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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술책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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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술 Mar 29. 2022

택시비 100만 원의 가치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미팅의 추억

어린 시절, 내게 세상에서 가장 큰돈은 100만 원이었다.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일찍부터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가 100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 100만 원이라는 돈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거 한 장'으로 사용될 정도로 큰 액수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리라. 


어른이 되고 나서 100만 원이 주는 소중한 의미를 다시 한번 느꼈던 적이 있다. 때는 바로 신입사원 시절, 회사 동기들과 함께 3대 3 미팅을 나갔던 날이다. 당시의 미팅을 단 세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3대 3 미팅을 했는데 1차가 끝나고 남자 1이 취해서 도망갔다.*
2. 2차로 장소를 옮기자, 남자 2가 취해서 도망갔다.*
3. 남자 셋 여자 셋은 결국 남자 하나 여자 셋이 되었다.

*여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취해서 도망갔다는 것에 대한 근거는 글 하단 에필로그 참고


어색한 분위기가 화근이었을까. 미팅 참가자 여섯 명은 술 게임의 승패에 집중하고, 술을 많이 마셨다. 결국 여섯 명이서 시작한 미팅이  마지막엔 네 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도 남자 한 명에 여자 세 명이다!). 생존자 네 명은 2차 장소에서도 열심히 술을 달렸고, 결국 새벽 3시, 나도 넉다운이 되었다.


100만 원이 나에게 주는 가치는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다. 


(여기부터는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함께 있었던 동기들의 증언에 의존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술에 취한 나는 강력한 귀가 본능으로 동기들에게 집에 가자고 말했다. 동기들은 1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택시 할증 풀리니 그때 가자고 나를 만류했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ㅎㅂ.. 와냐... 나 즤굼 갈ㄹ래.. 나 뷁뫄넌을 즈고라더 즤굼.. 갈ㄹ레...!!
(하.. 아냐.. 나 지금 갈래... 나 백만 원을 주고라도 지금 갈래...!!)


100만 원을 주고서라도 택시 타고 집에 가겠다는 나의 의지에 빵 터진 동기들은 기꺼이 나를 데리고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줬다. (다행히) 실제 택시비는 약 5만 원 정도였다. 다음 날 동기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나에게 백만 원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100만 원을 주고서라도 집에 오고자 했던 것은, 낼 수 있는 택시비가 최대 100만 원이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고라도 집에 와야만 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백만 원은 그렇게, 어른이 된 나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큰돈으로 남아있었다. 


[에필로그]
미팅남 두 명이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는 증거
1. 가장 먼저 도망간 남자 1은 사실 나의 친한 친구였다. 미팅 참가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미팅을 했고, 남자 1은 도망간 다음 날 내 동기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2. 두 번째로 도망간 남자 2는 다음날 나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고, 난 친구를 통해 거절했다.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역대급 미팅은 그 후로도 길이길이 회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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