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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화를 쏟아낼 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by 앤나우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욱'하는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다른 건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화를 내고 있는 순간,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화를 내며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 표정과 씩씩거리며 흥분한 상태를 관찰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화나 연극, 뮤지컬에서 폭발할듯한 분노를 보면 배우의 얼굴과 호흡을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멋있다'라고 느끼기도 한다. 클라이맥스에서 터지는 형형색색의 폭죽처럼 파파박하며 화려한 손짓과 몸짓까지 곁들이면 그 감정에 동요되기도 한다. 이렇게 묵혀둔 감정이니 뭐, 터질 만도 하지, 폭발할만했어.


하지만 과연 현실에서도 그럴까.


큰 아이에게 화를 내는 신랑의 모습과 표정을 우연한 기회에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좋은 이야기나 칭찬, 격려만 건네는 사람이기에 분노가 폭발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지난 연재에도 썼듯이 신랑은 폭발하는 욱보다는 '조용한 욱'을 삼키고 참아내는 사람이기에.


큰 아이 학습을 붙잡고 시간을 줘도 계속 몇 시간째 멍하니, 자리에 앉아서 깐죽거리는 질문 '왜'라는 질문으로 살살 성질을 긁어서 열이 마구 받으려는 찰나, 딸깍 방문을 열고 신랑이 들어왔다. 한 손에는 사랑의 매, 효자손을 들고서.

내가 시간을 내서 봐주는 학습인데도 이성의 끈이 종종 끊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가 사춘기에 돌입했기에 예전처럼 계획표를 검토하고 확인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계속해서 하기 싫은 과목이나, 챕터를 미뤄놓았을 때 그걸 다시 점검해서 빠진 부분을 다시 풀게 하는데, 사실 학습을 미뤘다는 자체에는 화가 나지 않는다. 노느라, 빠뜨려서 못하고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다시 하자」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의 태도에 기분이 상하고 화나는 감정이 올라온다는 점이다. 고분고분해야지 (잘못한 게 있는데 수습하는 중이니까, 이런 태도가) 당연할 것 같은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어디를 쳐다보는지 모르는, 텅 비어버린 초점에서 이미 기분이 들썩들썩 요동치고 빈정이 탁, 상한다.

*아, 학습할 의지마저 없구나.
*반성의 기미도 전혀 없이 반항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남아있는 내 이성마저 '탁' 끊어지지 않기를 간신히 붙잡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해야 할 부분을 반복해서 두 번 정도 넘어가다 보면 점점 내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랑이 예고도 없이 들어온 날이었다.




야!
그냥, 다 하지 말고
그냥 나와!




웃고 있을 땐 좋은 인상인데(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신랑은 무표정할 때는 무서운 표정, 함부로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울 것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평소 표정이 만만하고 순한 얼굴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예전부터 온도차가 큰 얼굴이라 일부러 직장생활이나 사회 생활할 때는 경계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봐 더 웃는 표정을 연습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를 폭발 직전까지 끌고 간 아이에게 신랑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똑같이 낮은 톤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과장되거나 따로 무섭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이미 호흡이 가빠지고 곧 어딘가 한 대 때릴 것만 같은 효자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비언어적 표현(몸짓, 손짓, 표정, 시선, 자세 등)이 이미 곧 폭발할 만반의 준비를 한 사람에겐 '얼굴'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얼굴은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 미세한 떨림이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눈썹 한쪽이 과장되게 올라가거나 분노로 마구 일그러져 보이지 않았다. 격분보다는 평범해 보이는 얼굴로 분노와 '욱'이 나오는 게 아니었구나. 오히려 더 냉정하고 차갑게 보일 정도로 분노한 사람의 얼굴은 표정이 식어있었다.

('넋이 나가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맞아, 표정이 식어서 어떤 마음인지, 그 속에 생각조차 드러나있지 않은 얼굴.

상호 간에 대화나 소통을 하기에도 이미 단단한 벽으로 막혀버린 듯한 얼굴은 저런 얼굴이지 않을까.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분노의 열기와 대조적으로 그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더 불안하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곧이어 든 생각은

표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내 얼굴은 …?








평소 목소리도 하이톤이고 말도 빠른 편인 나는 화가 나면 말은 더 빨라지고 목소리는 더 높이 올라간다.

평상시엔 생글생글 웃는상이기에 조금만 인상 써도 기분이 확 드러나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 표정도 저렇게 '넋이 나가있는'상태는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까지 내 표정이 엄청나게 찌그러지거나 눈이 더 부리부리하게 호랑이처럼 커지고 얼굴에 분노를 가득 담고 있어서 그런 내 '얼굴'표정에 먼저 아이들이 '으앙'하고 눈물을 터뜨리는 줄로만 알았다.


사실 무서워진 표정이 아니라 '이성을 잃어버린'얼굴에 무서워서 겁을 먹었던 거구나.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의 얼굴에는 전부 쏟아내 놓을 때까지 그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보다 가족들의 화난 표정이 먼저 떠올랐다.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이에선 사실 그렇게 분노할 일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 없기에 크고 작은 일에서 어린 시절부터 꾸중을 듣거나 버럭 화를 냈던 엄마 아빠, 부모님의 표정을 떠올려보니

너랑은 더 이상 말이 안 통하니, 나도 널 포기할래.

넌 구제불능!

이제 사과해도 기회는 늦었어!

나도 지금의 내가 싫다


마지막 화를 내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혼란'스러워했던 부분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어찌어찌 화는 냈지만 '화'라는 덩어리엔 감정으로 똘똘 뭉쳐진 에너지 자체이기에 이성은 떠올릴 수 없다. 지혜롭게 잘 내보낼 방법을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욱'이 튀어나와 엎질러진 물이 돼버린 상황이니까.


나는 이렇게 화가 나는데 이 화를 나만 당할 수 없어. 그냥 다 억울해! 참기 힘들어! 네가 그렇게 무논리에 반항아로 나온다면 나면 더 막무가내로 나갈 수 있어! 어린 시절에 이성을 잃은 부모님 얼굴에서 표정에서 저런 마음의 소리를 고스란히 읽어 내려갔던 어린이는 이제는 반대의 심경이 돼서 아이에게 화를 쏟아내고 있는 꼴이었다.


다들 버벅거리고 화를 내는 순간조차 자신의 모습을 당황스러워하고 후회하고 있었던 거구나. 타인을 통해서 내 얼굴을 거울처럼 떠올려보니 내 감정에 대해서 뿐 아니라 어린 시절 분노했던 부모님의 감정들이 이제야 나에게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도 어른이지만 사실은 자기감정을 못 읽고 주체할 수 없어서 불안하고 무서워했던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현재, 내 앞에서 나나 신랑이 화를 주체하지 못했을 때 불안해하는 우리 아이들까지.


화를 내는 사람 앞에서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드는 아이의 심경, 표정, 맥박, 불안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심한 표정 뒤에 가려진 벽 같은 얼굴을 보고 와들와들 떨었던 아이 었고 이제는 화를 내는 어른이 돼서 이렇게 '욱'아 일기를 쓰기까지 과거_현재_미래까지 연결된 이 시간이 나에겐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굳어진 얼굴로, 넋이 나간 얼굴로 각인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미성숙하고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내 얼굴'에 온전한 나를 더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끊임없이 폭발하는 화로 이어진 무표정의 얼굴이 아니라. 엄마의 표정 너머에서 사랑과 믿음, 응원을 떠올리는 아이들이 되길 소망한다.

'욱'아일기는 이런 나의 소망이 담긴 첫걸음, 날마다의 다짐이기도 하다.





#욱아일기

#분노에찬표정

#넋이나간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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