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만년필 Sep 07. 2021

Nevermind - Nirvana(니르바나) (하)

코베인과 서태지

니르바나(Nirvana)의 앨범

니르바나(Nirvana)의 스튜디오(정규) 앨범 목록이다.

(      ) 안은 빌보드 앨범 차트(Billboard 200) 순위

* Bleach [1989] (89위)

* Nevermind [1991] (1위)

* In Utero [1993] (1위)


그리고, MTV Unplugged in New York [1994] (1위)


니르바나의 스튜디오 앨범 3장, [Bleach]('89), [Nevermind]('91), [In Utero]('93) (*왼쪽부터 발매순서에 의함)


니르바나(Nirvana)의 스튜디오(정규) 앨범은 총 3장이다.

첫 번째 앨범 [Bleach]—당초엔 주목받지 못했고, 89위도 [Nevermind] 덕분이다—를 제외한, 스튜디오(정규) 앨범 2장은 모두,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 수록된 [Nevermind]는 당연히 1위에 올랐다. 그다음 앨범 [In Utero]—물론 훌륭한 앨범이지만, [Nevermind] 정도의 후광이면, 어떤 앨범을 냈더라도 1위를 했을 것이다—도 1위에 올랐다.


1994년 11월 발매, 니르바나(Nirvana)의 [MTV Unplugged in New York] 앨범 커버


94년 11월 1일에 발매된 공연 실황 앨범 [MTV Unplugged in New York]도—당시 유행하던 언플러그드 공연 실황을 담은, 이 앨범은 코베인이 사망한 후에 발매되었다. 실제 공연은 앨범 발매 1년 전인 1993년 11월 18일에 뉴욕 소재 '소니 뮤직 스튜디오'에서 열렸다—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때는 갑자기 떠나버린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을 모두가 애도하고, 애타게 그리워할 때였다.


※ 이 앨범에서 단 한곡, 'About a Girl'—원곡은 첫 앨범 [Bleach] 수록—이 싱글로 발매되었으나, 빌보드 핫 100에 오르지는 못했다.


코베인과 서태지

니르바나(Nirvana)가 ‘Smells Like Teen Spirit’과 함께 대중 앞에 등장했던 바로 이듬해 한국에서도, 꼭 미국의 니르바나(Nirvana)처럼,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타난 3인조 밴드가 있었다.


한국어로는 랩(Rap)이 어렵다는 당시의 통념—여러 해 전부터 미국에서는 랩(Rap)이 인기를 얻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을 깨고, 랩을 들고 온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니르바나(Nirvana)는 연주와 노래를 하는 록밴드이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춤과 노래를 하는 보이밴드(넓게는 서태지의 음악도 록이다.)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미국에서의 커트 코베인과 우리나라에서의 서태지는 여러 면에서 매우 유사한 위치에 있었지 않았나 싶다.


서태지도 대단했다.

코베인이 그랬듯 서태지도 'X세대의 대변자'라고 칭해졌다. 언제나 팬들과 언론의 과도한 관심의 대상이었고, 당시의 신세대들에 대한 영향력도 엄청났다.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은, 그전에도 이후로도, 다른 이에게는 허락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의 머리속에서는 이 두 사람의 행보가 자꾸만 비교가 되었다. 아무래도 커트 코베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난 알아요’가 수록된 서태지와 아이들 1집(1992년) 앨범 커버

니르바나(Nirvana)의 팬들이 오직 코베인 만을 주목했듯, '서태지와 아이들'도 사실상 서태지의 원맨 밴드였다. 모든 노래를 서태지가 만들었고, 아이들(양현석 & 이주노)에게는 쉬운 몇 소절만 주어졌고, 노래보다는 오직 화려한 안무로 서태지를 보좌하는 것이, 그들에게 부여된 역할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 코베인에게 주었던 명과 암을, '난 알아요'가 서태지에게 주었다.

그 이후 3장의 앨범을 더 내는 동안, 매년 반복됐던 살인적인 일정과 (엄청난 기대 속의) 새 앨범 작업도 서태지를 옥죄었다.

그의 고통이 엿보이는 은퇴 기자회견의 한 대목이다.

"새로움에 대한 부담과 이에 따라 창작의 고통이 컸으며……."

어쩌면 은퇴 결정과 휴식이 서태지를 지켜준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된다.


