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미팅의 추억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일찍부터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가 100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 100만 원이라는 돈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거 한 장'으로 사용될 정도로 큰 액수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리라.
어른이 되고 나서 100만 원이 주는 소중한 의미를 다시 한번 느꼈던 적이 있다. 때는 바로 신입사원 시절, 회사 동기들과 함께 3대 3 미팅을 나갔던 날이다. 당시의 미팅을 단 세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3대 3 미팅을 했는데 1차가 끝나고 남자 1이 취해서 도망갔다.*
2. 2차로 장소를 옮기자, 남자 2가 취해서 도망갔다.*
3. 남자 셋 여자 셋은 결국 남자 하나 여자 셋이 되었다.
*여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취해서 도망갔다는 것에 대한 근거는 글 하단 에필로그 참고
어색한 분위기가 화근이었을까. 미팅 참가자 여섯 명은 술 게임의 승패에 집중하고, 술을 많이 마셨다. 결국 여섯 명이서 시작한 미팅이 마지막엔 네 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도 남자 한 명에 여자 세 명이다!). 생존자 네 명은 2차 장소에서도 열심히 술을 달렸고, 결국 새벽 3시, 나도 넉다운이 되었다.
(여기부터는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함께 있었던 동기들의 증언에 의존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술에 취한 나는 강력한 귀가 본능으로 동기들에게 집에 가자고 말했다. 동기들은 1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택시 할증 풀리니 그때 가자고 나를 만류했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ㅎㅂ.. 와냐... 나 즤굼 갈ㄹ래.. 나 뷁뫄넌을 즈고라더 즤굼.. 갈ㄹ레...!!
(하.. 아냐.. 나 지금 갈래... 나 백만 원을 주고라도 지금 갈래...!!)
100만 원을 주고서라도 택시 타고 집에 가겠다는 나의 의지에 빵 터진 동기들은 기꺼이 나를 데리고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줬다. (다행히) 실제 택시비는 약 5만 원 정도였다. 다음 날 동기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나에게 백만 원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100만 원을 주고서라도 집에 오고자 했던 것은, 낼 수 있는 택시비가 최대 100만 원이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고라도 집에 와야만 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백만 원은 그렇게, 어른이 된 나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큰돈으로 남아있었다.
[에필로그]
미팅남 두 명이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는 증거
1. 가장 먼저 도망간 남자 1은 사실 나의 친한 친구였다. 미팅 참가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미팅을 했고, 남자 1은 도망간 다음 날 내 동기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2. 두 번째로 도망간 남자 2는 다음날 나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고, 난 친구를 통해 거절했다.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역대급 미팅은 그 후로도 길이길이 회자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