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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욱'은 싫다

화 대신 침묵을 택하는 답답함

by 앤나우

'분노'와 '욱'을 떠올렸을 때 많은 책과 영화가 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나 난폭한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로맨틱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켄 콰피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줄여서 「그·당·반」으로 한때 인기를 끌었던 영화다. 옴니버스 이야기 중에 저닌 건더스 역을 맡았던 제니퍼 코넬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믿었던 남편의 배신과 그에 대한 분노로 새롭게 공들여 꾸민 보금자리를 전부 다 부숴버린다.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산산조각 짓이기고 다 터뜨려버리는 어마어마한 분노의 현장. 남편이 바람피운 건 물론, 담배도 끊었다고 했는데 담배 피운 흔적까지 발견했을 때 그녀의 '욱'버튼은 이미 눌러진 거나 다름없다. 아니지, 그간 모른 척 눈감아주고 부부간의 소통이나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걸 생각나면 내가 봐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남편이 아무리 잘생기고 젠틀한 브래들리 쿠퍼(벤 건더스 역할)이면 뭘 해?

서로 오래된 커플로 여자의 바람으로 떠밀려 한 결혼이라 하지만, 그래서 그게, 뭐? 왜? 바람피울 이유는 될 수 없다. 겉으로도 감정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던 여주인공이 다 때려 부순 현장 뒤에 바로 한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치우기, 씩씩 거리면서도 하나씩 자기가 난리 친 현장을 청소기로 밀고, 담고 정리한다. 그리고 계단에 남편 짐을 가지런히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담배 한 보루도 덤으로 선물해 준다.


"마음껏 피워"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게 바람이든 담배든 중의적인 표현인 것 같아서 재밌었지만, 보면서 든 생각은 이거다.



평상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내적 동요가 어마어마하구나. 그런데 왜, 그걸 정작 풀어야 할 대상에게 쏟지도 않고 스스로 깨뜨리고 난리치고 결국 다시 청소기를 들었을까? 청소하면서 마음은 좀 진정됐을 수 있어도 그냥 꾸욱 눌러 담긴 감정이 조금이라도 풀리긴 했을까. 세상에, 그녀는 그냥 이대로 헤어졌으니까 속이 괜찮은 걸까? 겉으론 쿨해보이는 이별인데 속도 쿨다운이 된 걸까. 뭔가 용서한 것 같고 그런 점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 깔끔하고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나는 솔직히 '저닌 건더스'란 여자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등장인물 중 제일 안쓰럽게 느껴졌다. 한 방 크게 남편에게 먹였어야 하는데, 원래도 조용히 꾹 눌러 담긴 '욱'이 더 무서운 법이다.








나는 절대 '조용한 욱'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랑 제일 가까운 두 사람이 이렇다.

사랑하는 우리 언니와 옆지기 신랑의 이야기다. 언니는 우리 큰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천사'라고 표현할 정도로 선하고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평상시에 화가 나도 화가 났는지 조차 몰라서 그 감정이 터져 나와서 폭발하는 순간엔 두 번의 기회도 주지 않고 가차 없다. 아무 경고 없이 나오는 행동과 결단은 무섭고 두렵고 '이해해 보고 돌아볼'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신랑은 화를 내고 있는 자기 모습조차 너무 싫다며 그 모습을 보기 싫어서 아예 다툼으로 대치될 상황, 약간의 갈등이나 싸움은 아예 회피해 버린다.

*둘 다 '잘 참아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언니랑은 별 일 아닌 걸로 울고 불고 난리를 쳐도 늘 화해하고 다시 안아준 기억이 또렷하고 신랑은 답답하고 … 답답하다.



곪았던 부위는 굳이 누르지 않아도 터지기 마련인 것처럼 사실 '참아서', '워워'하고 있어서, 절로 들어갈 감정들이 아니기에 신랑이 늘 제일 먼저 택하는 방법은 말을 안 하고 (필요한 말만 하고) 거리 두기이다.



