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을 다녀오고
사진을 오랜 취미로 두고 싶은 사람으로서, 많이 찍는 만큼이나 많이 읽고 보려고 하는 편이다. (잘 안 읽히긴 하지만) 사진 미학 도서도 읽어보고, 이라선 사진 책방에서 사진책을 하나 사보기도 했다. 무언가에 대한 관심사를 오래 유지하는 게 나에게는 꽤 흔치 않은 일인데, 사진은 알아갈수록, 또 예전엔 이해 못한 것들이 읽힐 수록 재미가 늘어난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사진 경험은 사진전인데, 앞에 말한 책들에선 눈을 작게 찌푸리면서 봐야 하는 것들이 사진전에 가면 큰 프린트에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요즘 사진전은 SNS의 유행 덕에 인증샷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많아서 그리 지루하지 않다. 그런 구성을 꽤나 잘 하는 곳이 그라운드시소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그라운드 시소 성수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 다녀왔다. 경매장에서 무려 15만장의 필름이 발견되면서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비비안 마이어의 세계 전반을 240장의 사진으로 풀어내는 전시였다.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같이 감성적인 소제목을 붙이는 트렌드와 달리 심플하게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만 걸린 이 전시는 이 작가의 사진전 규모 중 가장 크게 열리는 것이라고 한다.
4개인가 5개 정도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를 각각 나눠서 후기를 적으려고 했으나, 내부 사진이 없으니 큰 의미가 없어 생략. 전시를 돌다보면 센스있는 사진 배치들이 눈에 띄는 구간이 있다. 실제 사람보다도 더 크게 프린팅을 하여 벽 속에 진짜 사람이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던가, 젊은 사람의 상체 사진 밑에는 노인의 다리와 지팡이가 담긴 사진을 배치하는 식. 또 오렌지 빛이 많은 컬러 사진 파트는 벽이 짙은 파란 색으로 되어있어 색이 더욱 돋보인다.
또 하나 비비안 마이어는 셀피로도 유명한데, 타이머를 맞추고 카메라 앞으로 가서 찍는 자화상이 아니라 거울 셀카로 본인의 모습을 담았다. 창의적인 구도로 담은 셀피 속에는 주변 풍경뿐만 아니라 늘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는 사진가까지 앞으로 데려옴으로써 자신 역시 세상의 일부임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밝혀져있고, 신비감이 사라진 시대에 비비안 마이어의 미스테리한 존재감은 그 자체만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일반인들의 신상마저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시대인데 거의 생애가 안알려진 사람이 이토록 많은 사진을 찍은 이유를 그저 추측 밖에 할 수 없다. 그러한 추측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전시 내내 드는 생각은 '어떻게 15만장이라는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였다. 더워서, 무거워서 카메라를 안 들고 나가는 나에게 현대의 디지털카메라보다 훨씬 무거운 중형 카메라를 들고 사진 수십만장을 찍어낸 비비안 마이어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용한 중형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는 1.2kg이라고 하니, 맥북에어를 목에 걸고 다닌 셈이다.
신비로운 사진가라는 것만 얼핏 알고 갔는데 전시 내용은 훨씬 알차서 가치가 있었다. 그에 반해 굿즈는 정말 살 게 없어서 아쉽.(굿즈 사는 재미로 전시가는 건데) 내부 촬영은 금지지만 군데군데 사진 촬영 존이 있으니 인증샷 걱정은 없다.
<비비안마이어 사진전>
그라운드 시소 성수
2022.08.04 - 202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