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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09. 2023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처녀

그곳, 스트라스부르는 지금 몇 시나 되었을까?

 

몇 년 전 난생처음 간 유럽 여행에서의 일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독일의 프랑크프루트(Frankfurt)였지만 두 시간여를 공항에 머물다가만 떠났으니 스쳐 지난 곳이었고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달려 오후 늦게 도착해 일정을 시작한 스트라스부르가 사실상의 유럽 첫 방문지였다.


도착 다음날 그곳 스트라스부르에서 겪어야 했던 황망한 일의 발단은 내 몹쓸 흡연에의 욕구 때문이었다.


일정에 따라 그리도 아름답고 쾌적하던 도시의 이런저런 명소 찾아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고 그곳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 각자의 취향에 따라 빵을 골라 근처 의자에 앉아 맛있게 먹은 후 다음 장소인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에 소재한 유명한 그것과 같은 이름인 그곳으로 이동할 때였다.


점심 먹은 곳으로부터 삼십 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 그곳으로 가면서 느닷없이 담배 한 대 피웠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여행 전 아내는 염려 반 경고 반으로 두 딸이 모처럼 큰맘 먹고 함께 하는 여행으로 건강해야 이런 기회도 자주 있을 테니 모쪼록 이참에 아예 담배 끊으라는 신신당부가 있었고 나 또한, 많이는 아니지만 하루에 대여섯 개비 피우는 정도에다 여행 직전 받았던 건강 검진에서 기관지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아 그러마 했는데 낯선 곳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담배 한 대의 유혹이 강렬하게도 일었다.


아내와 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겠지만 한국 떠날 때 내 소지품에 담배 한 갑과 라이터 몰래 숨겨왔고 그날 그중 다섯 개비의 담배와 라이터를 선글라스 케이스에 넣어서 지니고 있었다. 내심 피우지 않고 그냥 지니고만 있겠다고 한 것이 얼마나 공허한 다짐 같은 것이었는지 담배 피울 틈만 엿보게 되던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와 두 딸이 성당 향해 난 좁은 골목 따라가며 길 양쪽의 가게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갔고 보통 들어가면 최소 이삼십 분쯤 머무는 것을 알고 있어 기회다 싶어 왔던 골목 되돌아 나가 피울 만한 장소 이리저리 물색하고 다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듯이 행여 금연 장소인 것을 모르고 담배 피웠다가 이국(異國)에서 낭패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나름의 조심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 곳이나 그것이 아니면 사람들의 통행이 뜸한 장소 찾아다녔다. 문제는 그 조심성이 위치 파악에는 작동하지 않은 것이었다.


국내에서조차 낯선 곳에서 다시 돌아와야 할 특정 장소 떠날 때면 큰 건물이나 간판, 이정표 등을 숙지하고 이동했는데 국내도 아닌 그야말로 생면부지의 도시에서 그를 소홀하게 한 것이었다.


평소 길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그를 맹신했거나 흡연에의 욕구가 너무 커 허둥지둥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길을 잃었다. 아니, 골목을 잃고 말았다.


분명 그 골목이 맞을 것이라고 여겨 바삐 걸어갔지만 아내와 딸들이 들어간 가게 보이지 않아 다시 돌아 나와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지만 그곳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던 것이 골목을 찾는데 몇 번이고 실패하면서 시간이 지체된 데다 그리도 제 뒤에 꼭 붙어 다니라고 당부하던 딸들의 얼굴 떠오르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하얘져 다리가 다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낯선 나라에서 따로 연락할 일이 없지 싶어 아예 휴대폰도 한국에 두고 온 데다 길 묻고 싶어도 영어도 그렇지만 불어는 더 맹탕이라 관광은 고사하고 이러다 자칫 국제미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몹시도 급해졌다. 직전까지만 해도 한적하고 고풍스러워 멋스럽기까지 하던 골목들이 아찔한 미로(迷路)로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아 나중에는 방향 감각조차 아둔해졌다.


처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 한참 헤매다 마주친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던 그곳의 처녀.


그녀를 익스큐즈 미로 걸음 멈춰 세우고 행선지였던 교회를 베리 오울드와 처치, 노트르담 연발하며 물었는데 용케도 알아듣고는 직접 거기까지 데려다주던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운 일인데 제법 멀던 그곳에 기꺼이 데려다주고는 돌아가면서 덤으로 어여쁜 웃음까지 지어 보이던 것이었다.


그때 추측컨대 나를 찾아 헤매다 그곳에 나보다 늦게 도착한 아내와 두 딸의 염려 반 원망 반의 성토를 내 탁월한 위치 감각 모르느냐는 말과 좀 더 일찍 와서 더 많이 보려고 한 때문이니 이해하라며 웃음으로 무마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아내와 딸들은 내 가까스로 진정된 마음과 칠월 말이어서 덥기는 했지만 내의가 흠뻑 젖은 것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었다.


그날, 그 처녀 덕분에 아름다운 도시가 더 아름답게 보여 딸들 꽁무니에 바짝 붙어 다니며 베란다마다 꽃이 놓인 집들과 맑은 물 철철 흐르던 운하,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살폈는데 풍광도 눈에 담아둘 만했지만 그날은 그보다는 처녀의 친절과 웃음이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 때문인지 여행 끝내고 돌아와 가장 인상 깊던 것이 무엇이더냐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서슴지 않고 스트라스부르의 웃음이었다고 말했는데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르 언덕 등등도 좋기는 했으나 그 모든 것들 다 더해도 낯선 이방인에게 기꺼이 베푼 처녀의 호의(好意)보다는 못하다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미로만 같던 골목 앞서 걸어가던 친절한 처녀의 뒷모습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처녀 뒤따라가던 그때 나는, 나이도 목적지도 잊은 채 피치 못할 이유로 떠났다 마침내 돌아온 처녀의 연인(戀人)으로 흰 식탁보 깔린 식탁에 갓 구워낸 호밀 빵과 따뜻한 양고기 수프, 두 벌의 은제 스푼과 나이프가 놓인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다는 두근거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시간은 늘 낮일 것이다. 그곳 환히 밝힐 처녀의 웃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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