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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18. 2023

시학 서설(詩學 序說)

시(詩)가 어렵다고 한다.

시가 그 어렵다는 양자물리학보다 더 난해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시가 한 가수의 노래처럼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고 만 현실.

일제 치하 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시가 너무 쉽게 씌어져 부끄럽다던 동주(東柱)의 고백(告白)은 당대(當代)의 현실 어쩌지 못하는 한 지식인의 무력감의 토로(吐露)이기는 할 것이나 그렇듯 쉽게 씌어진 시(詩)가 그 자신과 슬픈 조국(祖國)의 수많은 또 다른 자신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을 것이니 결코 쉽게 씌어진 시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詩人)들이여

모쪼록 쉽게 씌어져 쉽게 읽히는 시를 쓰자.

세상이 시나브로 삭막하고 건조해져 들숨과 날숨이 온통 먼지투성이인 생에

읽는 그 아주 잠깐만이라도 윤기(潤氣) 더할 수 있는-.

단언컨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난해(難解)한 시는

시인 그 자신만의 마스터베이션에 다름 아니다.        





시(詩) 공장 공장장입니다.

그때 그때 다른 그대의 기분에 따라

원하시는 시 주문해 주세요.


마음이 어쩐지 푸석푸석한 느낌이시면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으로 간하되

어슴푸레하다 여기실까 염려되어

뻐꾸기 소리와 진달래 향기 약간

가미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런, 우울하시다구요? 그렇다면

라벤더 오일 엷게 바른 편지지에

여름 땡볕 갈아 만든 붉은 잉크로 쓴

시 한 편 보내드리지요.

동봉한 잘 마른 노란 원추리 꽃은

잿빛 심장에 걸어두십시오.    


저희 공장에서는

해독 불가의 난해한 시는

일절 취급하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요령부득의 일들 수두룩한

골치 아픈 세상이니까요.

다만, 직설(直說)의 난무로

가슴 베인 사람들 많아

약간의 은유(隱喩)와 상징(象徵)은 섞겠습니다.

상투적인 희망과 위로의 말로

미리 만들어 둔 시는    

유통기한 한참 지난 식품처럼

건강에 해롭습니다.


고객의 심중(心中) 최대한 가늠하여

막 구워낸 식빵과 함께 꼭꼭,

씹어 드시면 좋을 시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미량의 절망(絶望)은 담겠습니다.

본디 상극(相剋)은 상통(相通)하는 법이라

약간이나마 그것 맛본 사람이

희망(希望) 놓치지 않고 더 단단하게

움켜쥘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주문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받으시면 볕바른 봄날

산들바람에조차 난분분(亂紛紛), 흩날리는

벚꽃 서너 닢 그 바람에 띄워 보내주시거나

그늘조차 눈부신 벚나무 아래 잘 숙성된

뻐꾸기 소리 몇 점

향긋한 쑥 바구니에 담아 보내주십시오.

시의 가격(價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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