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된다
평소에 글쓰기 작법에 대한 책은 거의 안 읽는데, 오랜만에 읽은 '글쓰기'에 대한 책 한 권을 재밌게 읽었다.
다나카 히로노부의 쉽고 편안한 문체도 한 몫했다.
물론 이 책은 작법에 대한 책도 아니다. 대학 시절 읽었던 글쓰기 작법에 대한 수업이 유난히 재미가 없었던 탓일까. 시론, 희곡론, 작법론 이런 '론'이 붙은 전공 수업 역시 지루하고 어려웠다. *아, 교양으로 선택한 '성의 담론' 수업은 빼고. ㅎㅎㅎ 교수님은 파격적 이게도 대학 수업 첫날에 콘돔을 들고 와서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이 이야기가 어쩌면 더 흥미로울 수 있지만 ㅋㅋ 너무 다른 방향으로 새면 안 되니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자신만의 글쓰기 노하우나 요령을 방출하거나 갑자기 조회수 폭발, 무한 독자를 생성해 내는 그런 매력적인 책이 '절대' 아니라고 서두에서 강조한다. 모든 게 빨라지는 세상을 살면서, 숏츠, 릴스 같은 영상이 읽기를 압도하는 세상에 어쩌면 가장 느리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제목 그대로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네가 읽고 싶은 걸 한 번 써봐!
이 부분이 흥미롭고 재밌는 포인트다.
'내가 좋아한 부분을 있는 힘껏 말하자'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자.
고수는 맛없는 음식에 대해서도 쓸 말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믿는 것은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자료의 질과 양, 어느 것을 따지더라도 도서관을 이길 만한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참고는 해도 일일이 반론할 필요는 없다.
나는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만큼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제일 별로라고 생각하는 영화는 '할 말이 없는 영화'들이다. 웃고 시간도 잘 보낸 것 같은데 다 보고 나니까, 그래서 뭐? 하는 영화들은 매력이 없다. 과거의 007 시리즈들이 그런 종류의 영화가 아닐까. 너무도 완벽한 제임스 본드가 최첨단 무기들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척척 탈출하지만 (거기다가 지나가기만 해도 온갖 여자들이 쓰러지고 다 반해버린다) 기발하고 치밀하고 완벽할 뿐, 뭐 할 말이 없다. 아니지, 아니지, 너무도 완벽한 사람이란 설정, 그 완벽함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007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다. 나는 다니엘 크레이그란 배우가 도전한 최초의 금발머리 본드가 가장 마음에 드는데 (*2006년 마틴 캠벨 감독의 《007 카지노 로얄》, 2012년 작, 샘 멘데스의 《007 스카이폴 》을 특히 재밌게 봤다) 그 대단한 첩보원 본드가 죽을 뻔하고 죽을 것 같은 고문을 당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눈앞에서 잃기도 한다. 영국의 정보기관, 본드의 거점이 되는 MI6도 산산조각 파괴된다.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혹독하게 한다고? 그것도 불사의 신 제임스 본드인데! 운빨이 한참 좋아서 승승장구만 해도 유분수인 시리즈물에 비참하게 발가벗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연인, 믿었던 리더의 배신 같은 장면들은 울컥하고 자꾸 내 안에서 꿈틀꿈틀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감독은 왜 이렇게까지 연출했을까, 궁금해진다. 쿨하기보단 단단한 뒤끝을 가지고 복수로 이어가는 행보, 추적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이런 제임스본드라면 … 매력이 넘친다. 안쓰러울 정도다.
연민이 생기고 눈물이 나고 한 방을 좀 먹여줘야지, 하고 주먹을 움켜쥐게 된다.
어쩌면 좋은 글도 이런 글이 아닐까, 읽고 나서 음, 좋네 하고 넘어가기보다는 그래서 그 글을 읽고 우물쭈물해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결국엔 나도 짧게라도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글이다.
