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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술책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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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술 Feb 12. 2022

나는야, 재채기 소믈리에

+ 가성비 갑 와인 추천 리스트

나는야, 재채기 소믈리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와알못(와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내가 '재채기 소믈리에'로 당당히 성장하게 된 배경은 그 누구보다 1만 원 대의 저렴한 와인들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와인을 한 번 마실 때 혼자 한 병 이상을 마실 때가 많고, 일주일에도 수차례 와인을 즐기기 때문에 지갑을 탈탈 털기보다는 가성비 좋은 와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성비 와인을 마시다 보면, 종종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와인도 만날 수 있고, 명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무슨 맛을 선사하고 싶은지 대충은 알 것 같은 와인들도 많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와인의 맛을 느끼기도 전에 코를 찌르며 들어오는 냄새와 와인치고는 꽤나 매운(?) 맛이 느껴지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와인들도 있다. 이런 와인을 마실 때, 불편한 맛들을 애써 외면한 채 위장으로 털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심한 경우 맛을 볼 때마다 영락없이 재채기가 나오는 아주 불편한 와인들도 있었다.


한 와인집에서 만났던 와인 샘플러


몇 년 동안 쌓아온 경험적인 데이터에 기반하여, 재채기를 유발하는 불편한 와인들은 1만 원 이하였던 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싸구려 와인을 마시면 곧바로 재채기를 해버리는 이른바,  '재채기 소믈리에'가 되었다.


한 번은, 서울에 아주 유명한 호텔 결혼식에 참석해서 본의 아니게 와인을 감별해버린 적도 있다. 그 호텔은 식사 비용이 20만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었고, 기대에 부풀어 봉투도 두둑이 채워 결혼식에 갔다. 결혼식이 끝나자, 드디어 코스가 시작되고, 기대했던 대로 와인도 함께 서빙되었다! 첫 번째 코스요리에 감탄하며 서빙된 와인을 맛보았는데, 아뿔싸! 신성한 결혼식에서 결국 재채기를 하고야 말았다.


에,, 에취!!! 


그날 마셨던 와인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레스토랑'에서 조차도 1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 저렴이 중에서도 저렴이 와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과 또 그리 친하지 않은 지인들 사이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고급 호텔 식사를 음미하다 갑자기 불호령 같은 재채기를 쏟아낸 것은 너무 창피하고 쑥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싸구려 와인을 또 한 번 몸으로 판별해낸 나 자신이 신기하고 아주 약간은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몸은 2만 원대 이상의 와인만 즐겨야 하는 아주 고귀하고 값비싼 몸이라 자부하며 슬기로운 와인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슬기로운 와인 생활 (오크우드 프리미어의 바, 파노라믹 뷰에서 즐겼던 와인 뷔페)


재채기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가성비 갑 와인 리스트


좋지 않은 와인은 몸에서 뱉어버리는 초능력 덕분에, 1만 원에서 3만 원 정도의 다양한 와인 가운데에 그나마 재채기를 유발하지 않고 무난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몇 가지 와인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 와인들은 무난한 가격에 와인 초보들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와인들이니 지나가다 이 와인들을 보게 되면 한 병쯤 집에 구입해놓는 것을 추천한다!


앙시앙 땅, 쉬라 (1만 원대)
에라주리즈, 맥스 리제르바, 쉬라즈 (1만 원대)
1865, 까베르네 소비뇽, 까르미네르 (2만 원대)
옥스퍼드 랜딩 시리즈 (1만 원대)
프릭쇼, 까베르네소비뇽/진판델/쁘띠 (2만 원대)
트라피체, 말벡 (1만 원 대)
앙시앙 땅 쉬라와 에라주리즈 맥스 리제르바 쉬라즈



에필로그
안 좋은 와인을 마시면 재채기를 하는 나의 개인기는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재채기로 '홍삼 진액'을 감별하는 또 한 명의 재채기 감별사다. 시중에 판매되는 수많은 홍삼 제품들 가운데 아버지가 재채기를 하는 경우와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안 좋은 와인에 재채기를 하는 나와는 반대로,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진또배기' 홍삼 진액을 먹었을 때만 재채기를 하는데, 이렇게 재채기를 유발하는 제품만이 아버지로부터 '진품 인증'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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