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등나무 그늘의 의자 다섯 개, 등판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주인 있슴'이라는 패찰 붙인 의자에 다섯 분의 할머니들이 앉아 도란도란 정담(情談) 나누고 계셨다. 다섯 개 의자가 네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두 개가 되었고 마지막 남은 의자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한 분.
등나무 그늘 낡은 의자에
여윌 대로 여위신 할머니 한 분
고요히 눈감고 앉아 계신다.
일생을 걸어와 비로소 앉으신 듯
의자와 한 몸으로 편안하시다.
눈 감고 안으로, 안으로
할머니께서는 어디를 향해
가고 계시는 것일까?
가끔 반가사유상의 그 미소 지으시는 것은
대바구니 옆에 끼고 봄 캐던
댕기머리 소녀 적의 일들 즐거이
추억하고 계시기 때문일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생애
생로병(生老病) 다 겪으셨으니 남은 한 가지
자는 잠에 고이 갔으면 하시던
늙으신 어머님의 말씀처럼
저렇듯 고요히 몸 말리시다 어느 날
저 자세 그대로 좌탈(座脫)※하시어
한 점 그늘이 되었으면 하시는 것일까?
한 철 무성하던 잎 시나브로 지고
그늘도 할머니도 없는 등나무 아래
마른 잎 수북한 낡은 의자 하나.
※좌탈(座脫) : 불교에서 말하는 좌탈입망(座脫立亡)의 준말로 앉은 채로 해탈(解脫)에 드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