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기억
탁월한 애정과 열정
레이 킨셀라(Ray Kinsella)가 만든 야구장에 나타난 조 잭슨(Joe Jackson)은, 너무나 오랜만에—야구계에서 추방된 후로 약 70년, 사망한 후로는 약 40년 만에—다시 찾은, 야구장이 꽤나 낯선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야구장을 주의 깊게 살피고, 감회에 깊이 젖은 듯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잔디를 매만진다.
레이가 조명을 켜고, 야구장으로 들어가 그를 만난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하며 인사를 교환한 뒤, 조 잭슨은 천천히 뒷걸음치며 좌익수 위치로 이동한다. 의도를 눈치챈 레이가 배트를 들고 외야로 공을 날려주자, 진지하게 수비에 임한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다시 야구를 만난 그가 얼마나 환희에 가득 차 있는지, 그가 얼마나 감격에 벅차 있는지를 레이는 느낄 수 있다. 말로만 들었던, 전설의 조 잭슨(Joe Jackson)을 만난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그와 함께 야구를 하고 있다니, 레이 또한 가슴이 벅차다.
마침내 레이(Ray)와 조(Joe)는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조 잭슨은 야구장 한쪽, 레이의 야구장비 더미에서 배트 하나를 들고 또 감회에 젖는다.
레이가 묻는다.
"다시 하니 기분이 괜찮죠?"
조 잭슨은 답한다
"야구에서 추방당한 것은, 신체를 절단당한 것 같았죠. 밤에 50년 된 다리를 긁는 노인 얘기는 바로 나였어요. 한밤중에 일어나면 코에선 야구장 냄새를, 발 밑에서는 잔디의 스릴을 느꼈죠."
레이가 던져주는 공을 몇 개—그중에는 홈런도—를 치고는 다시 말한다.
"나는 야구를 사랑해!
생활비를 벌려는 게 아녜요.
경기, 소리, 냄새들 때문이죠.
공이나 글러브를 얼굴에 대본적 있어요?
난 도시 간의 기차여행—경기를 위해 이동하는—을 좋아했었죠.
호텔들, 로비의 악단들, 푹신한 침대들. 큰 것 한방 때릴 때마다 일어서는 관중들...
제기랄! 돈을 안 줘도 했을 겁니다."
조 잭슨의 말과 행동을 통해, 야구선수로서 그가 야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가진 조 잭슨의 열정이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진심인지를 레이는 알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영화상에서 누군가의 직접적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저 장면에서 조 잭슨이 야구에 대해 보인 열정은, 결국 레이 자신이 기억하는 (그처럼 되기 싫다고 했던) 아버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레이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확하게 본질에 다가가려면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한다.
“레이(Ray)가 본, 아버지 존 킨셀라(John Kinsella)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존(John)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온다고 했던, 대략 2분 정도의 내레이션에 있다. 내레이션은 중간중간에 야구 이야기가 곁들여진, 아버지(존 킨셀라)의 생애, 그리고 자신(레이 킨셀라)의 출생과 현재에 이르는 과정의 약력이다. 14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은 온전히 레이의 기억에 의존한다.
아버지(존 킨셀라)는 1896년 (아주 시골인) 북 다코타(North Dakota) 출생이다.
태어난 후 한 번도 대도시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1차 대전 참전 후 1918년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 시카고에 정착해서,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 팬이 되었다.
1919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화이트삭스가 고의로 패배했다는 스캔들이 발생하면서,
조 잭슨을 포함한 연루자 8명의 선수자격이 박탈된다. 화이트삭스 팬이었던 아버지(존 킨셀라)는 크게 실망한다.
(아버지는) 마이너리그에서 선수로 몇 년을 뛰셨는데, 별 성과는 없었다.
1935년에 브루클린(뉴욕의 5개 자치구 중 하나)으로 이주했고, 1938년에 결혼했다.
1952년에는 이미 노인이었고, 해군 야적장에서 일했는데, 그해에 내(레이 킨셀라)가 태어났다.
3년 후인 1955년에, 존의 아내(레이의 어머니)가 사망한다.
(어머니 사망 후) 아버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잠자리에 들 때, 아버지는 Mother Goose(엄마 거위) 같은 이야기 대신, 베이브 루스(Babe Ruth), 루 게릭(Lou Gehrig), 위대한 슈레스 조 잭슨(Shoeless Joe Jackson)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버지는 뉴욕 양키스 팬이었고, 나는 당연히 다저스(Dodgers)—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로 옮기기 전에는 뉴욕의 5개 차치구 중 하나인 브루클린(Brooklyn)이 다저스의 연고지였다—팬이었다.