코베인에게도 서태지가 가졌던 비슷한 정도의 고민과 무게가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태지는 ‘난 알아요’를 뛰어넘는 ‘하여가(何如歌)’를 만들어냈지만, 니르바나(Nirvana)의 [In Utro]에서는 코베인(Cobain)이 짊어졌던 무게를 지탱해 줄 만한 곡이 나오지 못했다.

1993년 9월 발매, [In Utero]에서 3곡의 싱글을 발매했지만, 어떤 곡도 빌보드 핫100을 밟지 못했다.

 * Heart-Shaped Box (—)

 * All Apologies / Rape Me (—)

 * Pennyroyal Tea (—)


고통의 무게

우리는 코베인과 그의 음악에 열광했지만, 1991년 9월에 발매한 앨범 [Nevermind]의 대성공 이후, 그날(1994년 4월 5일)까지의 기간 동안 코베인이 무엇을 경험했고, 무슨 생각을 했고, 너무나 큰 팬들의 기대 앞에서 그가 느꼈던 부담은 어떠했고, 그가 가졌던 우울함과 두려움의 크기가 얼마만큼이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것들이 주는 고통이 어떠하였길래, 아내와 두 살배기 어린 딸을 두고, 홀연히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가 남겼다는 유서의 일부인 이 말은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다. 그가 가졌던 부담이 아주아주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다.


"It i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사그라지는 것보다는 타서 없어지는 것이 낫다)

 

자신이 만든 ‘Smells Like Teen Spirit’을 다시 넘어설 수 없다는 강박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 길을 찾지 못했고, 서서히 잊히기보다는 산화되기를 선택한 커트 코베인(Kurt Cobain).


결론적으로, 서태지는 어떻게든 극복해 낸 그것을, 안타깝게도 코베인은 넘어서지 못한 것만 같다.

우리는 좋은 노래와 새로운 장르를 선물 받았지만, 커트 코베인을 잃고 말았다. 코베인은 자신이 짊어졌던 모든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똘똘 뭉쳐 하나의 총알에 담았고, 1994년 4월 5일 스스로에게 그것을 쏘고 말았다. 그는 우리와 함께하던 여정을 그렇게 끝내고 만다.


같은 정도의 외부 충격에도 각자가 받는 내상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중압감을 마주하는 자세, 그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대하는 방법도 각자 다를 것이다. 사람들마다 견딜 수 있는 무게가 각자 다르다. 각자가 들 수 있는 무게가 다르듯 말이다.


‘그래도 살았어야지...’를 습관적으로 되뇌며, 살아있는 우리는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그간 우리는 운 좋게도 그나마 견딜 수 있는 만큼의 무게만을 짊어졌던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커트 코베인은 무대에서 포효하며 보여주던 카리스마와는 달리, 대단히 여리고 깨지기 쉬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MTV Unplugged in New York 공연 중 커트 코베인 (이미지 출처 : Rolling Stone)


유난히 등장하는 총

니르바나(Nirvana)의 모든 노래를 인기순, 인지도 또는 다른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더라도,

무조건 No.1은 'Smells Like Teen Spirit',  

No.2는 'Come as You Are'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니르바나(Nirvana)의 대표곡 ‘Smells Like Teen Sprit’(좌), ’Come As You Are’(우) 상글 앨범 커버(*이미지 출처 : Wikipedia)


그런데, 'Smells Like Teen Spirit'

Load up on guns, Bring your friends

총들을 장전해, 친구들을 데려와

이렇게 시작하고,


'Come as You are'

and I swear that I don't have a gun,

No I don't have a gun (x repeat)

나는 내가 이 없다. 맹세한다.

아니, 나는 이 없다 (x 반복)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의 가사에는 왜 이렇게 총이 등장했던 것인가?’, ‘이런 것은 그저 우연일까?’

억지스럽다고만 치부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우연이다.


총이라는 무서운 물건을 너무 쉽게 손 닿는 곳에 두는 미국이라서,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아무래도 코베인이 총을 가까이했던 사람이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총이 없었다면 또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지는 또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코베인이 남긴 유산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1991년 9월에 발매했던 [Nevermind]는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비로소 니르바나(Nirvana)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니르바나를 알게 된 팬들이 전작 앨범[Bleach]를 찾았다. [Nevermind] 발매 2년 후인, 1993년 9월에 [In Utero]가 나왔다. 그리고는 이듬해 4월에 코베인은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이렇게 정리되는 니르바나(커트 코베인)의 활동기간은 고작 2년 반에 불과했다.