요 며칠이 그랬다. 나는 원래도 말수가 없는 사람이라 처음엔 화가 난 줄 몰랐는데 내가 차려준 밥을 계속 안 먹고 스스로 뭔가 자기만의 '요리'를 다시 차리고 해 먹을 때가 돼서야 아, 뭔가 화가 났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필요한 이야기는 나누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아니고 차분한 톤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며칠 넘어가다가 스스로 할 일만 하고 그대로 자기 공간에서 불 끄고 자고, 출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나도 이미 눈치는 챘지만 날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이기에 거기에 감정을 소모하기 싫어서 중요한 전달 사항만 이야기하다가 데면데면하며 며칠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조차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기감정, 공간, 취침 시간만 딱딱 지켜서 생활하는 모습에 나의 분노는 터지고야 말았다.





여기가 고시원, 하숙집이야?
아니, 내 요리는 안 먹고 거부하니까 고시원이 맞겠네!





왜 한 집에 있고 불만 사항이 있는데 말을 못 할까, 내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걸 말이라도 해서 고쳐지지 않더라도 따져보고 이야기라도 꺼낼 수 있을 텐데 매번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결혼 14년 차가 돼 가지만 이번일까지 총 두 번의 '왕삐짐'을 겪으니, 이건 삐졌다는 말로 표현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 이건 조용한 '욱'이구나. 제니퍼 코넬리처럼 내면이 요동치고 화나는데 그걸 늘 붙어있는 아이들과 내가 있는 공간에선 표출할 수 없으니 그냥 돌아가는 길을 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뭐 때문에 화가 난 지도 알 것 같았고 그땐 나도 너무 화가 나서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이야기를 꺼냈다. 그 부분을 다시 말해보자고 했을 때도 신랑은 혼자 이불을 휙 덮고 더 이상 말도 하기 싫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신랑은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이야기하고 꺼냈을 때 소통되고 위로받고 좋은 경험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했다. 나는 속상한 일을 언제나 터뜨리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었다. 비록 그 일로 싸우고 울고불고 난리 피우긴 했어도 그래도 제일 중요한 순간에 함께한 가족들이 내 옆에 있었다. 꾸중을 듣고 혼나고, 두드려 맞았어도, 내 요구대로 사과는 못 받았어도 내 눈물을 봐주고 닦아주고 같이 울어준 건 나의 가족들이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다음 날 다시 마주해서 일상을 살아오고 쌓아온 시간들이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서운하고 섭섭하고 서로 밑바닥 감정까지 알고 나면 그게 다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서로의 감정에 조심해지기도 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이 서운했고, 그동안 이런 이야기까진 안 하려 했는데, 라며 서로의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시간이 나는 개인적으론 좋았다. 분노에서, 욱에서 나온 터진 감정이긴 해도, 결국은 울면서 '이야기'가 시작됐고 소통이 이루어졌다. 하나의 일방적인 감정으로 뭉쳐있기보단 터뜨려서 아파도 꺼내야 할 상황이 있다는 걸 배우고 그 '이후'가 늘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내 감정에, 상황에 솔직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때론 실수도 많이 했지만. 입을 꾹 닫은 사람을 억지로 열게 할 수는 없다는 게 답답했다.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 문 같았기에.



아이들과도 데면데면 소통조차 안 하고 혼자 '고시원'으로 집을 쓰려면 왜 우리가 '가족'으로 불러야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둘째는 하루 종일 열심히 놀아서 저녁 8시, 9시에 잠드는 편인데 아빠 얼굴을 못 보고 며칠을 잠들고 새벽같이 출근하는 아빠를 못 봤다고 울었다. 나에게 불만과 부족함이 있으면 제발 이야기를 해달라, 하지만 그 화 나는 대상이, 침묵으로 위장한 '욱'한 감정의 대상이, 아이들이 되선 안될 거 같다. 아이들은 이미 눈치가 빠르고 그 안에서 눈치 보며 지낼 생각을 하니 그것마저 미안하고 잘못됐단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듣고 역시 이불로 꽁꽁 숨어 들어간 남편은 다음날 나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아이 학습을 봐주지 않고 잠이나 '쳐'잤다는 내 말이 자기에겐 너무나 상처였다고. 신랑에게 부탁한 학습 진도가 꼼꼼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하루에 반절 이상을 밀린 걸 하느라 묶여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버럭 했던 일이 떠올랐다. 피곤했으니까 잠든 거겠지만 그때의 난, 신랑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부분에 대한 화와 다시 검토 과정을 매일 내가 해야 한다는 억울한 감정이 있었다.

