로 본인의 모습을 담았다. 창의적인 구도로 담은 셀피 속에는 주변 풍경뿐만 아니라 늘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는 사진가까지 앞으로 데려옴으로써 자신 역시 세상의 일부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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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져있고, 신비감이 사라진 시대에 비비안 마이어의 미스테리한 존재감은 그 자체만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일반인들의 신상마저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시대인데 거의 생애가 안알려진 사람이 이토록 많은 사진을 찍은 이유를 그저 추측 밖에 할 수 없다. 그러한 추측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전시 내내 드는 생각은 '어떻게 15만장이라는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였다. 더워서, 무거워서 카메라를 안 들고 나가는 나에게 현대의 디지털카메라보다 훨씬 무거운 중형 카메라를 들고 사진 수십만장을 찍어낸 비비안 마이어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용한 중형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는 1.2kg이라고 하니, 맥북에어를 목에 걸고 다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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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사진가라는 것만 얼핏 알고 갔는데 전시 내용은 훨씬 알차서 가치가 있었다. 그에 반해 굿즈는 정말 살 게 없어서 아쉽.(굿즈 사는 재미로 전시가는 건데) 내부 촬영은 금지지만 군데군데 사진 촬영 존이 있으니 인증샷 걱정은 없다.



<비비안마이어 사진전>

그라운드 시소 성수

2022.08.04 -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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