사람의 마음을 넘어 몸을 움직이게 했으니까. 어쩌면 내가 추구하고 쓰고 싶은 글도 이런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시절,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며 감상문을 올렸는데 누군가 댓글에 영화에 대한 건 모르겠고 글이 너무 재밌어서 자꾸 읽게 되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말이 참 좋았다. 나는 그때부터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동참해 주는 기쁨을 누린 것 같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괴롭지만, 즐겁다.
책의 표지를 넘기자마자 보이는 이 말에 공감하고 웃었다. 내 주변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심지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상을 기록하고 칼럼을 쓰고 일기를 쓰는 분들이 있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나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지리멸렬, 자꾸 뭔가를 끄집어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즐거움'이 더 크기에 그렇게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감사하게도 너무도 별 일 아닌 거에 눈이 빛나고 세상만사 모든 게 소재이자 기쁨이기에 한 번도 '뭘 써야지'이런 고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노트북을 열기까지가 좀 귀찮고 실행이 안 됐을 뿐 늘 할 말과 쓸 말이 넘쳐났다. 즐거움과 기쁨이 큰 일이란 걸 진작게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도 왜 무거운 허리를 일으켜 또다시 노트북 앞에 앉고 다이어리를 펼치고 손가락을 움직일까.
이게 대체 뭐길래? 글이 뭐길래.
내가 내 글을 읽는 최초의 독자도 될 수 있기에, 독자에 연연해할 필요도 없다. 아무도 없었을 때도 하늘만은 함께 해주지 않았던가, 설일의 숭고한 구절처럼 누군가에게 읽기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내 글의 무조건 첫 번째 독자인 내가 이미 글을 읽었고,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글을 쓰기 전의 나와 쓰고 난 후의 나는 분명히 다르니까. 1mm의 성장이라도, 미묘한 변화라도 나는 그게 즐겁다. 너무 행복회로만 풀 가동한 러키비키 같은 말인가? 뭐, 그러면 어때. ㅎㅎ
나는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엉켜버린 목걸이, 이어폰줄같이 풀면 풀수록 짜증 나는 일이 참 많은데 글은 그것과 반대로 풀면 풀수록 하나씩 풀리기도 술술 잘 풀린다. 아, 내가 이래서 화가 났구나, 왜 울컥했구나, 왜 더 오버해서 웃었구나, 글을 쓰면서 또 하나의 나에 대한 발견들이 나에겐 참 많았다. 그래서 미친 X처럼 내 글을 내가 읽으면서 웃고 울고 오열하면서 어느 날은 갑자기 마구 뛰어다니고픈 넓은 해방의 감정을 맛보기도 했다. 적어도 나를 속이며, 쓰기 싫은데 억지로, 좋아도 싫은 척, 싫어도 좋은 척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쓰면서 비참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싫다. 그걸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쓰고 있으려니 수많은 협찬받은 '소정의 원고료'같은 글들도 떠올랐다. 나는 물론 그런 글을 공격하기 위해 쓴 건 아니지만 자신이 전혀 경험도 안 한 걸 마치 경험한 양 쓰는 글에 대해선 비판하고 싶기도 하다.) 블로그 댓글에 광고나 체험글 제안에 대해선 감사하단 댓글만 남기고 열어보지 않았다. 만약 영화나 책 이야기라면 또 다른 즐거운 관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노마드 글쓰기, 성의 담론부터 (ㅋㅋㅋ) 떠돌다 이리저리 생각이 자유롭게 흘렀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언제나 내 주관적인 생각 한 가득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도 역시 내 글인걸!
누군가에 속상한 일을 터놓고 대화를 하는 것도 물론 힘이 되지만, 때론 짜증이나 화를 말로 뱉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의 눈치를 살피고 상대방 기분을 행여나..., 덩달아 우울하게 하진 않았나 살피게 된다.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지만 글은 언제든 수정, 고치기 기능이 있고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또 맞을 수도 있는 기적을 만들 수도 있다. 이건 또 뭔 말이지? 내가 말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모른다면, 일단 한 번 글을 써보시길.
ㅎㅎㅎ
날마다, 매일 글쓰기를 하는 분들을 응원한다.
나도 응원 받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읽는 것만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만족할 수 없는 아이었다.
▷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다나카 히로노부/ 인플루엔셜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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