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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Aug 31. 2021

Nevermind - Nirvana(니르바나) (상)

새로운 장르의 탄생

코베인(Cobain)과의 조우

그 시절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아메리칸 탑 40’—요즘엔 '아메리칸 탑 20'으로 방송하지만, 옛날엔 '탑 40'였다—를 방송하는 토요일에는 라디오에 붙어 앉아 새로운 음악들을 녹음했다. 때 지난 학습지 학습용 테이프에 'Billboard Top 40'라는 태그를 만들어 딱풀로 붙이고, 나만의 테이프들(I, II, III, IV...)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던 중에 만난 노래였다. 니르바나(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첫인상이 강렬했다. 곡명이 주는 느낌도 매우 그랬다.

음악 자체가 주는 느낌도—정말로 반항하는 10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듯한—곡명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거기다 밴드명이 니르바나(열반)인데, 앨범명은 또 [Nevermind(신경 쓰지 마)]라니, 절묘했다. 그 후로는 팝음악을 틀어주는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이 노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가 있었고, 각자의 형용사로 이 노래를 정의하는 DJ들의 언급이 잦아졌다. 이 음악을 표현하는 여러 수식어들이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대략 ‘새롭다’, ‘진보적이다'였다. 참으로 세련되고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외모에도,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에도, 우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몽환적이고, 반항적인 느낌도 있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방탕함도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던—고도의 기술로 완벽한 연주가 뒷받침된—금속성 강한 헤비메탈 음악과는 확실히 결이 조금 달랐다. 그런데 그것이 그 나름대로 좋았다. 내가 곧바로 [Nevermind] 앨범을 구매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앨범 재킷과 뮤직비디오에서 본 그들은 기존 록밴드처럼 가죽재킷, 가죽바지, 가죽부츠, 치렁치렁한 금속 장신구, 긴 머리의 헤드뱅잉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신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여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옷차림이었다. 그렇게 모든 면에서 당시 록음악의 주류와는 스타일이 조금 달라서, 그래서 찾은 이름이 바로 ‘얼터너티브(Alternative)’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규정되어 가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지켜보게 된다.


코베인(Cobain)의 당시 위상

 당시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위상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영화 장면이 있다.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 주연의 2008년작 ‘Definitely, Maybe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이다. 30대 초반의 풋풋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영화도 꽤 재미있다.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윌 헤이즈(라이언 레이놀즈)’는 현재 이혼남이고, 딸(마야)이 있다. 아빠와 딸의 대화에서, 마야는 아빠가 어떻게 엄마를 만났었는지 묻고, 아빠(헤이즈)는 딸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는데, 그 속에 등장하는 (가명을 사용한) 여러 여인 중에서, 자신의 엄마가 누구인지를 딸(마야)이 추측하는 것이 영화의 큰 줄거리이다. 우리나라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대략 유사하다.

영화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의 헤이즈(좌)와 에이프릴(우)

그 이야기 속의 한 부분이다.

시골(위스콘신) 출신 윌 헤이즈(라이언 레이놀즈)는, 대선 후보 빌 클린턴의 선거 캠프에서 일하기 위해 뉴욕으로 왔고, 선거 캠프 사무소에서 복사일을 하고 있는 ‘에이프릴(아일라 피셔)’을 만난다. 그러면 시대적 배경은 1992년이 된다. 당시 클린턴 선거캠프에서 채택한 유명한 캠페인송 Fleetwood Mac ‘Don’t Stop’도 영화 속에서 간간이 들을 수 있다.


비 오는 어느 날, 선거 캠프 사무소 근처, 담배가게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상대가 구입하는 담배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를 하던 중, 헤이즈의 저렴한 담배와 에이프릴의 (유해화학물질이 적어서) 비싼 담배 중에, 누구의 것이 더 오래 타는지, 내기를 하게 된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한 부분이다.

에이프릴 : 오늘 내 생일이에요.

헤이즈 : 축하해요. (담배 한 모금하고) 왜 파티 안 해요?

에이프릴 : 남자 친구가 파티를 해주기로 해놓고, 공연 때문에 필라델피아로 갔어요. (담배 한 모금하고) 걘 나보다 커트 코베인을 좋아해요

헤이즈 : 커트 코베인이 누군데요?

에이프릴 :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농담해요?


당시 미국에선 커트 코베인을 모르면 이런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커트 코베인 (또는 니르바나)의 이런 인기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은 한 곡의 노래

빌보드 Hot 100에 진입한 니르바나(Nirvana)의 노래들이다. (    ) 안은 연도와 순위

 * Smells Like Teen Spirit ('91, 6위)

 * Come as You Are ('92, 32위)

 * Lithium ('92, 64위)

 * You Know You're Right ('02, 45위)—커트 코베인 사후 발매


싱글로 발매된 곡들은 몇 곡 더 있지만, Hot 100에 진입한 것은 4곡이 전부다. 이 중에 Top 10까지 오른 곡은 'Smells Like Teen Spirit'이 유일하다. ‘You Know You’re Right’은 밴드가 해체되고도, 8년 뒤인 2002년에 발매된, 밴드명과 같은 제목의, 베스트 앨범 [Nirvana]에 수록된 곡이니, 밴드가 활동했던 기간으로만 한정하면 오직 [Nevermind] 앨범에서만 단 3곡이 전부다.