※ 니르바나(Nirvana)는, 유명세를 탄 이후로는, 오직 한 장의 앨범(In Utero)만을 발표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시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로드 스튜어트, 에릭 클랩튼 등)이 앞다퉈 참여하던 MTV Unplugged 공연을 93년 11월 뉴욕에서 한다


코베인(Cobain)이 떠나버린 당시에는, 음악계의 커다란 별이 갑자기 사라진 듯했고, 갑작스레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 듯,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지만, 한참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보니, 그가 활동했던 기간이 너무나 짧았음이 새삼스럽다.


우선 니르바나의 유명세가 엄청나고, 코베인이란 인물이 음악계에 또 문화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탓에, 막연히 제법 오랜 기간 많은 업적을 남겼을 것 같은데... 그 업적이란 것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은 아닌지 갑작스러운 의구심도 인다.

Nirvana의 앨범 ‘Nevermind’의 뒷면, 사진 속 아래쪽 거의 드러누워 있는 사람이 '데이브 그롤'이다.

 

그러니 커트 코베인은 우리가 사랑하는 여러 음악을 남겼고, 그런지(Grunge), 얼터너티브(Alternative)를 남겼지만,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푸 파이터스(Foo Fighters)가 아닐까 싶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어쩌면 역사는 이미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니르바나 멤버일 때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은, 코베인에 가려져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지만, 니르바나의 드러머였다. 코베인 사망, 정확히 1년 3개월 후인 1995년 7월, 그는 밴드명과 같은 데뷔 앨범 [Foo Fighters]를 발표하며, 새로운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탄생을 알렸다. 2021년 2월에 발매한 [Medicine at Midnight]까지 10장의 스튜디오(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26년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니르바나에서 보이지않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에서는 프론트 맨(Front Man)이 되었다.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왼쪽에서 세번째가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다 (*이미지 출처 : Brit Awards 2023)

물론 데이브 그롤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연예계에서의 성공이 꼭 실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니르바나의 멤버였다는 사실이 푸 파이터스(Foo Fihter) 인지도에 분명히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하였고, 어쩌면 성공의 발판이었음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아무튼 프로의 최고 덕목은 꾸준함이 아니던가. 니르바나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데이브 그롤이지만, 훨씬 전에 코베인을 이미 넘어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에게는 음악계를 강타한 한곡은 없으니, 비유를 하자면, ‘한 시즌 최다 홈런은 코베인이, 통산 홈런은 데이브 그롤이 많다.’ 정도로 말하고 싶다.


그래도 'Smells Like Teen Spirit'은 위대하다

누가 뭐라 해도 ‘Smells Like Teen Spirit’은 너무나 좋다.

지금은 대중음악계는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이 주류이고 신박하게 들리지만, 아직도 건재한 록음악 테두리 안에서만 보면, 30년 전 그때에 그렇게 세련되고 진보적이란 느낌을 주던 곡이, 신기하게도 여전히 그렇게 느껴진다. 앨범 [Nevermind]도 그렇다. 30년이 넘은 곡이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 노래에 심취해 있을 Teen(10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때의 그가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나온 나의 시간에 더 많은 그의 음악이 함께 했을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기에, 두고두고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는 유성과 같았다. 우리가 올려다보고 있던 밤하늘에서 다른 어떤 별보다 유난히 빛났고, 빠르게 지나갔고, 사라져 갔다. 그와 함께 했던 짧았던 시간, 그것의 10배가 넘는 시간이 우리를 흘러 지나갔지만,

그를 여전히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는 나만이 아니다.


2010년에 발표한, YB의 ‘스니커즈’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커트 코베인의 다해진 운동화가 어쩜 그리 멋지게 보이던지~~♬"  


정말 그랬다. 그때 커트 코베인의 것은, 낡은 운동화조차 멋이 있었다.

그 시절 코베인은 정말로 그렇게 멋이 있었다.

커트 코베인의 운동화 (이미지 출처 : Rolling Stone)


※ Nirvana의 독음이 '니르바나'인가, '너바나'인가에 대한 논란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니르바나'로 하였다. 배철수 님도 항상 '니르바나'로 하신다.^^


<완결>


이전 13화 Nevermind - Nirvana(니르바나) (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