1958년 다저스가 연고지를 옮긴 후에, 아버지와 다툴 거리가 없어져, 새로운 다툴 거리를 찾게 되었는데, 마침내 찾았다. 나는 대학—영화에서 자료화면으로 버클리(Berkeley)가 나오는데,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는 캘리포니아에 있다. 동부에 있는 뉴욕과는 반대편 끝이다—을 집에서 먼 곳으로 간다. 아버지는 화를 내셨지만, 그건 내가 노렸던 일이다
그곳에서 애니(아내)를 만났고, 졸업 후 1974년 나는 결혼을 한다, 같은 해 가을 존 킨셀라(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2년 후 캐린(딸)이 태어났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이 내레이션은 빠르게 건조하게 스치듯 지나간다. 고작 2분 정도의 내레이션에,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레이(Ray)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아주 많은 것을, 애써 짧게 줄인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저 정도가 레이가 자신의 아버지 존(John)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전부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도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아버지에 대해 글을 적어본다면, 과연 몇 줄이나 적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빛을 처음 본 후로, 오랫동안 한집에서 같이 살았고, 줄곧 지켜보았던 그를, 자식들은 제법 잘 안다고 막연히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서, 잘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관념이란, 대체로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빈약하고도 나약한 오래된 기억에 의존할 뿐이다. 그래서 글로 적어내 보려 애를 써 봐도, 저 정도의 분량을 채워내기도 쉽지 않다.
아버지의 다른 일생
레이가 아버지 존(John)을, 아버지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존의 삶은, 아들에게서,
앞편 글 ['아버지와 아들 (상)']에 나왔던 것처럼,
“그도 꿈이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안 했어”라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본 적이 없었다”라는 말을 들을 만 한가?
내레이션은 꽤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또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스무 살 무렵의 존(John)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이유나 계기—경제적인 이유, 정치적 신념 또는 정의감일 수도 있는—또는 그 무엇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험했을,
전우들의 죽음과 자신의 삶,
참호전의 비효율, 지루함, 비위생,
전차와 박격포탄의 공포,
유럽의 혹한기, 참호 속 살을 에는 강추위,
대서양에서 U보트를 상대했던 급박한 해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22살로 귀국한 후, 정착한 시카고에서, 얼마만큼이나 간절하게 야구선수가 되길 원했었는지, 그 도전과 좌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39살의 나이엔 어떤 이유로 뉴욕으로 이주했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아주 늦은 나이였던 42세의 결혼에 앞서, 어떻게 어머니를 만났고,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자식이 없었던 이유와 근심을 말하지 않는다.
결혼 후 14년이 지난, 56세에 처음으로 너무나 귀한 자신의 2세가 태어났을 때의, 그 기쁨과 환희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들이 고작 세 살일 때,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그때 아내를 잃은 슬픔과 고통의 크기를 말하지 않는다.
또 그때 존이 가졌을 절망과 두려움을 말하지 않는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환갑의 나이에, 아내를 잃고 혼자 3살의 어린 아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73세에 17살 아들이 자신을 떠나버린데 대한 슬픔과 분노와 상실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다시 보지 못한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78세에 혼자서 눈감을 때의 쓸쓸함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버지를 모른다.
레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잘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를 잘 모른다.
아버지가 되기 전에는, 그도 그저 꿈 많은 젊은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른다.
어렸던 그는 무엇이 되고 싶었고, 젊었던 그는 무엇을 하고 싶었고, 무엇에 좌절했었고, 무엇에 눈물 흘렸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그가 가졌던 기쁨과 환희의 크기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다지 신뢰하기 어렵고, 잔량이 크지도 않은, 오랜 내 기억 속의 과거, 그 안 어느 한쪽 깊은 곳에 있는 아버지는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모습이며, 그에게 나보다 젊은 때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잘 실감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들이 많지만, 대체로 그들에게 아버지란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으로서 보다는,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고, 우리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언제나 한결같이 충실해야만 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들 뿐이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이들이 가진 이유들은 대체로 그런 것들에 기인한다.
한 (남자) 사람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아버지를 판단한다.
천국에 소문난 '꿈의 구장'
조 잭슨(Joe Jackson)이 제일 먼저 레이의 야구장을 다녀간 후로, 다른 많은 선수들이 야구장을 찾아온다. 우선 조 잭슨과 함께 야구계에서 추방되었던 화이트 삭스(White Sox)의 나머지 7명부터 찾아온다.
어느 날부터는, 몇 명이 와서 연습을 하는 수준이을 벗어나, 두 팀으로 나눠 경기를 하고 있다.
조 잭슨이 레이에게 하는 말이다.
"연습만 하는데 질려서 또 한 팀을 데리고 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려고 해. 막대기로 쫓을 정도요."
전설의 '타이 콥(Ty Cobb)'도 오고 싶어 했다고도 말한다.
그렇게 레이가 만든 야구장은, 천국의 그들 모두에게,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이 된다.
* 아버지와 아들(하)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