평소에도 쓰는 말이 아니기에 상처될 수 있었을 거 같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해야 할 말도 아닐뿐더러, 내 말이 가시가 돼서 박혔다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바로 하고 바른 언어로 이야기하겠다고 감정을 싣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퇴근을 하고 오면 사춘기 아들은 자기에게 말도 잘 걸지 않고 우리 셋은 잘 뭉쳐서 하하 호호 웃고 잘 노는데 자기가 괜히 낄 자리가 없는 것 같다면서 서운하다는 말도 했다. 이건 일단 우리 잘못은 아닌데? 한 달에 절반정도 출장을 가고 우리 셋이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 그럴 수 있지만 주말마다 항상 밖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만큼 아이들도 아빠가 얼마나 자기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지 충분히 알고 아빠를 좋아한다. 하지만 서로의 행동반경 시간이 전혀 다른 편이니, 앞으론 일찍 잠든 둘째를 제외하고라도 신랑의 출근과 퇴근 때는 늘 얼굴을 보고 인사도 나누고, 시간을 정해서 집에서 밥 먹는 시간, 보드게임을 하는 시간도 늘려 가자고 했다.



일주일 가량을 말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도 생각이 많았다고, 네 말처럼 사실 별것도 아닌 거에 꽂혀서 그랬다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아무리 자기의 잘못이어도 말 한마디에 기분이 나빴다고 가족들 모두 자기를 뭘로 생각하는 걸까 하고 혼자서 그냥 아무에게도 관심 가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마지막은 >> 내가 말발도 좋지 않으니, 그냥 입 다물고 있자고 생각한 것도 있어, 라면 미안하다고 한 마디를 더 썼다.




혼자서 살아가는 공간과 삶이 아닌 이상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는 늘 '욱'과 버럭 같은 감정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걸 나처럼 와다다 풀어버리고 다시 정리하고 이야기해서 바꿔나가고 싶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예 감정을 감추고 스스로 꾹 누르는 사람도 있다. 조용하고 말없이 있다가 한 번 터뜨리는 감정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자기 마음을 바깥으로 이야기해보질 않아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조차 모르기에 스스로 당황스러워하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묻으려고 하는 생각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상처 주는 말을 하고 헐뜯는 건 당연히 안되지만 '감정'에 대해 말하는 훈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욕먹어야 할 상황인데도 신랑에겐 욕 한 마디 못하고 스스로 감정을 터뜨리고 정리했을 제니퍼 코넬리는 스스로의 노력과 참은 시간은 대견했을지 몰라도 미묘하고 불안한 심경을 좀 더 일찍 꺼내서 말로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용한 '욱'이 그래서 좀 무섭고 그냥 찔러서라도 성미가 급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터뜨려서라도 마주해보고 싶다.



혼자 무시하는 태도로 입 꾹 닫고 있기보단 답답한 걸 꺼내서 말로 힘들면 이렇게 문자나 편지라도 써서 전달하면 그래야 조금이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조용한 욱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더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사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 자연스럽게 붙고, 자연스럽게 다시 연결되는 관계는 어디에도 없다.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그냥 떨어진 채로 붙을 수 없는, 정리되는 관계는 있어도. 우리의 순간순간, 아이들에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게 가장 좋은 태도일지 점검하고 살아가야겠다. 조용히 꾹 눌러 담긴 욱이 꽉 차기 전에 미리 터져 나왔으면 좋겠다. '욱아일기'를 쓰면서 화를 내라고 조장하는 것 같지만 화가 난다면 '참을 수 없다면' 그때는 화를 내기도 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화 낼 일이 아니었는데, 왜 화가 난거지? 하고 마음속 우물을 들여다볼 수 있고 부정적으로 빠지기 쉬운 늪과 같은 감정을 조심할 수도 있다. 화내는 걸 피하고 싶은 성격이라면 '나 그래도 화났어' 한 마디라도 꼭 표현해야 한다. 그럼 다른 사람이 봐주기 이전에 스스로 자기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고 자기감정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다. 아래로 아래로 감정을 누르기만 하면 특히 화 · 분노와 같은 감정은 산산조각, 사방팔방으로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분해되고 터진다. 분노와 욱이라도, 나의 감정을 아는 건, 그래서 더 중요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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