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o 우리의 손을 잡아주세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
어린 시절 재밌게 본 영화 'Never ending Story'(끝없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푹 빠져,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를 알았지만 정작 그의 대표작 'MoMo'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모모》는 엄청난 책인 동시에 어떤 사람으로도 기억된다.
그 책을 선물해 준 주영선배 덕분에 이 책을 제대로 읽게 됐으니까.
내 생일 선물로 건넨 이 책과 책 사이에 멋스럽게 끼워진 손글씨 엽서.
그날 우리가 먹었던 학교 앞 손칼국수집의 보글보글 끓어올랐던 즉석 떡볶이, 헤어지는 밤이 아쉬워 걷고 또 걸었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때 생일 기념으로 내가 함께 모인 친구들에게 저녁을 쐈어야 하는데 용돈이 뚝 떨어져서 만원인가, 밥값이 모자랐을 때도 선배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셨다. 그때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 용돈을 받으면 제일 먼저 밥을 사줘야지,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대학교 답사에서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선배가 있었다. 한 번도 사진을 받은 적은 없지만 늘 뭔가를 찍었고 나를 찍어주기도 했다. 바닷가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서도 수다 떨 때도 선배는 벌떡 일어나 밤바다와 밤하늘을 찍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출렁이는 파도소리 속에서도 뭔가 즐거운 걸 담고 싶다는 듯 선배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만 해도 스마트 폰이 나오기 전에라 '폰카'라는 개념이 없긴 했지만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즉석카메라나 수동 카메라로 사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대학 입학 기념으로 받은 빨간색 디카가 있었지만 정작 귀찮아서 잘 들고 다니지 않았기에 매일 손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던 것 같다.
선배와 같은 수업을 들으며 더 친해졌다. 영화를 좋아해서 나는 언제나 영화 이야기를 줄줄줄 했는데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영화를 꼭 찾아서 본 뒤에 감상을 이야기해 줬다. 우리의 대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우린 둘 다 7호선을 타고 다녔는데 *숭실대입구(살피재역)에서 타도 될 지하철을 우리는 '굳이' 걸어서 상도, 장승배기 어떤 날은 신대방 삼거리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 것 같았는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과 있으면 그 시간은 언제나 더 빨리 가고 아쉽기만 하다는 것을. 조금 더 걸어서 함께 이야기하고 산책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그냥, 마주할 때마다 함께한 마음이 뭔가 고맙기도 하고 서로 공감대가 쌓여간다는 사실이 설렜다. 좋았다.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선배의 마음도 편안하고 따뜻했지만 내가 추천한 영화나 책을 지나치지 않고 다시 시간을 들여, 집중해서 봐준 정성에 감동했다. 더더더 더 많은 걸 꺼내서 나누고 싶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시를 읽고 싶었던 것 같다.
걷는 것을 낙으로 삼는 여행작가다. 신발끈 질끈 매고 배낭 하나 짊어지고 시작한 여행길. 스무 살 무렵 유럽 배낭 여행길 경유로 방콕과 그 주변 지역에서 한 달간 지낸 것이 동남아시아와의 첫 인연이다. 최근 라오스에서 3년 가까이 지냈고 베트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간직한 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어느덧 여섯 번째 구정 설을 맞고 있다. '인도차이나'로 치부할 수 없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공집합과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짚어가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홍수가 나면 물난리이지만, 범람하는 물살이 가져다주는 고른 영양분이 자양분이 되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지,라는 심정으로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건사하는 중이다. 많이 보는 것만큼 깊이 보는 것의 무게를 동일하게 여기며, 여행은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관문을 등지고 걸어가는 찰나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베트남 여행백서/나무자전거/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글 중에서
나에게 대학시절에도 첫 유럽여행과 동남아 공항의 문이 열렸을 때 후덥지근한 습도와 짠 바다내음 같은 걸 이야기해 준 때가 떠오른다.
독일에서 지내고 있는 선배가 일이 생겼다며 연말에 연락이 왔다. 한국어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듣고 싶어서 건 전화인데 바보같이 위로는커녕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우느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언젠가 먼 이국에서의 오랜 생활 탓에 한국어를 사용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누군가랑 모국어로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선배도 나도 울먹거렸던 날이 떠오른다. 나를 떠올려줘서 고마웠다. 그래, 맞아, 나는 언제나 선배와 이야기하는 게 즐겁고 늘 할 말이 차고 넘치게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나를 고른 건 잘 고른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 사이로 웃음도 새어 나왔다.
맞아, 어떠한 말로 위로조차 못 나눌 상황이어도 같이 울어주는 누군가의 눈물이 여기 있다는 신호가 누군가에겐 작은 신호로 닿기를 바라면서도, 언제나 걷고 걷고 밤새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래도 할 말이 쌓였던 것처럼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마음 역시 닿아있고 편안하다는 걸.
우리에게 인생은 어떤 걸까.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건 뭘 말하는 걸까. 현관문을 등지고 걸어가는 여행과 같은 삶을 살았던 선배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다림, 언제가 집으로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집을 떠날 수 없을 거 같다는 이야기가 또 몹시도 시리게 아프고 슬펐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투명하고 솔직하고 똑똑하고 글도 잘 쓰며 진솔했던 선배, 내면이 단단하고 용기 있고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 순간을 카메라에 계속 담았던 것, 삶으로 이어진 모든 순간들을 그만큼 찰나도 놓치기 싫었던 마음 때문일까.
연말에 수많았던 사건 사고 속에서, 또 어제도 커다란 참사 속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과 공포, 유가족들이 견디고 마주해야 할 시간들 속에서도, 복잡하고 불안했던 비상계엄의 밤 이후로도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 갈 곳 잃은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친하고 귀한 벗이기도 한, 자매같이 다정한 주영선배에게도 가장 슬프고 참혹한 일이 닥쳤다. 선배가 쓴 책과 모모를 뒤적거리며 나는 뭔가를 계속 찾아갔던 것 같다. 분주하게, 불안하게, 그 속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에 엉엉 울다가, 그러다가도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네 곁에 있잖니!
네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 네가 없어서 정말 아쉽구나. 너한테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란다. … 나를 지금도 사랑하길 바라! 나도 너를 사랑할 테니까!
난 혼자가 아냐.
책을 읽다가 작고 여린 모모가 떠올라서, 모모 곁에서 한결같이 기다리고 사랑해 준 모모의 친구들이 떠올라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나는 모모의 볼에 닿는, 기기의 편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구나, 선배에게 닿고 싶은 내 마음을 발견하고 사랑한다는 그 말의 무게와 힘을 생각했다. 이 책을 쓴 엔데도 독일작가인데 선배도 지금 먼 나라 독일에 살고 있다. 슬픔을 온몸으로, 바람처럼 느끼며 흠뻑 느끼며. 모모처럼 시간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영상통화로만 잠시 잠깐 만났지만 선배님의 글 속에서, 책 속에서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도 한 번에 알았다. 여기에 다시 한국에 보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던가, 우리가 나눈 스치 듯한 대화를 떠오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그가 앉은자리를 향해 선배님의 셔터 누르는 순간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