물론 록음악은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성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에, 앨범 차트가 아닌 싱글차트에서는 원래 약하긴 하다. 또 차트 성적이 전부도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팝음악계에서 니르바나(Nirvana)가 가진 이름값에 비하면 'Smells Like Teen Spirit'외엔 대중적으로 큰 히트곡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앨범 [Nevermind]에는 히든트랙 'Endless, Nameless'을 포함하면 총 13곡이 수록되어 있다.

‘Smells Like Teen Spirit’[Nevermind]의 첫 번째 싱글곡이었는데, 앨범의 후속 싱글들은, ‘Smells Like Teen Spirit’과 지속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Come As You Are’는 나름 히트를 했고, ‘In Bloom’, Lithium’, ‘Polly’, ‘Breed’ 같은 곡들도 좋고, 다음 앨범 [In Utero]의 수록곡 ‘Heart-Shaped Box’, ‘All Apologies’ 등도 좋긴 하지만, ‘Smells Like Teen Spirit’과 같은 강렬함이 없었고, 대중의 지지도 없었다. 모두 다 비교열위에 위치했다. 


모든 것이 단 한곡의 노래 ‘Smells Like Teen Spirit’ 때문이다.

 니르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 싱글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 Wikipedia)


 시대정신이라 추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과대평가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런 논쟁 자체도 결국 단 하나의 앨범, 그 안에서도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곡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정말 그토록 대단한 곡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음악은 너무나 좋다. 그때도 좋았고, 가끔씩 듣지만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세련되고 좋다.

“그래서 이 노래가 동시대 최고냐?”,

“90년대 최고냐?”

이런 질문엔 답하기 어렵다.

가사가 시적인가? 그건 아니다. 너무나 심하게 은유적이라 내가 이해를 잘못한 것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메시지가 훌륭한가? 그렇지가 않다. 심오한 철학, 위대한 사랑, 사회를 향한 또는 약자나 소수를 위한 메시지? 전혀 없다. 가사를 뜯어봐도, 메시지보다는 운율에 더 치중하여, 그다지 큰 맥락 없는 단어와 문장을 나열한 것에 불과한 듯하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Smells Like Teen Spirit' 뮤직비디오의 끝부분에는 연주하던 기타를 부수는 장면이 나오고, 실제 공연에서도 이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당시에 꽤나 알려졌었는데, 이 또한 코베인이 처음은 아니다. 훨씬 오래전 더 후(The Who)의 피트 타운젠드(Pete Townshend)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를 포함한 다수의 다른 기타리스트들로 인해 이미 많이 알려져 있던 무대 퍼포먼스다.

록밴드 니르바나(Nirvana)의 앨범 [Nevermind] 앨범 커버
※ 앨범 재킷은 제법 인상적이었다. 물속에서 낚싯바늘에 걸려있는 지폐를 보며 갓난아기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물질주의를 풍자한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여담이지만, 앨범을 구매했던 당시에 재킷 사진을 보면서 했던 또 하나의 생각은 '서양에서는 태어나자마자 포경수술을 한다더니... 사실이구나'였다.


코베인을 가둔 노래

앞서 말한 대로, 사실 '코베인 현상'은 한곡의 노래로 집약된다.
‘Smells Like Teen Spirit’으로 너무나도 큰 유명세를 타버린 것이다. 이전과는 조금 다르면서 창의적이고, 반항적이고,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데—음악산업 종사자들과 평론가들은 이런 것을 매우 좋아한다—여기서 포장이 시작되고, 장르가 탄생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모든 불행 또한 거기서 시작된 것이다. 커트 코베인이 의도한 것일 수 없고, 그는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했을 뿐인데, 그런 그를 세대의 대변자라 했고, 그의 음악을 그런지(Grunge)라 했고, 시애틀(Seattle) 사운드, 얼터너티브(Alternative)라고 했다—실제로 커트 코베인은 "나는 그런지나 얼터너티브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펑크 음악을 했다."라고 했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 일러스트 - 이미지 출처 : Pixabay

빌보드 1위 곡도 아니었고, 매주 쏟아지는 수많은 히트곡 중의 하나였을 뿐인데, 과도한 해석, 의미부여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해석과 의미부여는 그의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말, 그의 행동에도 따라붙었다. 그것들은 감당하기 힘든 틀이 되고, 족쇄가 되고, 안타깝게도 커트 코베인은 그 안에 완전히 갇혀버렸던 것 같다.


※ Nirvana의 독음이 '니르바나'인가, '너바나'인가에 대한 논란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여기서는 '니르바나'로 하였다. DJ 배철수 님도 항상 '니르바나'로 하신다.^^


* Nevermind - Nirvana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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