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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술책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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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술 Jan 16. 2022

술꾼 도시 여자 대학원생들

마음을 치유했던 보드카와 엽떡

대한민국에게... 대학원생이란?


대학원생의 생활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트위터 유머가 있다. 


짝사랑하는 상대가 다니는 대학교를 따라갈 때
-의지가 대단함.
-진짜 사랑하나 봄.
-풋풋함.

짝사랑하는 상대가 다니는 대학원을 따라갈 때
-미친 사람임.
-상대방은 당장 도망쳐야 함.


대학원을 따라간다는 것은 마치 지옥을 따라가는 것과 동일시되고, 그런 곳을 따라가는 사람은 사이코패스로 취급받을 정도로 '대학원'이 풍자되어있다. 


세상에 없던 지식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일은 시간, 노력, 열정이 매우 많이 필요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생활을 돌 볼 여유도 없이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한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대학원에서는 교수님에 대한 권위를 과하게 높게 평가하는 경향 때문에 교수님의 가족 행사부터 수업 자료 준비, 세미나 준비, 개인적인 스케줄링까지 도맡아서 관리해야 하는 업무까지 추가된다.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시간도 아니고 노력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라 바로 치유healing다.



세 명의 술꾼 도시 여자 대학원생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교수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졸업 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렸던 결정이었다. 대한민국에서 1등으로 평가받는 S대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지식과 연구에 뜻이 있었노라고 생각되는 게 당연하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진로 결정을 미루고 싶었고, 사회에 나가기도 두려웠고, 무엇보다도 가방끈 길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식물 유전학에 관한 연구 주제를 맡게 되었고, 내 생활을 식물의 life cycle에 맞추게 되었다. 내 일정과 바이오리듬에 상관없이, 내가 연구하고 있는 식물의 삶이 제일 중요했다. 그렇게 나도 한국의 대학원생이 되었고, 거기에서 술메이트soolmate를 만났다. 나보다 먼저 입학해서 박사 과정을 하고 있던 두 언니들이었는데, 우리는 함께 동고동락하며 세 명의 술꾼 도시 여자 대학원생들이 되었다.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에서 처럼, 우리 세 명에게도 단골 곱창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곱창집에서 곱창을 시켜놓고 양념된 부추를 구워 소주를 마시면 취하지도 않았다 (기분만). 한 번은 셋이서 곱창을 먹으며 소주 9병을 마시고,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하고 한 병을 추가하는데,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와서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시며 '딸 같아서 그러니 그만 마시라'며 소주를 주지 않으셨다. 그 마음에 감동한 우리는 곱창집을 나와 치맥으로 2차를 한 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숙사까지 걸어서 귀가했다.


셋이서 소주 아홉 병을 마셨던 낙성대 곱창 맛집

우리는 거의 실험을 모두 마친 야심한 밤에 기숙사에 가서 술을 마시곤 했다. 기숙사에서 정말 남부럽지 않게 술을 마셨다. 보드카와 얼음, 주스를 타워에 넣고 섞어서 칵테일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살벌하게 매운 엽기적인 떡볶이를 시켜 여행용 캐리어 위에 올려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술을 마시며 실험실 이야기, 연구 이야기, 교수님 험담, 연애 고민 등을 이야기하고 나면 낮에 연구실에서 혼나고 식물 온실에서 몰래 울었던 일쯤은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대학원생 시절에 기숙사에서 먹었던 보드카와 떡볶이는 대학원생의 상처와 마음을 치유하는 빨간약이었다.


당시에 내 기숙사에 모여서 마셨던 보드카타워 칵테일과 매운 떡볶이


이때의 기억이 아직도 나에게 자리 잡고 있어 여전히 나에게 떡볶이는 만병통치약이다. 대학원생 시절에 받았던 상처를 떡볶이로 씻어냈던 습관 덕분에, 지금도 직장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떡볶이가 바로 떠오르고, 떡볶이를 먹으며 훌훌 털어버리곤 한다. 


대한민국의 대학원생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생활 속에서 배웠던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생존 스킬'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 사회에서 여간해서는 상처받지 않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온실에서 몰래 울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은 행복하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나를 치유할 수 있는 만병 통치약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와 독주, 그리고 매운 떡볶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불쌍한 대학원생이 있다면, 위의 세 가지를 기억하며 오늘은 연구실 친구와 함께 보드카에 엽기적인 떡볶이를 시켜먹으며 교수님 욕 실컷 하고 편안한 미소로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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